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벧전 4:14)
본문은 신자가 박해 아래서도 그 신앙을 변하지 말고 성실할 것을 권하는 말씀이다. 이 권면에는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영광의 영과 하나님의 영이 나오는데 그것이 같은 의미라면 왜 구태여 구별을 하는가? 다르다면 어떻게 다른가? 또 왜 성령이 욕을 먹는다고 그들에게 임하시는가? 여기서 베드로 사도가 말씀하려는 요점은 무엇인가? 먼저, 신자가 세상에서 왜 박해나 욕을 먹게 되는가부터 살펴보고 문제를 풀어보자. 초대 교회는 처음에 유대인들로 시작되었다. 유대인들은 구약성경을 가지고 하나님을 공경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를 고대하였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을 때 그를 메시아로 영접하는 대신 못박아 죽이고 말았다. 그 이래로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을 만나기만 하면 핍박을 서슴지 않았다. 그들은 다 같은 하나님을 믿었지만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구주로 믿는 사람은 유대교에서 추방시켰다. 그러므로 유대교에서 기독교로의 개종은 자연히 그들을 가정이나 그 지역 공동체에서 추방하거나 쫓아내는 차별을 받게 하였고 이단자로 낙인이 찍히게 하였다. 더 나아가서 크리스천이 된 이들은 저들과 구별된 삶을 살았다. 이런 구별된 삶은 신자가 되지 않은 동료들에게 조롱과 놀림을 받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그러므로 신자는 핍박이 올 때 이상한 일 당하는 것처럼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참 신자된 표가 있는 것을 기뻐해야만 했다(약 1:2). 그러면 누가 복 있는 자인가? 욕을 먹거나 핍박을 받기만 하면 무조건 복을 받게 되는가? 그렇지 않다. 욕을 먹고 핍박을 받아도 자신의 잘못이 그 원인이라면 유익은커녕 손해만 보게 된다. 그것은 그 자신 때문에 다른 신자와 교회가 비난을 받게 되고 그리스도에게는 영광 대신 부끄러움을 돌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잘못 때문에 당하는 고난은 결코 복이 되지 못한다(마 5:11; 눅 6:22). 그래서 본문도 분명하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아야 복이 있다고 하여 고난을 구분하였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란 말이 무슨 뜻인가? 이 말의 뜻은 설교하고 가르치고 세례 주고 기도하고 병을 고치는 사역을 포함하였다. 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유대인이나 이방인 가운데서 고백하는 행위였다(행 5:41; 9:16; 15:26). 초대 기독교 공동체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은 기독교와 동의어였다.1) 따라서 복 있는 핍박은 그리스도와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때문에 당하는 고난을 가리켰다. 이제 본문에서 문제가 되는 영광의 영과 하나님의 영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하자. 먼저, 그리스도 때문에 욕을 받는 자에게 성령이 임하신다는 말부터 설명해 보자. 베드로전서는 성령이 고난당하는 성도에게 임한다고 하였다. 그것은 예수님의 약속과 다르지 않다. 예수님은 너희를 넘겨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고 하셨다(마 10:19-20). 박해받는 성도에게 성령이 임하실 것을 약속하셨고 더 나아가서 영광의 영이란 말씀이 지시하는 것처럼 저들에게 영광이 보이게 나타났다(행 6:15; 행 7:55). 물론 그 영광은 고통 중에서 그 사람을 구출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돌에 맞아 죽은 스데반을 인도한 것은 영광의 환상이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박해를 당하는 신자는 하나님의 성령을 통해서 후에 완전하게 소유하게 될 영광의 맛을 현재 체험한다는 것이다(벧전 1:7; 5:4).2) 다음으로 영광의 영과 하나님의 영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영역성경(NIV, NASB, TEB)에서는 모두 성령의 의미로 번역하였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은 성령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임재의 충만이 고난당하는 성도를 축복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하늘의 영광을 미리 맛보게 하신다.3) 그런데 위의 두 영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아래 세 가지 해석이 있다.
1. 본문은 이사야 11:2의 인용이다. 거기서 여호와의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라 하였다. 그런데 이사야는 그 문 맥에서 그리스도에 대해서 예언하였다. 그러므로 영광의 영은 그리스도를 지적한다(요 1:14과 비교하라). 이렇 게 보면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영이 다함께 개인 신자 위에 임하신다는 뜻이 된다. 2. 영광은 광야의 성막을 가득 채운 하나님의 영광을 기억하게 한다(출 40:34-35). 이렇게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 님의 성령에 대한 기술적인 표현이라 고 본다. 그러므로 유대인 신자는 이 말을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적절한 기술로 이해할 수 있었다. 3. 영을 동등시해서 반복된 표현으로 본다. 반복이나 확장으로 보아 영광의 영 하나님의 영이 너희에게 임한다로 보거나(NIB), 혹은 관계절로 보아 하나님의 영 안에 계신 그 영광스러운 영이 너희에게 임하였다로 본다(NEB).
여하튼 고난 받는 신자는 그리스도(영광스러운)의 영과 하나님의 영이 그의 위에 임하심을 안다.4)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받는 이는 그의 영광에 참예할 것이 분명하다.
주 1. Simon J. Kistemaker, Peter and Jude, p.175 2. Peter H. Davids, More Hard Sayings of the New Testament, pp.174-175 3. Wayne Grudem, I Peter, p.179 4. Simon J. Kistemaker, Op,cit., p.1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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