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RevSuh  2008-08-15 11:21:32 hit: 2,867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고후 6:14)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신자보다 불신자가 훨씬 더 많다. 우리는 그들과 이웃해서 살고 있으며 한 직장에서 일을 하는가 하면 그들을 상대해서 사업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세상에서 불신자와 접촉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본문을 쓴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5:9에서 그들과 사귀지 말 것을 권면한 후 그들과 전혀 사귀지 않으려면 세상 밖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하여 오해의 가능성을 배제하였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본문의 진의는 무엇인가? 이 말씀이 깊은 산속의 기도원이나 수도원에 들어가 신자들끼리 공동생활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어떻게 불신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않고 살 수 있는가? 이 말씀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울이 어떤 동기에서 이 말씀을 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무엇보다도 신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며 그 결과 우리를 당신에게 화해케 하시는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가져야 함을 가르쳤다(고후 5:17-18). 그들 중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는 이들이 있었다(고전 6장). 예를 들면 계속하여 이교적인 제사에 참여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신자끼리 송사를 세상 법정으로 끌고 가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여기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신자는 과거의 모든 관계도 새로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신자는 불신자와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여기서 믿음의 정직성을 타협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Hughes).
  
이렇게 본문을 이해하는 것은 여기 나오는 멍에라는 말이 지지한다. 바울은 이 말을 구약성경에서 빌어 왔다.  이 말은 이중 멍에, 즉 두 마리의 짐승 예컨대 소와 나귀를 동시에 나란히 멍에를 메워 밭을 가는 것을 가리켰는데 이는 금지 사항이었다(신 22:10). 또 구약성경은 동물의 다른 종류와의 교접을 금지하였다(레 19:19). 그러므로 멍에라는 말을 바울이 여기서 쓰는 것은 그것의 밀접성과 밀착성 그리고 둘이 하나가 되는 연합의 관계에 대해서 쓰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렇게 볼 때 본문을 바울의 마음속에는 아마 불신자와 신자의 결혼(고전 7:12-15), 불신자의 집에 들어가서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10:27), 예배에 불신자가 참여했을 때 방언으로 말하는 것(14:24) 그리고 불신자 앞에서 다른 신자를 법적으로 고소하는 일등이었을 것이다(6:5). 이런 맥락에서 둘이 함께 지는 긴밀한 유대나 연합의 관계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신자끼리만 가능하다는 것을 깨우치려고 하였을 것이다.
  
바렛(Barrett)도 우상숭배와 부도덕을 피하라는 말씀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그는 신자와 불신자간의 접촉을 금하는 말씀이기보다 한 사람이 동시에 신자와 불신자가 될 수 없음을 지적한 말씀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본문은 불신자와 전혀 접촉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일할 수 있고 사업도 할 수 있다. 그들과 교제가 가능하다. 그러나 멍에와 같은 살 깊은 교제, 밀접한 교제 그리고 하나 되어 신앙과 생활에 악 영향을 주는 교제를 금한 것이다.
  
이제 여기서 이 본문에 대한 문제를 의식하고 해답을 시도한 해석들을 소개하고 그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어떤 학자들은 여기 믿지 않는 자란 말은 문자적으로 불신자가 아니라고 한다. 믿지 않는 자는 여기서 바울의 반대자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반대자들의 일을 행하는 자라는 것이다. 그것은 고린도후서의 주제가 고린도전서 10:14-20에서 발견되는 것처럼 불신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렌스버거(Rensberger)는 이 말이 이 중의 의미가 있어서 불신자로도 사용되지만 바울은 그를 반대하는 거짓 사도들도 마음에 두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린도후서 6:14의 불신자(άπίϬϯοι)가 반대자를 가리킨다는 것은 고린도전서 6:6,7; 12-15; 10:27; 14:22-24에서 쓰인 용어의 기술적 사용을 간과한 것이다. 코렌지(Collange)도 의견이 같은데 그는 여기서 불신자는 유대 율법을 따르지 않는 이방 크리스천으로 생각하였다.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로서 익나디우스(Ingatius) 서신에서 불신자를 거짓 교리의 지원자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기서나 그 어디에서도 이방인 크리스천을 그들이 율법이 없기 때문에 불신자로 말하지 않았다. 또 목회서신에서 건전한 교리를 파지하고 있는 사람을 신자로 불렀으나(딤전 4:10, 12; 5:16) 불신자는 복음을 전혀 고백하지 않은 자들에게만 썼다(딤전 5:8).
  
또 어떤 학자들은 여기 불신자는 이방 불신자라고 한다. 즉 율법의 교훈을 지키지 않는 자라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주장하는 이들은 본문의 바울 저작을 의심한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크게 지지를 받지 못한다. 보수적인 입장에서 바울의 저작을 믿는 학자 중에서 핫지(C. Hodge)와 로벗슨(A.T. Robertson)은 이교도와 불평등하게 멍에를 메지 말라는 말씀으로 보았다.
  
앞서 지적했듯이 이 본문은 세상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지키라는 말씀이요(약 1:26) 신자로서 불신의 특성들과 타협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주
   1. P.E. Hughes, The Second Epistle to the Corinthians, p.245
   2. C.K. Barrett, The second Epistle to the Corinthians, p.199
   3. R. Martin, 2 Corinthians(Waco: Word, 1986), p.196
   4. Victor P. Furnish, 2 Corinthians, p.3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