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이 본문은 그리스도를 믿어 새사람이 된 신자에게서도 아직 옛 성품의 잔재가 남아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신학적으로 중생과 성화는 엄연하게 구분이 된다. 중생은 순간적인 사건이지만 성화는 평생의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죽을 때까지 완전해 질 수 없으며 우리의 체험처럼 실패와 죄로 좌절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본문은 이전 것은 다 지나갔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옛것이 남아 있는 것일까? 왜 옛 것이 지나고 새롭게 되었다면 옛 생활의 잔재가 아직 남아 있는 것인가? 어떻게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단언과 그리스도인의 경험 사이에 이 긴장을 이해할 수 있는가? 두 가지 방법으로 해답이 제시되어 왔다. 그 하나의 대답은 기독교의 신앙을 영화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이미 A.D. 50년 초에 고린도 교회에 있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의 영이 구속되었으나 몸은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몸은 약하며 부패한 부분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유 사색가들로서 성적인 죄를 죄로 취급하지 않았다. 육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두 번째의 해답은 인간 본성에 대한 이원론적 견해이다. 이 견해는 기독교 신앙을 계율화시켰다. 육은 하나님과 완전한 교제를 하는 영을 방해한다. 그러므로 육은 모든 정열과 소원을 가지고 영에 도움이 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견해의 극단적인 형태는 종교적인 금욕주의와 수도원적 격리를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몸과 영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경향은 성경적인 사상이 아니다. 이런 이원론적인 사상은 사실상 헬라의 철학사상에서 온 것이다. 그들은 몸을 영의 감옥이나 무덤으로 보았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구속의 목적이 전인(Total Being)임을 증거하고 있다. 육체적 영적 존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행위의 대상인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말씀은 영과 육을 분리한 존재가 아니라 전인간, 전인격을 가리킨다.1) 이제 본문의 앞 부분부터 차례로 그 의미를 살펴보기로 하자. 여기 그리스도 안에서란 말은 바울의 말씀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낱말이다. 이 말은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간에 연합을 가리키며 구원의 연계를 표현하는 일반적인 성경의 표현법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란 말씀은 우리가 아담 안에서 계약으로 모두 그 안에 있었던 것같이 우리가 이제 성령의 내주하심을 통해서 그의 몸의 지체로서 그 안에 있게 되었다는 것이요 그 방편은 신앙이다(롬 8:1, 9; 갈 5:6). 이 연합이 우리를 변화시킨다. 다시 말해서 새 생명을 주며 새 창조를 일으킨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로서 존재의 새로운 상태의 시작이기 때문에 창조라고 불렀다(엡 1:19). 이 새롭게 된 상태는 `...옛 견해, 의견, 계획, 바람, 원리 그리고 애정이 지나갔고 진리에 대한 새로운 견해, 새 원리들, 인간의 운명에 대한 새로운 이해, 새로운 느낌과 목적들이 영을 채우며 다스리게 된 것'을 가리킨다.2)
그러면 이전의 옛 것이 지나갔다는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이 말은 모든 옛 것이 파괴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신자들이 이 세상의 지배자들에게서 자유하게 되었으며(고전 2:6) 그리스도의 사랑의 다스림으로 인해서 자유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옛 질서의 실제적 파괴는 아직도 미래에 있다는 뜻이다(고전 15:24-28).3) 마틴(Martin)은 여기 지나갔다는 말은 비록 옛 것이 세력으로 남아 있기는 하나(갈 5:16-21, 24) 그리스도 안에서 무효하게 되어 그것의 조직이 파괴되었다는 뜻이라 보았다.4) 그런데 여기 `지나갔다'는 동사는 단순과거이다. 과거의 한정된 순간 혹은 사건 즉 새 출생의 체험을 지적한다. 그러면서도 바울은 이 신자의 새로운 피조물 됨과 선지자들로 예언된 만물의 회복(사 43:18; 계 21:4)과를 연관시켜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역은 신자의 경험에서만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의 전 질서를 통해서도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만물의 종말은 새로워진 인간만 아니라 우주까지 포함이 된다.5) 이런 의미에서 지나갔다는 말은 과거적이기도 하며 미래적이기도 하다. 이것은 마치 우리의 구원이 이미 과거에 예수를 믿을 때 받은 것이면서도 아직 미래에 받게 될 사실과도 같은 것이다. 바울 사도는 여기서 종말론적인 견지에서 말씀하고 있다. 과연 세상에서의 신자의 삶은 과거와 미래의 긴장과 투쟁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결론지을 수 있다. 물론 옛 것이 여전히 잔존하고 새것은 아직 완전하게 오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롬 8:18-25; 갈 5:15-26). 그러나 이 구절은 옛 것의 부분으로서 아직 살고는 있지만 새 창조에 참여함으로 연루된 제한과 긴장보다 이제 그리스도안에 새 생명의 새로움이 강조되었다.6) 다시 말해서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면보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켰다고 할 수 있다.
주 1. M.T. Braugh, Hard Sayings of Paul, pp.182-184 2. Charles Hodge, The Second Epistle to the Corinthians, pp.141-142 3. Victor Furnish, 2 Corinthians, p.333 4. R. Martin, 2 Corinthians, p.152 5. Philip E. Hughes, The Second Epistle to the Corinthians, p.304 6. Colin Kruse, 2 Corinthians(Grand Rapids: Eerdmans, 1989), p.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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