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후 5:21)
우리말 성경에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셨다고 했고 표준새번역에서는 우리 대신에 죄를 씌우셨다고 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고 성경이 거듭 주장하고 있듯이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다(히 4:15; 참고, 벧전 3:18). 그렇다면 우리를 위해서 죄가 되신 분이라면 어떻게 죄가 없으시다고 할 수 있는가?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우리를 화해시키기 위해서 어떻게 하셨는지를 설명하고 있는 말씀이다. 따라서 우리는 십자가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읽을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 죄가 없으신 예수님을 우리를 위해서 죄가 되게 하셨다는 것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다음과 같은 해석이 있다.
1. 그리스도가 죄인이 되셨다. 이것은 죄가 없으신 예수님에게 잘 맞지 않는다. 그리고 예수님이 죄인을 대신해서 죽으셨다는 말씀에도 맞지 않는다. 만일 예수님이 죄인으로 죽으셨다면 죄인들의 죄를 대속하실 수가 없으실 것이다.
2. 그리스도는 속죄제물이 되셨다. 예수님의 죽음의 중요성을 나타내는데서 제사적인 용어를 쓰고 있기 때문에 (예. 롬 3:25; 고전 5:7) 적합한 것처럼 보인다. 또 레위기 4:24과 5:12(LXX)에서 같은 말 죄는 속죄제물의 뜻으 쓰였다. 그러나 그 말이 신약에서는 결코 그렇게 쓰이지 않으며 그 말이 여기서 같은 의미를 담고 있는지는 의문 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죄를 위한 희생으로 보는 것이 바울의 견해이나 여기 언급된 말씀을 이해하는 최선의 방법은 아닐 것이다. 3. 그리스도는 우리 죄의 결과를 담당하시게 되셨다. 이 해석은 바울이 갈라디아 3:13에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우리의 죄의 결과를 짊어지신 말로 언급 한 사실로 입증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리신 자마다 저 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니라. 이 해석은 21절로 지원되며 그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의가 되었다는 구절과 대조적 병행으로 균형을 이룬다.1) 그러므로 바울은 하나님께서 죄가 없으신 자를 우리를 위해서 죄가 되게 하셨다고 할 수 있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를 죄인으로 만드셨다고 하지 않았다. 그렇게 된다면 죄 많은 인류의 자리에서 죄 없는 자의 죽음을 요구한 구속의 기초자체를 무너뜨릴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죄로 만드셨다. 즉 아버지 하나님이 그의 성육하신 죄없는 아들을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세상의 죄가 심판 받고 옮겨진 결과로서 그의 진노와 심판의 대상을 삼으셨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 진리 안에 화해의 전 논리가 존재한다.2) 따라서 예수님은 실재로 항상 죄가 없으셨으나 사법상으로 우리를 위해 죄가 되셨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에서 그의 죽으심으로 우리 죄에 대한 형벌을 지불하시었고 그로 인해 우리를 대적한 죄의 빚이 취소되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개인적으로 결코 죄를 범하지 않으셨으며 대리적으로 우리를 위해 죄가 되신 것이다. 가이슬러(N. Geisler)는 그 차이를 다음과 같이 구별하였다.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셨다 그리스도는 죄가 되셨다 그 자신 안에 우리를 위해서 대리적으로 실제적으로 법정적으로3)
이렇게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니 죄인이 아니시며 다만 죄인들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서 죄인이 아니라 죄인들의 죄 값을 담당하시기 위해서 죄가 되신 것이다.
주 1. Colin Kruse, 2 Corinthians(Grand Rapids: Eerdmans, 1989), p.129 2. Philip E. Hughes, The Second Epistle to the Corinthians(Grand Rapids: Eerdmans, 1980), p.213 3. Norman Geisler and Thomas Howe, When Critics Ask(Victor Books, 1992), pp.471-4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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