2. 로마 가톨릭 교회의 교회관

로마 가톨릭에 의하면 로마 가톨릭 교회는 첫 가견적인 우두머리(수장)로 베드로를 통해 그리스도에 의해 세워졌다. 그 권위는 하나님이 그리스도에게 준 권위이며 차례로 그리스도가 교회에 주셨다. 그러나 개신교의 일반적인 입장은 그레고리 1세가 590년 로마의 감독이 되면서 새로운 진로의 교회(로마 가톨릭 교회)가 시작되었다고 본다.

1) 구원의 유일한 기관

로마 가톨릭 교회는 유일한 하나의 보편적인 교회가 있으며 그 교회 밖에서는 아무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본다.13) 그리고 이 주장은 1302년 교황 보니페이스 8세의 교서로 재확인되었다. 1854년 교황 피우스(Pius) 9세는 “아무도 사도적 로마 교회 밖에서는 구원받을 수 없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구원의 유일한 방주이며 그 안으로 들어가지 않은 자는 누구든 반드시 홍수에 침몰될 것이다”라고 했다.14)
로마 가톨릭은 그리스도가 신적임과 같이 교회도 유사한 특성(신성)을 소유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신성과 인성을 가지신 것과 같이 신성과 인성을 지녔다. 그러면 가톨릭 교회가 지닌 신성의 특성은 무엇인가? 그것은 권위, 무오류, 부패하지 않은 완벽함이라고 한다.15)
로마 가톨릭 교회는 예수님이 베드로를 통해 세웠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특성인 신성과 인성을 지녔고, 권위와 오류가 없으며 완전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성경과 같은 권위를 지니며 성경 해석의 권위까지 지녔으므로 그 교회 밖에서는 구원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들은 참된 교회로 이 세상에서 구원의 방주는 로마 가톨릭 교회뿐이라고 한다. 그들에 따르면 다른 개신교에는 구원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주장은 로마 교회의 구원관에서 더 확연하게 드러난다.

2) 로마 가톨릭의 권세

로마 가톨릭 교회는 교회의 정치에서 개신교와는 크게 다르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정치는 두 개의 측면이 있다. 첫째는 종교적 제도인 로마 가톨릭 교회 자체이며, 둘째는 정치적 권력으로서 바티칸이다. 이 둘은 분리된 것으로 취급되지만 실제로는 둘이 하나다. 두 제도의 머리는 교황이며 교황은 순전히 영적인 권세로 로마 가톨릭 교회의 최고의 종교적인 지도자이며 전 세계 외교상 정치적 중심의 특성으로 바티칸의 최고 수장이기도 하다.
이렇게 로마 가톨릭 교회는 교회와 정치의 두 체제를 모두 가지고 있다. 이런 양면의 체제로 인간 활동의 전 영역을 통제하고 있다. 바티칸은 대사들과 장관들을 다른 나라에 파송하며 다른 나라로부터 대사들과 장관들을 받아들인다. 물론 이런 정치적 활동은 모두 전적으로 성경적 지원을 받을 수 없는 것이며, 실제로는 교회의 본성과 목적에 관한 신약의 가르침에 모순된다.16) 로마 가톨릭은 이런 교회와 국가 정치 체제를 그 교회의 유익을 위해 이용하고 있다. 바티칸은 국가로서 모든 특권을 주장하지만, 교회이기 때문에 국가로서의 모든 책임은 부인한다.17)
한국에서 정의사제단이란 신부들의 단체가 민주화의 명분으로 정부에 반대하여 쇠고기 촛불 집회를 부추기고 심지어 정부를 비판하며 대통령 퇴출 구호를 외치는 과격한 정치적 시위 활동을 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일은 결코 교회 본연의 사명이 될 수 없다. 나라가 혼란할 때 교회는 기도하며 자성의 기회로 삼아 회개함으로써 우려의 뜻을 전해야 할 것이다. 성경은 모든 권세는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리는 것이라고 말씀했다(롬 13:1-2).
예수님께서도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이 다름을 가르치심으로써 국가와 교회가 서로 같지 않음을 지적해 주셨다(막 12:16-17). 정치와 종교가 혼합된 로마 가톨릭 교회의 이중적인 모습에 대해서 마틴 로이드 존스는 “얼마든지 그 색깔과 모습과 형태를 바꿀 수 있는 카멜레온과 같이 가톨릭의 위장술은 끝도 없고 한계도 없다. 그것은 마귀의 속임수”라며 강하게 비판했다.18) 그렇다. 교회는 결코 국가일 수 없으며 교회와 국가는 엄연히 구별된다.

3) 교황권 및 교황의 무오

(1) 교황의 지위와 권세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교황은 로마의 감독이며 그리스도의 대리자이고 교회의 머리로 지상에서 하나님의 대리자라고 주장한다. 교황의 대관식을 주관하면서 대주교는 선언한다. “세 왕관으로 꾸며진 삼중관을 받으소서. 그리고 당신은 황제와 왕들의 아버지시요 세상의 지배자시요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인임을 아소서.”19)
1299년 교황 보니페이스 8세(Boniface)는 구원의 필수적인 요소로 모든 사람은 로마 교황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했다.20) 로마의 교황은 황제와 왕의 아버지이며 세상의 지배자일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며 지상에서 하나님의 대리자이기 때문에 구원을 위해서 그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이상이다. 세상 나라가 그의 것이며, 왕들은 그의 신하고, 그 국민들은 그의 백성이라고 해야 한다.
이런 교황의 대권은 교황들의 후계자들이 베드로의 권위를 지녔으며 베드로는 지속적으로 교회를 지도하고 교황은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대리자라는 데서 비롯된다. 로마 교회는 이 결론에 반대하는 자에게는 누구든지 파문을 선언한다.21)
1962-1965년에 개최된 제2차 바티칸 회의는 교황의 가르침에 대해서는 그가 비공식적으로 한 말까지도 복종해야 하며, 그런 가르침까지도 그에 의해 결정되어 주어진 것이기에 존경과 신실함으로 동의해야 한다고 했다.22)
로마의 교황은 교회를 다스리는 데 충만하고 최고로 직접적이며 보편적인 재판권을 가지며, 그의 가르치는 권위는 교황무오의 교리로 정의되며 그의 다스리는 권위는 교황의 수위권에 들어 있다.23)
제1차 바티칸 회의는 그리스도의 모든 신자들은 사도적 교구와 로마 교황이 전 세계를 지배하는 수위권을 갖고 있으며 로마 교황 자신은 사도들의 지도자 베드로의 후계자이고 그리스도의 참 대리자요 전 교회와 신앙의 수장이요 모든 크리스천의 스승임을 믿어야 한다고 했다.24)
따라서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인간 교황은 인간이 아니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적 존재다. 그의 지상권은 전 세계의 모든 교회와 세계의 모든 국가를 망라한다. 이런 주장 때문에 종교개혁자 루터와 칼빈 등은 요한계시록에서 바다에서 나오는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인 짐승을 바로 로마 가톨릭 교회의 교황권이라고 보았다.25)

(2) 교황 수위권의 근거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는 교황 수위권의 근거로 마태복음 16장 17-19절을 든다. 거기서 예수님은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시고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하셨다.
저들은 ‘반석’이란 말에 집중하며 베드로가 바로 그 반석이며 그 위에 주님의 교회를 세웠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반석을 강조하기 위해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웠다면 그 돌은 큰 돌이었으리라고 한다.26) 물론 베드로에게 페트로스(작은 돌)라고 했고 페트라(바위)로 말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있기는 하나 베드로가 반석이라고 번역한 것은 정당할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한 기초만 있는데 그 기초석은 베드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시다(고전 3:11). 고린도전서 10장 4절에서는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 했다. 구약에서 반석이라는 말은 35회 이상 하나님이나 오실 메시아를 가리켰다.27) 시편 18편 2절에서도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피할 바위시”라고 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다만 제2차적인 의미에서 교회의 기초는 베드로를 포함한 사도들이었다. 따라서 성경은 제2차적인 의미로 사도들을 교회의 기초로 말씀했다.28)

(3) 교황의 무오
교황의 무오는 제1차 바티칸 회의(1869-1870)에서 제정된 교리다. 로마 교황은 최고의 목사와 믿음 안에서 그의 형제와 자매들을 강건하게 하는 모든 진실된 크리스천의 스승으로서, 믿음의 교리를 가르칠 때나 지켜야 할 도덕들을 그가 최종적인 법령으로 선포할 때 무오하다.29)
여기서 무오란 교황은 죄 없는 존재라거나 그의 모든 말이 영감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교황의 모든 사상이나 판단과 견해 혹은 결정이 영감되었다거나 항상 옳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가 우주적 목자로서 법적으로 정의한 도덕이나 교리적 가르침은 예외적으로 무오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2000년 안에 두 실례로는 교황 피우스 9세(Pius)가 1854년 성모의 원죄 없는 잉태에 대한 교리를 규정했을 때와 피우스 12세가 1950년에 마리아의 승천 교리를 규정했을 때였다고 한다. 그러나 199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hn Paul)가 여성들은 안수받을 수 없거나 혹은 성직을 받을 수 없다고 선언한 것은 무오한 가르침이지만 교황의 가르치는 권위의 특별한 부분이라고 한다.30)
이렇게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교황의 무오는 교황이 죄인이 아니라거나 그가 하는 말이 다 옳다는 것이 아니다. 신앙과 도덕에 관한 가르침에서 무오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피우스 9세의 성모의 원죄 없는 잉태나 피우스 12세의 마리아 승천의 교리는 그것이 교리적인 가르침이기에 무오하다고 주장하지만 어느 성경의 지원도 받을 수 없다. 그것은 교황 자신이 만든 교리요 전통일 뿐이다. 따라서 그 교리나 전통이 무오하다고 하면서 교황의 가르침이나 결정에도 잘못이 있을 수 있다는 설명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교황이 규정한 교리도 성경의 지원이 없다면 인간이 만든 유전과 다를 바가 없다. 교황과 주교들의 교도권이 아니라 성경과 성령님만이 오류 없는 그리스도인의 교사시다.

영적인 권위의 차이
가톨릭의 가르침   성령의 가르침
1. 베드로가 사도들의 우두머리였다
   (552, 765, 880)
그리스도가 사도들의 머리였다(요 13:13)
2. 주교들이 사도들의 계승자들이다
   (861-862, 938)
사도들의 계승자는 없다.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며 부활의 증인들이다(행 1:21-22)
3. 로마의 주교로서 교황은 베드로의 계승자다(882, 936) 베드로의 계승자는 없다
4. 교황을 머리로 하여 주교들은 만인의 교회를 통치한다(936)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만인의 교회를 통치하신다
(골 1:18)
5. 교도권은 교회의 권위적인 교사다
   (81, 86)
성령이 교회의 권위적인 교사다
(요 14:26; 16:13; 요일 2:27)
6. 교도권은 성경의 오류 없는 해석자다
   (890-891, 2034-2035)
성령만이 성경의 오류 없는 유일한 해석자다
(행 17:11)
7. 교황은 그의 권위 있는 가르침에 절대 오류가 없다(891) 하나님만이 오류가 없으시다(민 23:19)
8. 성경은 교도권에 의해 정의된 뜻 안에서만 해석해야 한다(113, 119) 성경은 성령에 의해 의도된 원래의 의미대로 해석되어야 한다
(벧후 3:14-16)
9. 성경과 전통은 둘 다 하나님의 말씀이다
(81, 85, 97, 182)
성경만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요 10:35; 딤후 3:16-17; 벧후 1:20-21)
전통은 사람의 말이다(막 7:1-13)
10. 성경과 전통은 둘 다 교회 믿음의 최고 규범이다(80,82) 성경만이 교회 믿음의 규범이다(막 7:7-13; 딤후 3:16-17)

 

제임스 G. 맥카티, 가톨릭에도 복음이 있는가?,  pp. 443-444에서 요약 정리함.



4) 마리아의 전통

1991년 교황 요한 바오로(John Paul)는 포르투갈의 화티마(Fatima)를 방문했는데 이곳은 동정녀 마리아 상에 다이아몬드 왕관을 씌운 곳이다. 거기서 그는 동정녀 마리아가 그의 생명을 구해 준 것을 인해서 감사했다. 그리고 그가 소유한 모든 것도 동정녀 마리아의 공으로 돌렸다.31)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는 일반적으로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요 하늘의 여왕이라며 그녀에게 최고의 존숭을 돌린다.

(1) 마리아 숭배의 역사
마리아 숭배 사상은 일찌감치 시작되었다. 교황 시리키우스(Siricius)는 392년 데살로니가의 감독에게 보낸 편지에서 마리아의 영구한 동정을 언급했다.32) 1547년 트렌트 회의 때까지 로마 가톨릭 교회는 마리아의 무죄를 발표하지 않았다. 그러나 1854년 교황 피우스 9세는 마리아가 그녀의 전 생애를 통해서 어떤 죄에서도 자유했다고 언명했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복되신 사도 베드로와 바울의 권위와 우리 자신의 권위로 가장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는 그녀의 임신의 첫 순간에서부터 전능하신 하나님의 단 하나의 은혜와 특권으로 인류의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공로 때문에 원죄의 모든 오점으로부터 면제되었음을 하나님의 계시로 선언하며 규정한다.”33)
은혜의 중재자와 그리스도의 공동 구속의 중보자로서 마리아의 역할이 근래 가톨릭 신학에서 두드러진다. 교황 레오(Leo) 13세는 1892년 성직자들에게 보내는 회칙(Octobi Mense)에서 아무도 아들을 통하지 않고는 지존하신 아버지께로 이를 수 없듯이 아무도 그 어머니를 통하지 않고는 아들에게 갈 수가 없다고 했다.34) “마리아는 모든 찬양을 받기에 합당한 분이며……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을 마리아에게 맡겨야 한다.”35) 고 했다
1892년 교황 레오 13세는 그의 성직자에게 보내는 회칙(Magnae Dei Matris)에서 마리아에게 기도하고 그녀의 은혜의 보고(treasuary)에서 도움을 받으라고 했다. 이어서 그는 마리아는 천사와 사람의 모든 계급보다 높은 지위에 있으며 그녀만이 예수님 다음이라고 했다.36)
1904년 피우스 10세는 “그리스도에게 연합된 모든 사람은…… 마리아의 자녀이며 마리아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다”라고 했다.37) 그는 또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고통을 함께 나눴다고 했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전 세계와 그녀의 독생자 사이에 가장 능력 있는 중보자요 화해자이며…… 은혜의 공급에서 최고의 대리자(성직자)”라고 했다.38)
교황 피우스 12세는 1943년 회칙(Mystici Corporis Christi)에서 “마리아는 모든 죄에서 면제되었다. 그녀는 그녀의 아들을 골고다에서 아버지께 드렸다. 그녀는 오순절 때 성령의 부으심을 받았다. 그녀는 이제 교회를 위해 모성적인 돌봄을 예비했다. 그리고 그녀는 이제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린다”고 했다.39)
1950년 교황 피우스 12세는 “마리아는 죽음에서 몸의 부패로부터 보존되었다. 그녀는 죽음을 정복했으며 하늘의 영광으로 몸과 영이 살아났다…… 하나님의 죄없는 어머니 마리아는 그녀의 생애를 끝냈을 때 여전히 동정이었으며 몸과 영은 영광의 하늘로 들려졌다”고 했다.40)
이상에서 본 대로 로마 가톨릭 교회가 가르치는 마리아의 교리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① 하나님의 어머니이고 ② 예수님을 낳은 후에 어떤 자녀도 더 낳지 않은 동정이었으며 ③ 죄 없이 잉태했으며 ④ 죄를 짓지 않는 삶을 살았고 ⑤ 죽을 때 몸과 영이 하늘로 취해졌으며 ⑥ 예수님과 공동 구속자이며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받았고 그와 함께 거의 죽었으며 그리스도와 인류를 구속했으므로 ⑦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이다.
만일 이런 로마 가톨릭 교회의 주장이 인간이 만든 교리나 전통이 아니라면 성경에 근거한 것이어야 하며 적어도 성경의 한두 구절이라도 명확하게 지지를 받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
그럼에도 로마 가톨릭 교회는 그 교리들을 변호하며 그것들이 무오한 진리라고 주장한다. 이런 교리들은 오랜 시간을 거쳐서 점진적으로 믿어야 할 교리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2) 마리아의 부모
가톨릭의 마리아 교리는 마리아의 부모로부터 출발한다. 전통에 의하면 마리아의 부모들은 성 앤(Ann)과 성 요아킴(Joachim)이라고 한다. 그리고 주후 165년경 쓰여진 성 야고보의 최초의 복음에 의하면 마리아의 출생은 기적이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부모들은 자식을 낳지 못했는데 마리아의 아버지 요아킴이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한 후에 한 천사가 그에게 마리아의 출생을 예언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리아의 부모 앤과 요아킴은 매우 종교적이었으며 세례 요한의 가정과 친척이었다고 한다.
캐나다의 비아프레(Beaupre)에는 성 앤의 유명한 성당이 있는데 성 앤의 중재로 전능하신 하나님께로부터 기적을 구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실제로 기적적인 치료가 일어난다고 한다. 따라서 7월 26일은 성 앤을 위한 명절로 지키고 있다.41)

(3) 마리아는 몇 명의 자녀를 두었는가?
로마 가톨릭 교회는 성령의 능력으로 마리아가 임신한 자녀는 예수님이 유일하다고 한다.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어머니가 되리라고 알렸고 성령이 마리아를 덮은 것은 기적적인 임신을 가리킨다. 그래서 3월 25일을 기념하며 거기에 9개월을 더해 12월 25일을 성탄일로 축하한다. 그리고 예수님을 낳은 후에 마리아는 계속 동정으로 지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성경이 말씀하는 그리스도의 탄생 기사와 전혀 맞지 않는다. 천사가 마리아에 대해 한 말만 인정하고 그의 남편이 될 요셉에게 한 천사의 말은 무시하는 것이다. 성경은 분명히 맏아들을 낳았다고 했다(눅 2:7). 영어로는 첫째로 낳은 아들(First born son)이다.
이에 대해 로마 가톨릭 교회는 고대 히브리어에서 장자라는 말(bekor와 헬라어 Prototokos)은 장자 상속권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독자는 둘째, 셋째 아들이 없을지라도 장자의 법적 명칭을 가질 것이라고 한다. 물론 여기 첫째로 낳은 아들이라는 말의 해석이 다양하기는 하다.
① 첫째로 낳은 자란 의미는 마리아가 후에 다른 자녀들을 가졌다는 것이다(Hendriksen, 마 12:46, 47;눅 8:19-20).
② 맏아들이라는 언급은 2:23-24을 준비하기 위함이다(Marshall; Godet).
③ 이 말은 예수님을 독자로 부르는 것과 동등하다(로마 가톨릭).
④ 다윗 가문에서 장자로서 다윗의 왕좌를 상속할 예수님의 권리를 가리킨다(Denker, Schirmam).
⑤ 상속의 유익에 대한 장자로서 예수님의 권리를 가리킨다.42)
헬라어 ‘푸로토토코스’(Prototokos)는 뒤를 이을 자들에 대한 어떤 암시도 없이 ‘처음’이라는 뜻이다(출 13:2; 민 3:12). 이 방법으로 사용된 그 말은 하나님께 대한 특별한 관계를 가리킨다. 그러나 이 용어가 로마 가톨릭에서 제시하는 하나님께 대한 독특한 혹은 메시아적 관계에서도 그렇게 특별하게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누가는 그밖에 어디서도 하나의 명칭으로서 그 말에 대한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43)
만일 마리아가 예수님만을 낳았다면 첫 아들을 낳았다고 말할 이유가 없고 성경에서 예수님의 남녀 동생들에 대한 언급은 의미가 없는 것이 되고 만다(마 12:46-47; 눅 8:19-20; 막 3:31, 34).
이에 대해 로마 교회는 마태복음 13장 55절의 “이는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에서 형제들의 헬라어 아델포이(adephoi)는 형제들, 사촌들 혹은 친척들로 조카들과 삼촌들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실제로 예수님의 동생들이 있었다면 십자가상에서 예수님이 모친 마리아를 사도 요한에게 부탁하실 이유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한 명의 자녀만 있었다고 결론내린다.44)
그러나 마리아가 예수님 외에 다른 동생들을 낳지 않았다면, 예수님을 낳은 후에 동정으로 지냈다면 전혀 맏아들(first son)을 낳았다고 기록할 이유가 없다. 또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않는 자들이 예수님의 가족을 보잘것없는 목수의 자녀들로 언급하면서 조카들을, 그것도 이름을 들어 언급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예수님의 동생들 중에 야고보(9회)와 유다(유다서)는 신약성경에 나오고 있으며 그 누이들이 그들과 함께 나사렛에서 살고 있음을 보여 준다.45) 그러므로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은 후에 동정으로 지냈다는 것은 성경의 기록과 맞지 않는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성경을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면서 그 권위를 주장한다지만 성경보다 전통이나 가경을 더 의지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지적되어야 할 것은, 저들이 마리아를 높이기 위해 그 부모들까지 존중할 존재로 여기고 신앙심이 깊었다고 주장하면서, 성경이 기록한 의로운 사람으로 천사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마리아의 남편 요셉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가톨릭 교회는 마리아 숭배에 관해서 하나님만 예배하는 개신 교회와 다를 바가 없다고 한다. 다만 하나님의 어머니로서 제일가는 존귀를 드린다고 한다. 이것은 미국인이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에게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다만 마리아에게 모든 성도들보다 가장 뛰어난 첫 번째의 찬미를 드린다고 한다. ① 그것은 마리아가 하나님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며 ② 어떻게 천국을 얻고 그녀의 아들에게 가까이 갈 수 있는지에 대한 모본으로 모든 성도들이 따라야 하기 때문이고 ③ 하늘에 계신 구속자와 성도들의 어머니로 땅에 있는 우리를 위한 힘있는 변호자요 중재자이기 때문이다.46)

(4) 그러면 마리아는 완전했는가?
마리아의 무흠잉태 교리는 그녀가 성 앤의 자궁에서 임신된 첫 순간부터 원죄로부터 지켜졌음을 가르친다. 그 교리에 의하면 마리아는 우리 하늘 아버지 하나님의 딸이요 예수님의 어머니이며 성령의 배우자(아내)이다. 마리아는 구원 계획의 중심에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의 창조에서 다른 이와 같지 않게 그녀를 완전케 하셨다. 마리아는 항상 사랑의 자원 의지로 행했으며 하나님께 순종했다.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은 우리에게 죄의 혼란을 가져왔으며, 구속과 구원을 가져올 것은 새로운 하와(마리아)와 새로운 아담(예수)의 순종이었다. 마리아의 이 완전은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의 실천을 위해 그녀의 아들의 충성된 신자들을 위한 하나의 모범이다.47) 따라서 마리아는 구원이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 어떤 면에서 예수님과 공동 구속자요 구원자이다.
마리아의 무흠잉태 교리는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기적적인 사건을 의미한다고 한다. 무흠잉태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선물로 그녀가 어머니로서 예수님께 죄 없는 인성을 줄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것이다. 마리아의 무죄는 그녀의 임신 첫 순간에 시작되었다. 마리아는 그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결코 어떤 개인적인 죄를 범하지 않았다.48)
마리아는 구원이 필요했는가? 마리아의 영혼은 물이 가득한 잔과도 같아서 다른 어떤 것들이 들어갈 빈자리가 없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했으므로 죄와 원죄 혹은 실제적인 죄가 있을 곳이 없었다. 그녀는 그녀의 아들에게 때 묻지 않고 흠없는 인성을 물려줄 수 있었다.49) 이런 가톨릭 교회의 주장들은 마리아가 죄 없는 완전한 자라는 것이다.

(5) 왜 마리아에게 기도하는가?
로마 가톨릭 교회는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이시며 신성과 인성을 지니신 분이므로 그만이 하늘과 땅,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보자시다. 그러나 중재자는 단순히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기도(요청)를 해주는 자다. 미사 때 제사장의 사역을 통해 신부는 그의 백성을 위해 예수님께 중재한다. 마리아의 중재도 그와 같다고 본다. 그들에 의하면 마리아는 모든 성도의 첫째이며 교회 안에서 특별한 존귀와 위치에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적 어머니다. 하나님의 어머니, 교회의 어머니에게 가는 것은 얼마나 타당한가? 마리아는 그녀의 아들에게 가장 가까운 분이다. 따라서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님께 가는 것은 마리아가 예수님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기도에서 그(예수님)에게 우리를 연합시킴으로 그의 중요성을 더한다고 한다.50)

(6) 마리아는 죽었는가? 그렇지 않으면 승천했는가?
마리아는 원죄에서 지켜졌고 죄가 없지만, 원죄의 결과로 세상에서는 재난들을 겪으면서 몸이 병들고 지성이 어두워졌으며 배우는 것이 필요했다. 따라서 그녀의 종말은 죽음이었으며, 그러고 나서 몸의 부활을 경험했는데 그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낙원으로 들어갔다고 추정한다. 마리아의 승천 교리는 부활이 마리아를 위해 즉각적으로 일어났으며, 그녀는 원죄로부터 지켜졌기에 심판받을 세상 끝까지 기다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동방정교회에서는 마리아는 죽지 않았고, 지상 생활의 마지막에 단지 잠에 빠졌으며 아들의 능력으로 천국으로 갔다고 생각한다. 마리아는 그녀의 모태의 순간부터 지켜졌기 때문에 원죄의 결과로 인한 고통을 받지 않았다. 그러므로 하늘에서 하늘과 땅의 왕으로 다스린다.51)
마리아의 승천에 관해서는 무흠잉태 교리의 귀결로 생각한다. 계시록 12장 1절에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고 했다. 교황 피우스 12세는 이 말씀으로 모든 세대를 위한 마리아의 승천을 규정했다. 마리아는 원죄가 없었기에 그녀의 무흠수태의 이유가 되며, 그녀는 지상에서 썩는 고통을 당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녀의 신적 아들 예수님이 그녀의 몸과 영을 하늘로 승천케 했다. 예수님의 승천은 그가 가장 복되신 삼위일체의 제2위이기 때문에 그 자신의 능력으로 되었다. 성모승천(Assumption)은 누군가가 마리아를 하늘로 들여보낸 사실을 가리킨다. 다른 말로 하면 그녀는 자신이 승천을 할 수 없었다. 마리아의 신실함, 겸손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순종을 인한 보상이 그녀의 승천이었다.52)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마리아는 예수님을 잉태하고 낳았기 때문에 원죄에서 지켜지고 평생 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에 이 세상의 사람 중에 유일하게 죽음을 맛보지 않고 혹은 맛보고 즉시 부활하여 아들의 덕으로 하늘로 승천한 유일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계시록 12장 1절에 나오는 한 여인을 들어 마리아의 승천으로 규정한 교황 피우스 12세의 해석과 적용은 근거 없고 지극히 자의적 해석이다. 거기 나오는 여인은 승천한 마리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강림 전후에 있을 충성된 공동체에 대한 묘사다. 12장에서 그 여인은 그리스도의 오심 전과 후에 살아 있는 하나님의 백성의 연합을 가리킨다.53)
로마 가톨릭에서 마리아를 공동의 구속자, 모든 은총의 중보 여인으로 보고 숭배하는 것은 결코 성경적이 아니다. 성경에 근거하지 않는다면 전통이나 교황이나 주교단의 교도권으로 만든 것에 지나지 않는다. 성경에서 구속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시다. 그리스도는 흠 없는 자신을 하나님께 드림으로(히 9:14) 구속을 이루셨다. 따라서 신자는 그 아들 안에서 구속 곧 죄사함을 얻었다(골 1:13-14; 롬 3:24). 역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는 단 한 분 그리스도시다(딤전 2:5). 이에 대해 맥카티(James G. McCarthy)는 ① 마리아는 죄를 위해 고난당하지 않았다. ② 마리아는 죄를 위해 죽임을 당하지 않았다. ③ 마리아는 인류를 구속할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고 했다.54)
우리 개신교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마리아 숭배 사상 때문에 마리아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따라서 마리아가 실제로 예수님을 낳은 육신의 어머니요 어린 예수님을 젖 먹이고 양육했음에도 실제로 강단에서 마리아에 대한 설교는 들을 수가 없다. 그러나 마리아 숭배는 마리아가 시작한 것이 아니다. 마리아는 겸손했다. 마리아를 그렇게 만든 것은 로마 가톨릭 교회이다.
그러므로 우리 개신 교회에서 특별히 복음적인 교회와 신자들은 마리아를 우리 주님의 어머니로, 성경이 그녀에게 준 ‘여인 중에 가장 복된 자’의 영예로 존경해야 한다. 구주의 어머니로 선택되었다는 점에서 마리아가 부여받은 높은 영예는 그 누구도 받지 못한 것이다. 그녀는 참으로 덕이 있는 여인이었고, 비범한 신앙을 가진 여인이었다. 그녀는 그녀에게 할당된 직무를 훌륭하게 완수했다.55)
우리는 가톨릭이 아니기 때문에 마리아에 대해서는 무엇이든 들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녀의 생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신뢰하고 겸손한 신앙을 가진 마리아를 본받을 필요가 있다.56)

마리아에 대한 가르침의 차이
가톨릭 교리의 가르침   성령의 가르침
1. 마리아는 잉태될 첫 순간부터 무죄하게 되었다. 마리아도 아담의 자손으로 죄에서 잉태되었다      
(시 51:5; 롬 5:12)
2. 마리아는 온전히 거룩하신 분으로 완전히 죄 없는 삶을 살았다(411,  493) 마리아도 죄인이었다. 오직 하나님만이 거룩하시다(눅 18:19; 롬 3:23; 계 15:4)
3. 마리아는 그리스도가 탄생하기 전부터, 탄생하는 동안, 탄생 후에도 동정녀였다(491-511) 마리아는 그리스도가 탄생하기 전까지 동정녀였다(마 1:25). 후에 그녀는 다른 자녀들을 낳았다
(마 13:55-56, 시 69:8)
4.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다(963, 971,2677)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였다(요 2:1)
5. 마리아는 교회의 어머니다(963, 975) 마리아는 교회의 멤버였다(행 1:14; 고전 12:13, 27)
6. 마리아는 공동 구속자다. 그녀는 그리스도와 구속의 고통 행위에 참여했기 때문이다(618, 968, 9701) 그리스도만이 죄를 위해 고통 받으시고 죽으신 유일한 구주시다(벧전 1:18-19)
7. 마리아는 생을 마칠 때 몸과 영혼이 하늘로 승천했다
(966, 974)
마리아는 죽었고 그녀의 몸은 흙으로 돌아갔다
(창 3:19)
8. 마리아는 공동의 중보자다(968-979, 2677) 예수 그리스도만이 중보자시다(딤전 2:5;
요 14:13-14; 벧전 5:7)
9. 하나님은 마리아를 하늘과 땅의 황후로 하늘의 영광 속에 높였다(966). 그녀는 특별한 헌신과 함께 찬양을 받고 있다            
(971, 2675)
주님만이 하늘과 땅 위로 높임을 받으셔야 한다
(시 148:13). 하나님은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하셨다(출 20:3)

 

제임스 G. 맥카티, 가톨릭에도 복음이 있는가?, pp. 333-334에서 요약 정리함.



5) 로마 가톨릭의 연옥 교리

연옥(purgatory)이라는 말은 성경에 나오지 않으며 성경적인 용어도 아니다. 외경에서 연옥 교리의 씨앗(근원)을 발견한다. 직접적으로는 외경 마카비 2서(2 Maccabees, 12:42-46)에 근거한다.
유다 마카비우스(유대인)는 주전 167-160년 시리아 왕 안디오커스 4세 네피파니스를 대항한 성공적인 봉기를 이끌었다. 그 전쟁에서 어떤 군인들은 생명을 잃었는데 그들 중에 얼마는 행운의 주문으로 그들의 몸에 부적을 붙이고 있었다. 이는 모세의 율법에 엄격하게 금지된 것으로 이런 큰 부적들은 이교 신들의 형상을 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전쟁에서 죽은 군인들은 우상 숭배의 죄를 지었다. 그들은 백성과 종교의 자유를 위해 싸우다가 죽었음에도 죄를 짓고 죽었다. 이에 유다 마카비우스는 죽은 병사들을 위해 기도했고 마카비2서 12장 42-46절에 기록되었다. 그는 하나님께 한 그 간구 때문에 그들의 죄가 용서받으리라고 확신했다. 이것이 죽은 자를 위한 기도의 중심이 되는 교리의 한 실례가 되었다.
죽은 자를 위한 기도는 실제로 어떤 영적 선을 행한 것이 있거나 칭송받을 가치가 있는 자여야 한다. 만일 지옥에 가 있는 자라면 도울 수 있는 기도자가 없다. 또 천국에서라면 기도자가 필요 없다. 천국도 지옥도 아닌 제3의 장소에 가 있는 자여야 한다. 그곳이 바로 연옥이라는 것이다.
연옥은 지옥이 아니다. 연옥은 일시적으로 완전하지 못한 자가 심판을 받는 곳으로 형벌과 정화의 고통이 있는 곳이다. 그리스도인의 완전 상태에 이른 사람은 직접 천국으로 가게 되지만, 완전에 이르지 못한 자들이 가는 곳으로 세례 받지 않은 모든 성인이나 세례 후에 치명적인 죄를 지은 사람들은 곧장 지옥으로 간다. 다만 대 미사로 인해 부분적으로 성화된 신자가 교회의 교제 안에 죽었으나 그럼에도 죄의 다소로 천국 가는 데 장애가 된 자들이 연옥으로 가서 긴 시간이나 짧은 시간 동안 모든 죄가 말소될 때까지 고통을 받게 되며 그 후에 그들은 천국으로 옮겨지게 된다.
연옥에서 정화의 고통 기간은 몇 시간에서 수천 년까지 다양하다. 그리고 교회에 기증품을 드리거나 봉사하는 것, 신부들의 기도, 친척이나 친구들이 마련한 죽은 자를 위한 미사들에 의해 영혼이 연옥에 머무는 기간이 단축되고 경감되고 생략된다.57)
마침내 이런 연옥의 교리는 면죄부의 판매로 이어지게 되었다. 처음 죽은 자를 위한 면죄부는 1476년 교황 식스터스 4세(Sixtus Ⅳ)에 의해 제정되었다. 그리고 1500년대를 넘어오면서 마침내 연옥에 있는 고통 받는 영혼들까지 구출할 수 있게 되었고 점차 상업화로 타락하고 말았다. 도미니칸 수도사 테젤(Tetzel)은 “연옥에 있는 영혼들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라고 울부짖는다. 당신들이 약간의 돈으로 우리를 구해낼 수 있는 데서 우리는 무서운 고통 가운데 있다. 당신들은 우리를 불꽃 가운데 버려 둘 것인가?”라고 했다. 그리고 청중들에게 확신시키기를 “동전이 금고 안에 떨어지는 소리를 내자마자 영혼이 연옥에서부터 천국으로 올라간다(springs)”고 했다.
따라서 루터는 1517년 10월 31일 만성절, 대학교의 게시판이었던 교회 문에 그 문서(95논제)를 붙였다. 그 논제들은 주로 면죄부의 부당함에 대한 것이었다(5-7; 8-29; 30-40). 그리고 그는 논제 53-80에서 복음의 설교와 면죄부의 설교를 비교했다. 루터는 복음의 근본적인 것들을 다루면서 십자가의 신학에 관한 네 가지 논제로 마치고 있다.58)
그러나 연옥의 교리는 성경의 그리스도를 통한 믿음의 은혜 구원 교리와 맞지 않는 공로 구원이다. 그것은 점진적 구원관에 따른 교리이며 성경에 근거하지 않고 외경에 근거한 로마 가톨릭 교회와 동방 교회의 전통일 뿐이다(Ⅱ Macc. 12:39-45).
물론 로마 가톨릭에서는 성경도 연옥의 교리를 지지한다고 주장한다.
⑴ 마태복음 12장 32절이다. 여기서 예수님은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고 하셨는데 어떤 죄들은 다음 생애에서는 용서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씀은 연옥의 존재를 암시하거나 사후에 속죄하는 장소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가 될 수 없다. 이 구절의 의미는 성령님을 모독하는 것은 결코 용서될 수 없다는 것이다.
⑵ 고린도전서 3장 10-15절이다. 이 구절은 교회의 터가 그리스도이며 사역자들은 좋은 재료를 써서 건축하듯이 해야 함을 가르친다. 그렇지 못하다면 회개해야 한다고 경고한 것이다. 따라서 전후 문맥을 보아도 사후에 남은 죄를 사할 기회의 연옥이 있다는 가르침이 될 수 없다.
그뿐 아니라 저들이 기초로 하는 마카비Ⅱ(12:39-45)의 구절도 연옥에 대한 성경적인 근거나 죽은 자의 기도를 위한 성경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
⑴ 마카비Ⅱ 12장은 확실치 않고 모호하며 (2) 전후 문맥에 일관성이 없고 (3) 모세의 율법이 죽은 자를 위해 제사 드리는 것이 유대인의 믿음이라고 가르친 적은 한 번도 없다.59)
로마 가톨릭 교회는 면죄부에 관해서 그것이 부도덕하고 죄된 것이었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죄의 사면에 관한(면죄부) 신학은 결코 변하지 않았으며 16세기 이래로, 아니 제2바티칸 회의에서까지도 삭제되지 않았다. 연옥은 세례로 원죄가 사해지고 나서 마치 대수술을 받은 환자에게 남은 수술을 하고 꿰맨 자국이나 상처를 치료하는 것 이상이 아니라고 한다.60) 그런 남은 죄는 정화되어야 하며 그 일에 면죄부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6) 로마 가톨릭 교회의 림보

림보(limbo)라는 말은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또 근래 가톨릭 교회의 요리문답에도 없다. 그러나 은혜에 행위를 더한 구원을 주장하는 로마 가톨릭 교회가 고안해 낸 사후의 세계다. 그러면 림보란 무엇인가? 영어사전에는 지옥의 변방으로 지옥과 천국 사이에 있으며 기독교를 믿을 기회를 얻지 못했던 착한 사람 또는 세례를 받지 못한 어린아이 등의 영혼이 머무는 곳이라고 되어 있다. 라틴어로 림보(limbus)는 ‘변방, 가장자리’라는 뜻이다. 따라서 천국과 지옥의 중간 단계를 가리킨다고 본다. 그러면 왜 림보라는 말이 생겨나게 되었는가?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는 구원을 위해서는 세례가 필요하기 때문에 세례 받을 수 있기 전에 죽은 선한 사람들이 지옥에 가야 하느냐는 질문이 생기게 되었다.
이에 대해 교부들은 두 개의 림보에 관해 말했다. 아버지들의 림보(Limbus patrum)와 유아들의 림보(limbus parvulorum)가 그것이다. 이 두 곳은 사후에 영혼들이 가게 되는 자연의 행복이 있는 곳이었다. 덕스럽게 살았으나 세례 받지 못한 성인들로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 죽은 자들과 구속받은 인류는 이 림보로 가서 구원받기 위해 성 금요일을 기다린다. 아담과 하와, 아브라함, 이삭, 야곱, 다윗, 솔로몬 등이 이곳(어떤 때는 죽은 자의 지옥으로 부름)으로 갔을 것이라고 한다.
기독교 시대에 세례 받지 않고 죽은 유아들은 영원히 행복한 림보에 들어가게 될 것이지만, 천국에 들어가려면 세례가 필요하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가지를 못한다.61) 따라서 림보는 죽기 전에 반드시 세례가 필요하다는 로마 교회의 가르침 때문에 생겨난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세례받지 못하고 죽은 유아들은 영원한 지옥에서 영구히 제외된다고 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자연적인 행복의 장소를 타락하기 전에 아담이 즐겼던 에덴동산으로 보기도 하고 또 누가복음 16장 22절에 근거해서 아브라함의 품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62) 로마 가톨릭 교회가 어떻게 주장하든 간에 림보는 성경에 없으며 세례를 구원의 필수로 믿고 은혜 구원 대신 믿음에 행위를 더한 구원을 주장하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필연적인 논리로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