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나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약 5:15-16)
기도와 병든 자의 치유는 그것이 진리임에도 불구하고 오용이나 오해로 인해서 언제나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다. 특별히 병든 자를 위해 기도를 했는데 낫지 않는 경우 그 책임을 병든 자의 믿음의 부족이나 죄로 돌려버리는 경우가 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본문은 어떤 빛을 던져 주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은 몇 가지 점에서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다. 왜 병 낫기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면서 교회의 장로를 청하라 했는가? 왜 장로는 기도하면서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라고 했는가? 기도를 하라고 하면서 왜 믿음의 기도, 의인의 기도를 강조하는가? 병 낫기를 위해 기도하면서 왜 죄를 서로 고하라고 하는가? 병과 죄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먼저 병든 이에게 왜 교회의 장로를 청하라고 하였는지부터 알아보자. 여기 교회의 장로는 오순절 이후에 나타나는데 예루살렘 교회에서 장로들은 신자들의 대표였다 (행 11:30; 21:18). 그들은 그들이 대표가 된 회중의 목회사역에서 지도력을 행사하였다(행 20:28; 벧전 5:1-4). 바나바와 바울은 그들의 첫 선교 여행에서 각 교회에 장로를 임명하였으며 디도에게 그레데의 도시마다 장로를 임명하라고 가르쳤다(딛 1:5). 이런 배경에서 신자가 병들었을 때 그 당사자나 가족이 아니면 다른 성도가 교회의 대표인 장로(목사)를 청해서 기도를 부탁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것은 일종의 목회 사역이었다. 그러면 왜 장로를 청해서 병 낫기를 위해 기도하는데 기름을 바르면서 하라고 하였는가? 주님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라는 말의 뜻이 무엇인가? 여기서 야고보 사도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기름에 있지 않고 기도에 있다. 기름을 바른다는 것은 제이차적인 요인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여기 기름은 그 당시에 의약품으로 쓰였던 것도 사실이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은 여리고로 내려가다 강도를 만나 상처투성이가 된 사람에게 기름을 발라 주었다(눅 10:34). 또 12사도들이 첫 전도여행 때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쳤다고 기록하고 있다(막 6:13). 이렇게 야고보 사도 당시에 기름은 일반적인 의약품이었다. 그 밖에 성경에서 기름은 상징적 의미로도 쓰였다. 어떤 학자는 주님의 이름으로란 구절과 함께 기름이 나오는 것은 그 기름이 주 예수의 치유 능력을 상징한다고 본다. 그러나 야고보의 이 말씀은 기름으로 병자를 바르도록 사도적 명령을 한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예수님의 치유사역은 기름을 쓰지 않았으며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은 많은 경우에 기름을 쓰지 않고 병자를 치유하였다(3:6; 5:15-16; 9:34; 14:8-10; 16:18; 28:8-9).1) 그러면 기도와 기름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가? 병든 자를 위해서 우리가 우선적으로 할 일은 기도이지만 기도하면서 약을 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약을 쓸 수 있는 근거는 그 약을 만들 수 있는 지혜를 하나님이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 약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물질에서 만들어진 것이므로 그것도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다음으로 병과 죄와는 어떤 관계가 있길래 죄를 고하며 기도하라 하였는가?
아담으로부터 죄에서 병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유대인의 사상에서 일반적이었다. 이 사상은 신약에서도 거듭 언급되며(막 2:5; 요 9:2) 족장 시대와 그렇게 넓게는 아니지만 오늘날 우리 가운데서도 그렇게 믿어지고 있다.2) 물론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죄와 질병의 연계성을 부인하는 이가 더 많다. 그러나 본문은 죄와 질병을 연관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본문은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고 하여 모든 병이 다 직접 죄 때문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성경적으로 보면 병은 죄의 결과 하나님의 징계로나 우리 자신이 어리석게도 음식을 잘못 먹어서 오기도 하지만(과음, 과식)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경우도 있다(요 9:2-3).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의 경우 그것이 그 자신의 죄나 부모의 죄도 아니라 그 안에서 나타나야 할 하나님의 역사 때문이었다.3) 그러므로 질병과 죄는 직접 간접으로 연관이 있다. 그래서 죄를 고하라 하였다. 그러나 모든 병이 죄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 본문의 교훈이 기도하다. 이제 마지막으로 병자를 낫게 하는 기도는 어떤 기도인가? 믿음의 기도는 병자를 구원한다고 하였는데 구원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부터 알아보기로 한다. 여기 구원(sozo)이란 말은 일반적으로 신약에서 영적인 죽음으로부터 구원을 가리켰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영적인 구원을 야고보가 의도했다고 보고 14-16절은 육신적 건강보다 영적 건강의 회복에 대해 말씀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맥에 따르면 주로 육신적인 건강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 구원이란 말이 복음서에서 건강의 회복으로 쓰였으며 일으킨다는 말도 치유된 자의 육신적 기력을 기술하는데 쓰였다(마 9:6; 막 1:31; 행 3:7). 그러므로 침상에 누운 병자를 위한 장로의 기도가 주께서 그 침대에서부터 그 병자를 일으키도록 중재하신다는 것이 본문의 뜻이다.4) 그러면 믿음의 기도란 어떤 기도인가? 믿음의 기도란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절대로 신뢰하는 기도요 하나님의 뜻의 완전함에 대한 절대적 확신을 포함한 기도다. 그러므로 진정한 믿음의 기도는 항상 매사에서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무언의 인식이 포함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뜻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은 병자를 반드시 고치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분명하다(고후 12:7-9). 그러므로 그 신앙 즉 치유를 위한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기에 필요 불가결한 조건은 - 하나님의 선물인 이 신앙 - 치유가 하나님의 뜻일 때만 참으로 실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5) 이런 기도는 의인의 기도와 합치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과 조화되는 바른 관계에서만이 이런 기도를 할 수 있으며 엘리야처럼 효과있는 기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강조해야 하는 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의 신비이다. 그 뜻은 설사 우리가 병 낫기를 위해 바른 신앙의 기도를 했을 때라도 언제나 그 병이 낫는 것은 아니란 것이다.
주 1. Simon Kistemaker, James and I-III John, p.176 2. James Adamson, The Epistle of James , p.198 3. John G. Mitchell, An Everlasting Love(Multnomah,1990), p.177 4. Dauglas J. Moo, James, p.181 5. Ibid., p.1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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