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벧전 1:9)
누구든지 예수를 믿을 때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기독교의 신앙이다. 그러므로 누가 구원받았느냐고 묻는다고 크게 당황해 할 신자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 베드로전서 1장, 특별히 9절에서 구원은 우리가 이미 소유한 무엇이기보다 하나의 목표와 결과로서 구원을 말씀하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구원은 불확실하다는 것인가? 베드로는 그의 첫 서신에서 구원이란 말을 네 번 사용하였다(1:5, 9-10; 2:2). 그는 세 번 이상 구원받은 자를 가리켰는데(3:20-21; 4:18), 그 언급 중에 하나는 구원에 대한 현재의 과정에 대한 것이다(3:21). 그리고 나머지는 장래의 구원을 가리켰다(3:20, 노아의 구원을 가리키는 것으로 예외임). 베드로전서에서 구원은 말세까지 나타나지 않는다(1:5). 구원은 예수를 위한 고난의 현재 과정의 끝에 가서야 온다(4:18). 이런 점에서 베드로에게 구원은 장래의 어떤 것이다. 신약에서 보면 어떤 때 구원은 과거 시제로 썼다. 유다서 3절에서 구원은 우리가 나누는 구원이요 디도서 3:5에서 그가 우리를 중생의 씻음으로 구원하셨다고 하였다. 또 사도행전 15:11, 로마서 8:24, 에베소서 2:5, 8, 그리고 디모데후서 1:9에서도 역시 과거 시제로 구원을 말씀하였다. 그러나 전체 신약의 구원에 대한 구절에 비하면 이것은 다수가 아니며 신약은 현재의 과정으로서 구원을 더 많이 말씀하며(고전 1:18; 고후 2:15) 장래의 사건으로서 구원을 더 많이 말씀한다(롬 5:9-10; 10:9; 11:26; 13:11; 고전 3:15; 15:2; 고후 7:10; 빌 1:28; 살전 5:8-9; 딤전 4:16; 히 1:14; 9:28; 10:39). 이렇게 볼 때 신약성경에서 구원은 과거의 사건으로 말씀한 것이 사실이지만 보다 더 일반적으로는 장래의 사건으로 말씀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배경에서 우리의 구원이 과거로 말씀될 때에는 구원을 위한 서술로 볼 수 있고 장래로 말씀할 때는 그 실제로 볼 수 있다. 구원을 이렇게 볼 수 있는 것은 구원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생각해 볼 때 더 분명해 진다. 구원이란 말은 어떤 위험에서부터 구출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신학적으로 이 말을 쓴다면 그 의미는 최후 심판에서 멸망의 위험을 의미하였다(롬 5:8-9). 이렇게 볼 때 구원은 최후 심판이 일어날 때까지는 실제가 될 수 없다. 이 점에서 그리스도인은 구원에 대한 소망을 가진다(벧전 1:3). 그러나 이 말은 구원 자체가 아니다. 물론 구원은 여기서 소망으로이긴 하지만 베드로가 의미하는 것은 내가 그렇게 되기를 희망한다는 형태의 소망이 아니라 무엇이 일어날 것이라는 확신 있는 기대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학교에 등록하고 이미 요구되는 학점을 다 따고 졸업 파티가 예약된 학생이 졸업을 기대하는 것과 같은 희망이다.1) 구원의 장래성을 여기 나오는 단어 받는다는 말이 자주 상급이나 보상을 얻는 것으로 쓰이고 있는 사실에 의해서 분명해 진다(고후 5:10; 엡 6:8; 히 11:3; 벧전 5:4).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결론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구원받았다는 말은 지속적인 구출이나 죄의 마수에서부터 풀려남의 현재적 의미와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최후의 구원에 대한 장래의 의미가 없이는 불완전하다.2) 그러나 그렇다고 현재적 구원을 경시하거나 무시해선 안 된다. 그것 없이는 결과적인 구원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현재적인 면과 장래적인 면이 균형을 이루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데이빗즈(Davids)는 과거로서만 구원을 말한다면 두 가지 사실을 잃어버리는 결과가 된다고 보았다. (1) 마지막 심판의 의미를 상실한다. 다시 말해서 심판에 대한 심각성을 결여한다. (2) 시험적인 의미를 상실한다. 그리스도를 위한 결심한 자가 아니라, 끝까지 견고하게 서는 자가(마 10:22; 24:13; 막 13:13) 구원을 받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베드로는 현재의 사건으로서보다 목표로서 구원을 내다보게 하였다.3) 그러나 우리는 또 이 본문이 구원이라는 말을 구원의 모든 축복을 완전히 소유하게 되는 것을 가리켰다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여기 9절에서 서술된 그 과정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성장의 전 과정, 구원의 축복에서 더욱더 자신의 삶을 전유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베드로는 이 과정은 크리스천들이 지속적으로 그리스도를 믿고 계속하여 개인적인 신뢰 때문에 지속적으로 기뻐하므로 발생한다고 말씀한다. 이런 날마다의 신앙과 기쁨이 기대하지 않은 유익을 낳고 그리스도인의 성숙을 위하여 계속 성장하게 한다.4) 이 해석도 가능하다고 본다.
주 1. Peter H. Davids, More Hard Sayings of the New Testament, pp.153-154 2. Peter H. Davids, The First Epistle of Peter(Grand Rapids: Eerdmans, 1990), p.60 3. Peter H. Davids, More Hard Sayings of the New Testament, p.155 4. Wayne Grudem, I Peter(IVP, 1989), p.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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