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물과 피로 임한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요일 5:6-8) 신앙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이다. 그래서 십자가의 보혈을 노래하는 찬송이 많다. 그런데 위의 본문은 물을 더하고 있다. 그러면 여기서 물과 피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물과 피로 임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 왜 이 물과 피가 증인으로서 성령과 나란히 나오는가? 어떻게 이 생명 없는 요소들이 증거를 하는가? 먼저 물과 피는 무엇을 의미하는가부터 알아보자. 일반적으로 세 가지 형태의 해석이 제시되어 왔다. 첫째로, 물과 피는 세례(물)와 성찬(피)에 대한 두 가지 성례를 가리킨다고 한다(Cullnam, Christian Worship, 110). 이런 해석은 종교개혁시대 루터와 칼빈도 주장했었다. 그러나 몇 가지 어려움이 있다.
1. 요한은 여기서 교회의 성례에서 그리스도의 지속적인 표명이 아니라 지상에서 성육의 역사적인 임재와 성육신 하신 생애에 관심을 두었다. 2. 요한에 의해 사용된 단순과거의 오신 분은 성례에서 반복하여 나타나심보다는 역사상 명확한 순간을 암시한다 는 사실이 강조되었다. 3. 피라는 낱말을 병행없이 성찬을 위한 동의어로 썼다면 자연스럽지 않다. 4. 두 번째 언급인 물로만 아니요 라는 말은 그것들이 구별되는 것을 허용하며 세례와 성찬의 성례가 명백하게 서로 보충해 준다.
이런 맥락에서 이 해답은 성례에 대한 제이차적인 암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둘째로, 어거스틴의 해석으로 물과 피는 요한복음 19:34-35에 언급된 대로 그의 옆구리에서 나온 피와 물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창에 찔리신 사건과 연관시킨다. 이 해석은 예수님께서 죽으신 것을 역사적 사실로 표현한 요한복음의 기록과 일치되며(요 19장) 요한일서에서도 성육신의 실례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앞선 상징적 해석(성례)보다 저자의 의도에 더 가까운 해석이라고 보여 진다. 그러나 이 해석에도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1. 단어의 순서가 다르다. 요한복음 19:34에 피와 물이 여기서 물과 피가 되었다. 2. 오신 분의 동사의 의미는 창으로 찌른 사건에 대한 것을 가리킬 수밖에 없고 그 경우에 물과 피는 예수님에게 서 나온 것이 된다. 물과 피에 의해서나 물과 피로 오셨다고 말씀한다. 3. 요한복음 19장의 증거는 관찰자에 의해 주어졌는데 여기서 예수님께 대한 증거는 물과 피(그리고 성령)에 의해 서 준비되었다. 4. 6절과 요한복음 19:34-35을 연관짓는 것은 그 문장의 나머지 부분의 자격을 참으로 설명하지 못한다(물로만 아 니라 물과 피로서다). 그러나 십자가의 본질은 흘러나온 물이 아니라 흘리신 피였다. 신약 어디서도 물과 십자 가를 연관지어 언급한 곳은 없다.1)
셋째로, 가장 자연스러운 해석으로 대부분의 학자들이 주장하는 해석은 6절의 물과 피는 세례나 성찬의 세례를 가리키지도 않으므로 요한복음 19:34의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와 물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의 지상 사역을 가리키는 용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초기에 그의 세례와 종국에 그의 십자가에 달리심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이 해석은 최초에 터틀리안(Tertullian)이 처음으로 하였다(막 1:11; 요 1:34; 요 17:1; 4:2).2) 따라서 예수님의 전 생애(사역)를 가리킨다. 그리고 이런 주장은 요한일서에서 그리스도가 참으로 성육하신 사실을 부인했던 영지주의자들의 가현설을 분쇄하는데 적합하다. 그러면 이런 무생명의 요인들이 어떻게 증거하는가? 또 어떻게 이 셋이 하나인가? 이 세 요인 중에서 성령이 제일 중요한 증인이며 요한에 의해서 가장 강조된 증인이다. 신자의 마음속에서 성령의 증거는 요한일서 전편을 통해서 분명하다. 피와 물은 역사적 사건들이지만 발생한 일로서 그들의 증거를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에게 무언의 증거를 한다. 예수님의 인성의 실재를 부인하는 것은 역사적 자료의 정전에서 도망치는 것이다. 그것들은 구약에서 돌무더기와 다른 무생명의 대상들이 그 방법으로 할 수 있었던 것과 같은 방법의 증인들로서 작용한다(수 22:27).3)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성령은 생명이요 중생과 신앙은 물이요 피는 지식이라고 해석하였다.4) 그러나 이런 해석은 요한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 성령은 우리의 눈을 열어 그리스도안에 있는 그대로 진리를 보게 한다(고전 12:3). 성령은 우리 안에 내주하시며(3:24; 4:13) 우리를 조정하신다(2:20, 27; 4:1-6).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는 4:13-14에서처럼 두 종류의 확증하는 증거를 소유한다. 즉 객관적이고 주관적인 그리고 역사적이고 경험적인 것으로 한편에는 물과 피가 그리고 다른 편에는 성령이 있다.5) 여기서 이 셋이 하나라는 것은 그들 셋이 그리스도의 인격을 증거하는 데서 하나란 말이다. 요한은 성령과 물과 피를 한 점으로 모으며 이 셋이 예수가 메시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진리를 세우는 같은 결과를 향하여 함께 역사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들 셋이 합하여 신자와 세계 안에서 성령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역사의 실제를 증거한다는 것이다.6) 이 구절에서 요한이 강조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과 구원은 참으로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셔서 참으로 사역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의 보혈에 근거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성경의 증거와 성례의 시행은 매우 중요하다.
주 1. Peter H. Davids, More Hard Sayings of the New Testament, p.211 2. Stephen S. Smalley, 1, 2, 3 John, pp. 277-278 3. Peter H. Davids, Op. cit., p.212 4. Raymond E. Brown. The Epistle of John(Garden City Doubleday, 1982), p.581 5. John R.W. Stott, The Letters of John, p.182 6. Stephen S. Smalley, Op. cit., pp.282-2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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