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충만이란 무엇인가?
RevSuh  2008-08-15 12:01:52 hit: 1,731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엡 5:18)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 성령충만에 대한 문제만큼 중요한 것이 없고 이 문제만큼 모호한 것도 없다고 하겠다. 그만큼 이 문제에 대한 이해가 쉽지 않고 해석이 분분하다.
  
성령충만에 대해서 1900년대에 시작된 오순절 운동의 계열에서는 제이의 단회적인 사건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신자가 되었지만 성령충만은 신앙생활의 더 높은 수준으로 발돋움 한 것이라고 본다. 그 실례로 성령충만한 신자는 고린도전서 12:4-11에 언급된 성령의 여러 가지 은사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예로 방언을 하는 것이 그 증거라는 것이다. 이런 해석은 모든 은사운동 계열의 신학에서 일반적으로 주장하는 입장이다.
  
이런 경향은 초대 교회의 첫 2, 3세기 교부였던 터틀리안(Tertullian)이나 오리겐(Origen)의 글에서도 나타난다.
  
그런데 이런 그리스도인의 이중의 경험을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첫 단계는 십계명, 황금률, 그리고 사랑의 계명에 관심을 둔 사람들이라고 보며 제2의 단계로 올라간 크리스천들은 개인적으로 어떤 사람들만이 얻을 수 있는 보다 높은 윤리나 혹은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분리의 이론은 감리교에서도 볼 수 있었는데 칭의(의롭다 하심을 얻음)의 단계의 신자 즉 구원받고 의로워지고 용서받고 영생을 얻게 된 신자가 있다. 그러나 성화의 단계를 추구하는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이른 신자가 있다고 보았다.
  
앞서 언급한 오순절파에서는 성령충만을 성령 세례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으며 성령 세례의 표는 역시 방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 성령의 세례에 대한 언급을 하는 구절들은 마태복음 3:11; 마가복음 1:8; 누가복음 3:16; 요한복음 1:33; 사도행전 1:5; 11:16; 고린도전서 12:13인데 그 어느 곳에서도 여기 본문에 성령 충만을 받으라는 말씀처럼 성령세례를 명령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본문에 성령 충만과 성령 세례를 동일시 할 수 없다.
  
그러면 본문이 일반 신자에게 두 번째 높은 수준으로 그리스도인의 체험을 명령한 말씀인가?  또 이 말씀은 단번에 성령 세례로서 충만해지는 것을 가리키는가?  본문은 위의 은사운동 계열의 입장을 지지하지 않는다. 여기 본문은 명령형이다. 그러나 어느 특수한 신자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모든 신자에게 주신 명령이다. 역시 문법적으로 현재 시제이다. 그것은 성령을 단번에 충만히 받는다는 것을 배제한다. 지속적인 공급을 가리키며  채워지고 있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여기서 바울은 성령충만을 시작하라는 것이 아니다. 이미 시작한 대로 계속하여 성령으로 더욱 충만히 되기를 초대한 것이다.1)

그러므로 본문은 단번에 체험하게 되는 사건이 아니라 날마다 성령으로 지배되는 신앙생활의 경험인 것이다.
같은 입장에 서 있으면서도 해석을 달리하는 학자가 있다. 렌스키(Lenski)는 여기서 성령을 신자의 영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우리 영이 영적 기쁨, 행복의 충만으로 해서 시와 찬미와 말로서 흘러넘치게 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 경우에 우리의 영이 영적인 표현으로 흘러넘치기 위해 채워져 있는 상태가 된다.2)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성령충만 할 수 있는가?
지배적인 견해는 신자가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먼저 마음을 비우고 모든 개인적 욕망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충만하게 축복하실 때까지 기도해야 한다고 한다. 죄를 회개해야 하며 예수님께 전적으로 헌신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 조심할 것이 있다. 하나님의 은혜를 내 노력과 힘으로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그의 성령으로 축복하시도록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서 할 일이 있다. 거기 초점을 맞추어서는 안 될 것이다.
  
사실 성령은 모든 신자가 받았다. 그것은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기 때문이요(고전 12:4),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롬 8:9)
  
그렇다면 성령충만을 받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받지 못한 성령을 내게 보내달라고  해야 하는가? 그럴 수는 없다. 성령은 이미 우리 안에 계신다. 우리가 할 것은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케 해서는 안 되며(엡 4:30), 성령을 소멸하지 말아야 한다(살전 5:19). 우리는 성령 충만을 위해서 하나님을 설득하려고 해선 안 된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 성령의 감동하심, 성령의 역사하심에 내가 순종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악독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버리고 서로 인자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심 같이 해야 한다(엡 4:31-32).

이렇게 주님께 순종하며 그의 명령을 지켜 나갈 때 그의 임재(성령)로 충만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의 계명을 지켜야 하며(요 14:15)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신뢰하며 그의 계명을 지켜 나가면 성령으로 충만케 될 것이다.3)
  
그러면 성령 충만한 성도의 삶의 특성이 무엇인가?  그는 겸손하며 사랑 충만, 기쁨 충만, 감사 충만한 삶을 산다. 그래서 성령의 열매가 그의 삶 속에서 나타난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갈 5:22-23) 이런 열매는 우리의 인격 전체가 성령에 의해 지배될 때 가능해 진다.
  
그래서 찰스 하지(C. Hodge)는 성령이 그의 생각, 느낌, 말 그리고 행동을 지배할 때 그것이 성령충만이라 하였다.4)  이렇게 성령이 충만해지려면 지속적으로 거듭하여 성령으로 채워져야 한다. 성령님을 위해 우리는 늘 마음을 연 자세가 되어야 한다. 새 영어 성경(NEB)에서는 성령이 너희를 채우시게 하라고 번역하였다.

   주
   1. James Montgomery Boice, Galatians(E.B.C. Vol 10), p.72
   2. R.C.H. Lenski, The Interpretation of St. Paul's Epistles to the Galatians, Ephesians and Philippians(Augusbrug, 1961), p.619
   3. Robert H. Stein, Difficult Passages in the Epistles, pp.46-52
   4. C. Hodge, Ephesians, p.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