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 (요이 10절)
기독교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주님의 교훈을 중요시한다. 초대 교회의 성도들에게 나그네 대접은 가장 큰 미덕의 하나였다. 그러나 이 본문에 와서 문제에 부딪치게 되는데 다른 교훈을 가르치는 이단적인 선생들은 집에 영접하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하였다. 이것은 기독교의 미덕에 모순되고 성경 전체의 가르침과 모순이 아닌가? 우리와 교리가 다른 사람이라고 박대해서야 되겠는가? 아니 불신자라도 영접해야 하지 않는가? 만약 여호와의 증인이 와서 문을 두드린다면 열어도 주지 말아야 하는가?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먼저, 우리는 이 본문이 쓰여지던 때에 교회 안에 심각했던 문제를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사소한교리상의 차이가 아니라 교회를 떠나서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으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우리 기독교의 핵심 진리, 예수님은 그리스도시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이었다. 이런 거짓된 가르침은 교회와 성도에게 치명적인 손상을 입힐 수 있었다.1) 따라서 여기 방문자는 거짓 교리를 믿는 자를 가리키지 않고 거짓 교리의 선생들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집에 영접하지 말라는 말은 우연한 방문자가 아니라 공식적 선생이요 단지 믿는 자가 아니라 상인이 그가 팔 상품으로 가지고 오듯이 그리스도의 가르침보다 다른 메시지를 가지고 오는 자였다. 개인적으로 잘못된 교리를 믿는 자는 진리로 그를 설득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다른 사람에게 그의 오류를 가르치도록 공식적으로 위임받은 자의 경우이므로 우리는 잘못된 교리만 아니라 그 이단 교사까지 배격해야 한다. 다음으로, 요한의 교훈은 거짓 선생에 대한 개인적 대접이기보다 공적 환영을 그들에게 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그것은 첫째로, 이 서신 앞에서 보았듯이 개인에게가 아니라 교회에게 보낸 것이며 누구든지 너희에게 나오는 자도 교회의 거짓 교사들의 방문을 기대하게 한다. 아마도 거짓 이단들이 그들의 도시에도 언제 어느 순간에 당도할지 모를 형편이었을 것이다. 둘째로, 요한의 명령은 그들의 집에 그를 영접하지 말라 하였는데 그 집은 개인 집을 가리키지 않고 교회를 가리킨다. 다만 여기서 그 집이라고 한 것은 초대 교회에는 그 집이 바로 예배의 처소였기 때문이다(롬 16:5; 고전 16:19; 골 4:15; 몬 2). 그러므로 여기서 요한이 금지시킨 것은 거짓 스승들이 그들의 잘못된 교리를 선전할 기회를 갖도록 회중으로의 공적 영접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 말은 여호와의 증인 한 사람이 현관 계단에 편안하게 있는 것이 아니라 보다 완전하게 거실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보여주기 위해서 차를 마시도록 집으로 초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Bruce). 마지막으로, 요한은 모든 거짓 선생이 아니라 성육신에 대한 거짓 교리의 선생들을 가리켰다. 이 말은 아주 특수하게 사도적 교리에 대한 우리의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 선생들까지도 교제를 금하도록 우리에게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싫어하는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배격하라는 것이 아니다(Dodd).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부인하는 적그리스도에 대한 것이다.2) 손님 대접은 초대 교회만 아니라 어느 시대의 교회나 매우 중요하다. 초대 교회에서는 특별히 순회 전도자들이 이곳저곳으로 여행을 하며 복음을 증거했기 때문에 그런 전도자들을 영접하는 일은 무엇보다도 필요하였다. 우리는 상대방이 어떤 사람이든지 먹고 잠자는 것이 필요해서 개인적으로 우리 집을 찾아온 사람에게는 환대하고 대접해야 한다. 그러나 거짓 교사나 그 목적이 그의 거짓된 교리의 가르침에 있다면 경계해야 하며 심지어 인사도 하지 말아야 한다. 그 이유는 인사는 그들의 거짓 교리 선전에 용기와 힘을 더해 주는 결과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별히 우리는 사랑과 진리는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형제 사랑과 이단의 배척은 별개의 문제다.3) 그것은 손님 대접의 미덕과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 거짓 선지자를 내 집으로 영접한다면 나는 그 선지자의 가르침에 복종하기를 동의하는 것이며 따라서 내 자신의 신앙을 파괴시키고 말 것이다.4) 우리가 베풀어야 할 자선에는 제한이 있다. 진정한 자선은 남을 해치는 사람에게 보여 주는 선심은 아니다.
주 1. Peter H. Davids, More Hard Sayings of the New Testament, p.228 2. John R.W. Stott, The Letters of John, pp.215-216 3. Stephen S. Smalley, 1, 2, 3 John, p.334 4. Simon J. Kistemaker, James and I-III John, p.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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