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벧후 1:10)
구원에 대한 확신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어느 시대나 문제가 되어 왔다. 로마 가톨릭에서 믿음에다 선행을 더해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 것도 사실상 구원에 대한 확신의 미흡에서 비롯된 산물일 것이다. 구원 받은 성도가 선을 행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며 성경은 어디서나 신자의 책임으로서 도덕적인 삶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이 본문에 와서 베드로 사도는 우리의 소명과 선택을 확증하라고 하는 것 같다. 그러면 그가 제시하는 도덕적인 삶을 살지 않을 때 우리는 선택받지 못한 것인가? 그리고 그런 선행이 따르지 못하면 구원을 받지 못한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이미 얻었던 구원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뜻인가? 이 본문은 확실하게 도덕적인 노력을 요구한다. 그래서 이를 힘써 행하라고 한다. 그러나 만일 그것이 우리의 선택이나 소명을 결정짓는 요인이 된다고 생각하면 바른 해석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이 본문을 바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먼저 왜 베드로가 여기 와서 이런 권면을 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베드로 사도 당시에도 거짓 선생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교리적인 잘못을 가르치기 때문이기 보다 도덕적으로 잘못된 삶을 제시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전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의 삶을 본 삼지 말도록 특별히 권하고 가르칠 필요가 있었다. 이런 배경에서 베드로는 소명과 선택을 받은 신자는 그것을 보증하고 재가하라고 한 것이다. 다음으로 여기 부르심과 택하심에 대한 의미를 살펴보는 것이 본문의 해석에 도움이 될 것이다. 순서적으로 보면 여기 부르심과 택하심은 그 순서가 전도되었다. 택하심이 먼저 나오고 부르심이 따라 와야 한다(롬 8:30). 이 둘은 모두 하나님의 구속의 행위 안에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 선택은 영원에서 되었으나(엡 1:4) 시간 안에서 부르신다(롬 8:30). 사람은 자신을 택하거나 부를 수 없다. 왜냐하면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고 했기 때문이다(롬 11:29). 하나님께서만 사람의 선택과 소명을 작정하신다. 이렇게 소명과 선택은 모두 하나님이 하시며 다 그의 구원의 행위이므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래서 신약에서 두 개념은 사실상 동의어로 나오고 있다(고전 1:26-27; 벧전 1:9; 계 17:14). 이 두 개념이 함께 짝을 지어 나오는 것은 사람을 그리스도에게로 이끄는 것이 하나님의 행위임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인간의 도덕적 노력이 그리스도의 나라로 선택을 산출해 낼 수는 없다.
이제 본문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이 본문의 뜻을 바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아래의 사항에 근거해서 본문을 해석해야 할 것이다.
1. 베드로후서의 저자는 신앙의 윤리적 열매에 관심을 두었다(1:5). 그리고 은혜를 통해서만 가능한 도덕적 노력 에 관심이 있었다(1:3). 2. 바울은 역시 자유방임의 위험에 직면했을 때 갈라디아서에서까지도(갈 5:21) 구원에 필수로 윤리적 열매를 존 중하였다. 3. 만일 이 저자가 그의 구원에서 인간의 역할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면 그 문맥은 그렇게 기억되어져야 할 것이 다.1) 실제로 그 당시 독자들은 거짓 선생들의 도덕적 배교의 위험에 처해 있었다.
여기서 사람의 책임을 강조하고 구원에서 인간의 역할을 강조했다면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셨으며 그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아는 지식에서 그 소명의 절대적 확신을 위하여 그의 구원을 소유하라는 것이다(딤후 1:9). 소명은 단순한 초청 이상이다. 소명은 사람이 반드시 순종해야 하는 왕의 명령이다. 그리고 선택은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베드로 사도가 5-7절에 개요한 덕을 실천함으로서 그의 선택을 소유해야 한다.2) 그러면 이 인간의 책임은 스스로의 힘으로 가능한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해서 칼빈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의 임재 안에서 순수하며 흠이 없게 되는 목적을 위해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부르셨다. 하나님의 자녀는 그들이 경건하며 거룩하게 사는 이 표지에 대해서 유기자와 구별된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이것이 선택의 계획이며 목적이기 때문이라 하였다.3) 그러므로 진정으로 선택되고 구원받은 성도는 그 증거가 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살 수 있는 은혜를 주실 것이다. 신뢰에서 나오는 그리스도께 대한 순종의 삶은 은혜에 대한 그들의 상태에 확증이 될 것이다. 그리고 만일 이 증거가 부족하다면 회개하고 그들의 소명과 선택을 확실히 해야 할 것이다.4) 왜냐하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은 모든 사람이 다 선택의 표로서 진보된 그리스도인의 행동을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5)
주 1. R.J. Buckham, Jude, 2 Peter, p.190 2. Simon J. Kistemaker, Peter and Jude, p.257 3. John Calvin, The Catholic Epistles(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88), p.377 4. Peter H. Davids, More Hard Sayings of the New Testament, p.186 5. Michael Green, 2 Peter and Jude, p.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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