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살전 4:13)
바울은 주님의 재림과 연관된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4:13-5:11). 여기서는 특별히 주 안에서 죽은 자들에 대해 살아있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소망이 있음을 깨닫게 하여 소망 없는 불신자들처럼 슬퍼하지 않게 하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바울은 한 슬픔의 정도와 다른 슬픔의 정도 사이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소망과 이교도의 절망 사이를 대조하고 있다.1) 여기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에서 잔다는 말의 의미는 죽은 것을 가리킨다. 죽음에 대한 완곡어법으로 잔다는 말을 쓰는 것은 고대에 공통적이었다(왕상 2:10). 그리고 특별히 기독교에서 잔다는 말은 죽은 자가 부활의 생명으로 깨어나게 될 것을 내다볼 때 정말 적절한 표현이다. 죽음에 직면한 신자의 소망은 부활의 소망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의 이 소망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근거하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믿음으로 그리스도에게 연합된 성도는 누구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 생명의 부활로 살아 날 것이기 때문이다(요 5:29). 그러면 부활을 기다리는 주 안에서 죽은 자의 영혼은 어찌 되는가? 영혼까지도 잠을 자는가? 영혼수면설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다. 잠을 자는 것은 무덤에서 몸의 부활을 기다리고 있는 육신이요 몸이지 영혼은 아니다. 영혼은 육신의 죽음과 함께 죽거나 잠자거나 사멸하지 않는다. 영혼은 불멸하며 신자는 죽을 때 그 영혼이 주님께로 간다. 따라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회개하는 한 강도에게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셨다(눅 23:43). 죽는 것은 몸에서 떠나는 것이지만 그때 우리는 주와 함께 있게 될 것인데 그것은 우리의 영이 주님과 천국에 있게 될 것으로 가리킨다(고후 5:18). 몸이 죽어도 영혼이 죽지 않는다는 진리를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도(눅 16:19-21) 예수님이 분명히 가르치신 사실이다. 주 1. Leon Morris, 1 and 2 Thessalonians, p.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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