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한 신자도 타락할 수 있는가?
RevSuh  2008-08-16 21:14:28 hit: 1,499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히 6:6)
                                          
본문 말씀은 성도의 견인(the Perseverance of the Satins)교리와 모순된 듯이 보인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구절이 성도의 견인에 대한 의심이나 요한복음 10:28의 확실한 영생의 축복을 잃게 된다는 것이 아니다.
  
먼저 이 구절에 나오는 신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1. 그는 한 번 비췸을 얻은 자다. 여기서 비침을 얻었다는 말씀은 초대 교회에서 세례로 보았다. 그러나 여기서는 복음과 그 초대의 회개와 신앙을             가리킨다. 그러니 구주로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을 가리킨다(Archer)
   2. 그는 하늘의 은사를 맛본 자다. 여기 하늘의 은사에 대해서는 성찬으로 해석하는 학자들이 많다(고전 10:3). 그러나 거기 한정시킬 필요는 없다.            렌스키(Lenski)는 그리스도가 계신 하늘의 모든 영적 축복을 가리킨다고 보았다.
   3. 그는 성령에 참예한 자다.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았으며 성찬에 참예했을 뿐만 아니라 안수를 받은 경험이 있는 신자다. 사도들이  안수할 때 성           령이 임했다(행 8장)
   4. 그는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능력을 맛본 자다. 성경을 분명하게 이해하며 그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이며 은혜도 받는다. 뿐만 아니라 성령의 능력        을 힘입어 병도 고치며 귀신도 쫓아냈다.

위와 같은 신자라면 중생한 신자가 아니겠는가? 그러면 참 중생한 신자가 타락할 수 있는가?
  
구원에서 제외될 수 있는가? 그렇다면 다른 성경 구절과 모순  지 않는가? 하나님의 자녀는 진정한 중생의 은혜를 받은 후에 타락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는가?(눅 22:3; 요 6:39, 40; 10:28, 29; 17:2, 6, 11, 12; 롬 8:30; 11:29; 빌 1:6; 살전 5:23; 살후 3:3; 벧전 1:4, 5; 요일 3:9). 어떤 학자들은 이런 일이 일어 날수 없지만 하나의 가정으로 독자들을 경고한다고 보았다. 또 어떤 학자들은 아주 비슷한 인물을 마음에 두고 말씀했다는 것이다. 예컨대 시몬 마구스로서 그는 믿고 세례를 받았으며 빌립과 동행했을 뿐 아니라 안수로 은사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에게 네  마음이 하나님께 옳지 않다고 책망하였다(행 8:21-23).1)
  
부르스(F.F. Bruce)는 이 말씀은 성도의 견인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실에 대한 설명으로 보았다. 그리고 이는 마치도 돌짝밭에 떨어진 씨의 비유와 같아서 흙이 깊지 못해 쉽게 자라나 곧 시들어 버리고 마는 밭(신자)에 비유하였다.2)   쳐(Archer)는 가룟 유다에 비유하였다. 그는 위의 모든 체험을 다했으나 돈 때문에 예수님을 부인하고 팔아 버림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모욕하였다.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의 섬김과 영광을 위해 주님에 의해 쓰여지기보다 자기의 이기적 유익을 위해 예수님을  이용하였다. 그러니 이런 사람은 진정으로 회개하고 중생한 신자라고 할 수 없다. 진정으로 회개하고 중생한 자는 그의 마음에 그 자신 대신에 그리스도가 계신다(고후 5:14-17).3)
  
초대 교회의 교부였던 터들리안은 여기서 다시 새롭게 될 수 없는 자를 세례 후에 죄를 지은 자로  보았고 또 사도들의 직접 가르침을 받고도 간음을 범한 자로 규정하였다(F.F. Bruce). 그러나 이 해석은 본문에 부합되지 않는다. 여기서는 누군가가 기독교에서 유대주의로 되돌아간다면 그 자신을 유대인의 불신과 동일시함은 물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도록 이끄는 악과 동일시하는 것이 될 것을 가리켰다.4)
  
이제 결론적으로 이 본문의 의미와 의의를 정리해 보자. 요한 칼빈은 여기에 나오는 신자가  영적 은혜를 받은 것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본래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 받지 못한 이상에는 타락할 수 있다고 하였다. 또 지상의 교회의 신자 중에 택함 받지 않은 자들에게도 어느 정도까지 은혜를 주시어 그 진정한 자녀들과 섞여 있게 하신다. 이것은 마치 한 밭에 알곡과 가라지가 섞여 있음과 같다.  그리고 이렇게 섞여 있는 목적은 진정한 성도들로 하여금 경외케 하며 겸비에 처하게 하려는 데 있다고 하였다.5)
  본문에 관하여 칼빈만큼 명쾌하고 분명하게 주해한 학자가 없다고 생각한다.

   주
   1. Leon Morris, Hebrews(E.B.C. Vol. 12),  pp.55-56
   2. F.F. Bruce, The Epistle to the Hebrews, Eerdmans, 1978.  pp.118-119
   3. G.L. Archer, Encyclopedia of Bible Difficulties,  pp.419-420
   4. Donald Guthrie, Hebrews, IVP. 989.  p.144
   5. John Calvin, Mark 4:17, 박윤선, 히브리서, 공동서신,  pp.60-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