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죄를 범한 회원을 사단에게 내어 주어야 하는가?
RevSuh  2008-08-14 16:42:48 hit: 1,727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어 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얻게 하려 함이라”     (고전 5:1-5)

이 본문은 교회의 권징에 대한 말씀으로 사실상 오늘날 가장 인기 없는 주제 중에 하나다. 그러나 권징은 사도적 교훈을 따르는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시행이 쉽지가 않다는 데 있다. 더구나 권징을 할 때 그 권징의 대상이 교회를 옮겨 쉽게 다른 교회로 가버린다. 그래서 차라리 그냥 놔두는 것이 좋다는 입장도 있다. 그러나 진정한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의 성실한 선포와 성례의 시행뿐 아니라 성실하게 권징이 시행되는 곳이어야 할 것이다.
  
이 본문에서 권징을 받아야 할 사람은 교인으로서 아버지의 아내(서모)와 간통을 한 경우이다. 물론 이 경우에 그의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 서모는 과부로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음행은 그 동사가 현재 부정사형이여서 그 상황이 단회적인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행위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으로 레위기 18:8이 분명하게 금하고 있으며 랍비적인 전통에 따르면 돌로 쳐 죽여야 한다. 더구나 이런 음행은 당시 로마법에서도 분명하게 금지하고 있는 범법 행위였다(제2세기 Gaius의 Institutes 163). 그래서 바울은 그들과 떨어져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하면서 그를 사단에 내어 주었으며 육신은 멸하고 그의 영은 주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함이라 하였다. 권징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며 권징을 하지 않는 교회를 꾸짖은 것이다.
  
그러면 `사단에게 내어주었다'는 말씀은 실제로 무엇을 가리킨 것인가?  어떤 이들이 그 음행은 로마법을 어긴 것이므로 교회가 로마의 관리에게 그 음행자를 내어 주어 시민의 법으로 그를 처벌하게 된 것을 가리킨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로마의 관원이 사단이 되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으며 바울은 교회 안에서의 문제를 세상 법정으로 끌고 나가기를 원치 않았다(고전 6:6).
  
만일 위의 해석을 수용할 수 없다면 어떤 해석이 타당한가?  그 해석은 다음 세 가지 질문에 대한 해답이어야 할 것이다.

1. 사단에게 내어준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가?  
  사단에게 내어 준다는 의미는 분명 교회에서의 추방이나 제명 또는 출교를 가리켰을 것이다.  2절뿐 아니라 6-8절 그리고 13절 등을 보아 분명하다(신 17:7). 그러므로 교회의 교제에서 범죄자는 제외시킬 것을 명령한 것이라고 보겠다. 이렇게 보는 것이 해석상 무리가 없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에서 추방되면 그는 분명 불순종자들 안에서 역사하는 이 시대의 지배자가 있는 영역으로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엡 2:2; 골 1:13).  이 경우에 음행자를 사단에게 내어 준 목적은 그의 육을 멸하기 위함이요 여기서 육을 멸한다는 말은 그의 죄의 정욕을 죽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생기는데 본문에 육은 죄 많은 본성의 육이 아니라 영과 대조되는 몸(body)을 가리킨다. 몸의 행위를 죽게 한다고 할 때 의미가 통하지만 육신의 몸을 멸한다면 바울의 본래의 의도와는 다른 해석이 된다. 어떤 주석가는 우리의 몸은 사단이 괴롭게 할 수 있고 귀신들도 할 수 있음을 들어 사단이 그의 몸을 심판하는 것으로 보았다.

2. 육체를 멸한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가?
  육체를 멸한다는 말은 여기서 육체적 고통을 가리켰다고 한다. 어떤 학자들은 그 예로 고린도전서 11:30-32에서 어떤 교인들이 주의 성찬에서 자신을 살피지 않고 먹고 마심으로 어떤 이는 병들고 죽기까지 하였음을 예로 든다. 이런 고통을 통해서 그 음행자는 회개하게 되고  교제로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는 교회 안에 있는 회원에 관해서이지 이미 출교된 자에 대한 것이 아니다.
  어떤 학자들은 육의 멸함을 육신의 죽음으로 보아 사단에게 내어준 것은 죽음에 내어 준 것이라고 한다. 이 경우에 죽음을 하나의 치유제로 본다. 즉 죽음을 통해서 범법자가 그의 죄를 위해 속죄되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유대주의에서 죽음은 때로 대속죄일에 취급되지 않은 죄에 대한 속죄의 방편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바울이 여기서 그렇게 썼을 리가 없다. 그에게 대속은 우리의 죽음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다.

3. 그의 영은 구원얻게 하려 함이란 뜻이 무엇인가?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얻게 하려 함이라는 말씀에서 영은 그의 영이라는 그의(his)가 빠져 있다. 그래서 자칫하면 성령은 구원받게 되리란 해석이 되는데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여기서는 그의란 말이 없어도 영은 범법자의 영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여기서 육이나 영은 사실상 인간에 대한 말이므로 육으로서의 인간과 영으로서의 인간을 가리킨다고도 볼 수 있다. 육은 인간의 영을 포함한 전존재로서 하나님에 반대되는 입장에 서 있는 존재요, 영은 육신을 포함한 전 존재로서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하나님께 구속된 존재를 가리킨다.  이렇게 보는 경우 육의 멸함은 죄의 본성이 멸해지는 것이며 이 경우 바울은 육이란 말을 종교적 의미로 쓴 것이 된다.  그러므로 영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중생된 인간 존재를 가리키며 성경에 따라 성령으로 살아 있는 것을 가리킨다(롬 8:5-11). 따라서 범죄하고 출교당한 자가 자기 죄를 자복하며 회개함으로써 죄 많은 육신이 죽으면 그가 다시 살게 되는 것을 가리켰다.  여기 마지막 날은 물론 주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요 죄 없이 구원되리란 뜻이다.
  
이 본문에 비추어 오늘 현대 교회에서의 권징 부재의 문제점이 해소되어야 한다. 그 시행의 목적은 전체 교회의 순결과 그 개인의 영혼 구원에 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교회 안에서 권징을 시행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가 우리에게 그렇게 하기를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교회를 사랑한다면 우리는 교회의 순결에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만일 우리가 범법자를 사랑한다면 그의 영원한 영혼에 관심이 있어야 한다.

   주
   1. William E. Orr and James A. Walther, 1 Corinthians(New York: Doubleday, 1976), p.186
   2. Charles Hodge, A Commentary on the First Epistle to the Corinthians(The Banner of Truth Trust, 1964), p.85
   3. W. Harold Mare, 1 Corinthians, E.B.C., Vol.10, p.217
   4. C.K. Barrett, The First Epistle to the Corinthians(Peabody: Hendriksen, 1987), pp.124-125
   5. M.T. Brauch, Hard Sayings of Paul, pp.101-102
   6. Robert H. Stein, Difficulties in the Epistles(Baker, 1988), p.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