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라"( 벧전 4:1)
이 본문은 그리스도를 본받으라는 말씀으로 특별히 그의 고난의 본을 받으라는 말씀으로 본다면 별로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다는 말씀은 그 해석이 쉽지 않다. 죄를 그쳤다는 말이 죄를 짓지 않게 되었다는 뜻이라면 더구나 어려운 말씀이다. 왜냐하면 육체의 고난이 결코 죄를 그치게 하지 않음은 물론 더 많은 죄를 짓게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또 육체적 고난이 사람들을 정화시키거나 강하게 하지도 않는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되나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더 반역하게 하며 나쁘게 만든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본문을 3:14과 16-18절의 문맥에 맞추어 선을 행하기 위한 고난으로 읽어야 한다.1) 그러면 이 구절의 참 뜻이 무엇인가? 이 구절에 대한 다섯 가지 다른 해석들이 있다.
1. 이 구절은 그리스도만을 가리켰을 것이다. 여기서 그는 그리스도시다 2. 개종 때 그리스도와 신자의 같이 됨을 가리켰을 것이다(특별히 세례) 3. 이 구절은 아마도 신자가 그리스도를 위해서 고난받기를 결심했을 때 그 신자는 단호하게 죄와 결별을 그리고 죄와의 타협을 거부하도록 선택한다는 뜻이다. 4. 신자가 고난받을 때 그들은 그들의 삶을 지배하는 죄의 세력을 파쇄한다. 5. 신자가 죽을 때 그들은 그리스도가 죽음에서 하셨던 것처럼 죄에서 자유하게 될 것이다.
위의 해석 중에서 어느 것이 제일 본문에 잘 부합되는 해석인가? 데이빗즈(P.H. Davids)는 첫째로, 베드로는 바울과 다르게 죄라는 말을 쓸 때 원리나 세력으로가 아니라 죄의 구체적인 행위를 가리켰으며 고난에 대해서도 완결된 행위를 의미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첫 번째와 세 번째 것은 본문에 부합하는 해석이 아니라고 보았다. 둘째로, 베드로전서는 박해에 대해서 말씀하나 순교에 대해서는 아니라 하였다. 베드로의 의중에 고난은 사회적 추방이나 학대와 같은 것이었지 처형으로 이끌고 가는 공적인 과정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다섯 번째 해석도 맞지 않는다. 이것이 타당한 주장이라면 두 번째와 네 번째가 남는다. 여기서 그 몸에 고난을 받은 분은 그리스도요 그것은 세상에서 고난을 받으심인데 그 고난은 죽음의 순간까지 이른다. 그 결과는 그리스도에 대해서 잃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가 죄와 죽음의 전 영역에서부터 얻으신 자유였다. 그는 더 이상 그가 지상에 사시는 동안 견디셔야 하는 그런 고난들을 겪지 않게 되셨다. 이와 같이 고난받는 신자는 죄와 단호한 결별을 한다. 이것은 신자가 그리스도의 분량에까지 자라고 죽을 때 온전히 발생한다. 그러나 어떤 면으로든지 신자가 고난을 당할 때 죄의 파쇄가 부분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리스도의 본을 따르는 신자는 고난이 그들을 더욱더 죄의 행위에서 분리시켜 점차로 하늘에 투자를 증가시키며 그들이 그리스도와 같이 죽고 그와 같이 되는 데까지 갈 때 온전히 죄는 끝나며 이 세상에 죄의 모든 효과가 종결된다. 이렇게 볼 때 오늘 우리가 아직 죄를 짓는 것은 우리가 아직 충분하게 고난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죄를 대적해서 그리스도를 선택하는 동안 그 투쟁에서 잘 전진할 것이지만 우리는 아직 죽지 않았다. 우리는 부활에서만 완전하게 됨을 갈망할 뿐 이 세상에서 완전한 성장을 기대하지는 못한다.2) 키스트메이커(Simon J. Kistemaker)는 신자가 그리스도와 온전히 동일시될 때 죄는 끝난다고 보고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죄의 삶을 포기하는데 그것은 죄의 지배력이 파쇄됐기 때문이라 보았다. 그러므로 이 본문은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자신을 무장하라는 권면을 담고 있다고 보았다.3)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결론할 수 있다. 참으로 그들이 고난받는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되었음을 믿는 이는 죄의 종이나 노예 신분을 지속할 수 없다. 고난의 주님과 내가 연합되었음을 믿을 때 죄에 대한 실망을 깨닫게 되며 죄와의 싸움에서 용기를 얻게 된다. 또 죄를 지을 때 주님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 것이 되며 성령을 슬프시게 하는 것이 되는데 어찌 거기서 기쁨을 얻을 수 있겠는가? (고후 5:14-15)4) 결국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이 내 죄 값이며 나를 의롭게 하시기 위한 것임을 믿는 신자라면 죄와 싸우기 위해 고난도 달게 받게 될 것이고 그 때 죄를 그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완전하게 되는 것은 우리의 죽음과 부활 때 가서야 성취될 것이다.
주 1. Wayne Grudem, I Peter, p.166 2. Peter H. Davids, More Hard Sayings of the New Testament, pp.171-172 3. Simon J. Kistemaker, Peter and Jude, p.157 4. Alexander Nibet, 1 & 2 Peter(The Banner of Truth Trust, 1982), pp.155-1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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