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후서는 정말 사도 베드로의 저작인가?
RevSuh  2008-08-17 11:17:23 hit: 2,471

해리슨은(Harrison) 초대 교회에서 신약성경의 서신을 통틀어 베드로후서의 베드로 저작권만큼의 의견이 분분했던 책은 없다고 하였고, 무어헤드(Moorhead)는 베드로후서는 신약의 다른 어떤 책보다도 그 순수성에 대해 역사적 지지를 받지 못한 채 우리에게 전수되었다고 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본서가 신약의 최후 작품으로 책의 분량이 작고 문장이 유창하지 못하며 그 내용이나 사상면에서 열등하다는 일부 학자들의 편견에서 비롯되었다고 하겠다.1)  그러면 과연 본서는 베드로의 저작이 아닌가?

본서가 베드로의 저작으로 의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1. 본서는 베드로전서와 관계가 없다는 주장
    
1) 베드로후서의 단어와 문체가 베드로전서와 다르다는 것이다. 예컨대 메이어(Mayor)는 어휘의 총수는 베드로전서가        543개이고 후서가 399개인데 전서의 용어 중에 369개가 후서에는 없으며 후서 단어 중 230개가 전서에는 없어 공동        으로 쓰인 단어의 수는 100개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공통어 100개보다 비공통어는 599개로 거의 6배에 달한다고 하        였다.2)
     또 파피아스(Papias)는 베드로전서에 361개의 단어가 후서에서는 나오지 않으며 후서의 231개의 단어가 전서에서는      없다고 하였고, 전서의 67개의 단어가 후서에서는 57개의 단어가 신약의 다른 곳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고 하였              다.3)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서신간에는 용어와 문체에서 강한 유사성이 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을 뛰어나신        분으로 쓴 점(벧전 2:9; 벧후 1:3), 벗어남(벧전 3:21; 벧후 1:14), 죄를 그침(벧전 4:1; 벧후 2:14) 등인데 이는 신약에서 이      두 서신에서만 나온다. 또 다른 신약 성경에서 나타나지 않는 용어로 이 두 서신에서만 나오는 말로는 형제의 사랑(벧      전 1:22; 벧후 1:7), 본다는 말의 원형(벧전 2:12; 3:2; 벧후 1:16), 공급한다(벧전 4:11; 벧후 1:5) 그리고 예언의 교훈(벧전      1:10-10; 벧후 1:20, 21)과 그리스도인의 자유(벧전 2:16; 3:19)와 종말(벧전 1:5; 4:7, 벧후 3:3, 10)에 관해서다. 뿐만 아니      라 본서와 사도행전에서 행한 베드로의 설교 사이에 언어적 연관성을 엿볼 수 있다.
     예컨대 불법함(행 2:23; 벧후 2:18) 받은 자(행 1:17; 벧후 1:1), 불의의 삯(행 1:18; 벧후 2:13, 15) 그리고 주의 날(행              2:20;  벧후 3:10) 등이다.
    
2) 또 하나의 반대로는 본서와 전서와의 교훈적인 차이를 든다. 그러나 그것은 두 서신의 저작 동기와 목적의 차이에서        온 것으로 볼 수 있겠다. 베드로전서는 박해에 직면해 있는 교회에 대해서 쓴 것이므로 경고와 도전을 주기 위해 그리      스도의 재림에 큰 소망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비해 후서는 거짓 교훈의 위험성에 처한 교회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그리스도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강조하였다.

2. 유다서에서 빌어왔다는 주장
   본서와 유다서 사이에는 언어적인 유사성이 많이 있다. 그래서 본서는 유다서에서 빌어온 것이라고 주장한다. 베드로       후서 제2장은 유다서에서 빌어와 개찬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제1장과 제3장만으로 된 베드로후서에다 유다서의       한 부분을 취해서 개찬한 한 장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불행스럽게도 베드로후서 3:1-3에 붙여 놓았다는 것이다.4)
   그러나 비그(Bigg)나 쯔한(Zahn)의 주장처럼, 한 서신이 다른 서신과 그 용어가 비슷하다고 하여 꼭 전자가 후자에서         빌어 온 것이라는 주장은 옳은 것이 아니요 실제로 그 반대일 가능성도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3. 초대 교부들의 본서 정경 수납연대가 너무 늦다는 주장
    쯔한(Zahn)도 본서가 오리겐(Origen)시대 이전에 베드로전서와 같은 계열의 책으로 어느 지역의 교회에서도 수납되        었다는 증거가 없다고 하였다.5)
  
본서는 뮤라토리 단편(The Muratorian Fragment)에나 엣 수리아역 그리고 옛 라틴역에서도 빠져 있다. 교회가 본서를 정경으로 수납한 것은 제4세기에 와서 363년 라오디게아 회의에서였고 그 후 397년 칼타고 회의에서 재가되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초기에 본서가 전혀 정경으로 인식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래니우스(Irenaeus)와 함께 비엔(Vienne)과 리용(Lyons)의 교회들이 본서를 받고 있었으며 베드로의 묵시란 책은 본서에서 인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는 그의 성경 속에 본서를 포함하고 있으며 발렌티누스는 진리의 복음에서 아리스티데스(Aristides)는 그의 변증서(Apology, A.D.129)에서 그리고 로마의 클레멘트(A.D. 95년경)가 본서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워필드(B.B. Warfield)의 말처럼, 초기에 널리 알려지지 못했고 드물게 언급된 것이 사실이나 결코 위서로 배척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 필요가 있다.
  
본서는 개략적이며 또 어느 특정 인물이나 교회를 대상으로 쓴 것이 아니며 그 내용에서 새로운 것이 조금밖에 없는 것 등이 아마 초기에 널리 알려지지 못하고 등한시 되어온 이유였을 것이다. 그럴지라도 본서가 정경으로 교회에 수납을 받은 것은 그만큼 그 당시에 반대가 없었기  때문이었고 또 실제의 저자이신 성령의 간섭과 역사하심이었을 것이다.

4. 본서의 내용이 후시대의 저작임을 지지한다는 주장
1)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려 함이라(벧후 1:4)는 말과 지식과 증인에 대한 반복된 강      조(벧후 1:16, 이는 신비종교들이 좋아하는 말들이다)는 본서가 제2세기의 저작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A.D. 22년의 캐       리란(Carian)의 비석 발견과 필로(philo)와 조세프스(Josephes)에게서 병행구절을 볼 수 있는 점으로 미루어 제1세기의     공통적인 문화용어였다.
  
2) 불에 의한 세상의 멸망(벧후 3:7)은 제2세기의 공통화제였다. 그러므로 베드로후서는 제2세기의 저작이라고 한다. 그        러나 불에 의한 세상의 심판은 공관복음(마태, 마가, 누가, 요한)에 자주 나오고 있으니 후대저작의 이유가 될 수 없다.
  
3) 조상들이 잠든 이후나  너희 사도들에 대한 언급 등은 그것이 제1세기의 기독교인들과 후사도 시대를 가리킨다고 보        아 제1세기의 저작임을 증명하지 못한다고 한다(J.A.T. Robinson). 그러나 물론 로빈슨은 이런 구절이 제2세기의 저작        임도 증명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6) 위의 조상들이 잠든 이후란 말은 창세 이후 구약시대 믿음의 조상들을 가리킬          수 있다(히 1:1; 롬 9:5).

5. 본서가 담고 있는 교훈이 후대 저작임을 지지한다든 주장
여기서 공격하는 거짓 교훈은 제2세기에 유행했던 영지주의의 교훈으로서 이것을 필연적으로 본서의 저작 시기를 제2세기 이후로 잡게 하며 베드로의 저작일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 성경은 하나님의 성령의 영감으로 쓰여진 책이며 그 교훈은 어느 특정 시대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전 역사에 해당된다. 그렇다면 성령의 감동으로 앞으로 있을 일을 예견하고 경고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베드로전서는 임박한 주의 재림사상으로 차 있는데 본서에서는 그 재림사상이 지연되고 있다는 것이다(벧후 3:8 등). 그러나 본서에서도 전서와 같은 재림의 소망이 없지 않으며 이런 강조는 거룩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한 동기로 주어진 것이다 (벧후 3:11-14; 벧전 1:7; 13:17; 4:7, 13). 그래서 마틴(R.P. Martin)은 본서는 A.D. 65년 이후 10년 이내의 저작 연대를 지지하지 필연적으로 제2세기 저작설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보았다.7)

그러면 본서의 저자가 사도 베드로임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위에서 살펴본 대로 본서의 베드로 저작에 대한 외증은 그리 충분하지 못하다. 그러나 내증은 어느 정경에서 못지않게 강하다.

1. 저자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데 (벧후 1:1) 특별히 시몬으로 언급한다. 그것은 예루살렘 회의 때 야고보에 의해 불려진      것과 꼭 같다(행 15:14).
 2. 자신을 예수그리스도의 사도와 동일시한다(벧후 1:1). 이 말은 일반적으로 12사도 중에 하나를 가리킨다.
 3. 그는 변화산상의 사건을 목격자로서 증언한다(벧후 1:16-18)

그 밖에 증거로서 첫째, 그는 본서를 그들에게 제2서신으로 서술한다. 그것은 이미 서신을 쓴 것을 가리키는데 아마도 베드로전서를 가리킬 것이다. 둘째, 그는 개인적으로 신약의 다른 영감 된 저자로서 사도 바울에 대해서 친밀하게 잘 알고 있다(벧후 3:15-16, 나의 사랑하는 형제 바울이다).
  
역시 그가 거짓됨과 위선을 단호하게 정죄하는 것(벧후 2:1-3)은 그 자신이 거짓으로 본서를 쓰지도 않고 쓴 것처럼 속일 사람으로 믿기 어렵다. 그리고 그는 그의 죽음에 대한 예고를 그리스도에게 받아 말하였다(벧후 1:14; 요 13:36;  21:18, 19).8)
  
더 나아가서 아쳐(Archer)는 본서와 베드로전서는 아래와 같은 공통점이 있음을 지적하였다.

1. 그리스도 중심적이며 그의 재림의 확실성
2. 노아의 방주와 홍수의 중요성(벧전 3:20에서는 하나님의 자비를 벧후 2:5; 3:6에서는 하나님의 심판을 강조한다)
3. 그리스도인의 성장의 중요성이 공통 관심사로 되어 있다(벧전 2:2-3 .벧후 1:5-8; 3:18).9)

그러므로 우리는 베드로전서와 후서는 동일 저자의 작품이며 그 저자는 바로 사도 베드로라고 주장한다.

   주
   1. 서춘웅, 해석신약총론, p.377
   2. J.B. Mayer, The Epistle St. Jude and Second Epistle St. Peter,  p.74
   3. R.C.H. Lenski, I and II Epistle of Peter, the Three Epistles of John, and the Epistle of Jude. p.245
   4. Lenski, Op. cit., p.243
   5. H.C. Thiessen, Introduction to the New Testament(Eerdmans, 1960), p.287
   6. R.P. Martin, New Testament Foundation(Eerdmans,Vol. 2. 1978), p.366
   7. Ibid.,
   8. William Hendriksen, Survey of the Bible(Baker, 1978), p.365
   9. Archer, Encyclopedia of Bible Difficulties,  pp.426-427
  10. 그 밖에 본서의 베드로서 저작을 부인하는 이유는 아래와 같다.
    (1) 본서의 헬라어가 베드로가 썼기에는 너무도 훌륭하다.
    (2) 베드로전서는 베드로가 죽은 후에 썼다(후서도 마찬가지다)
    (3) 본서가 베드로가 썼기는 너무도 바울적이요 너무도 바울의 글에 의존하고 있다.
    (4) 베드로서(특히 전서)는 예수님의 지상생애와 일치되는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반박과 답변은 Wayne                 Grudem, I  Peter, IVP,  pp.25-33을 참고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