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의 그렇다 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 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죄 정함을 면하라" (약 5:12)
야고보만이 아니라 예수님께서도 맹세하는 것을 정죄하셨다(마 5:33-37). 야고보는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라고 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문제는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하나님께서 맹세하게 하셨고 또 축복까지 하셨다(참고, 창 21:24; 신 6:13). 하나님 자신이 하시듯이 천사들도 맹세하였다(계 10:5-6). 그러면 우리는 맹세를 해야 하는가? 하지 말아야 하는가?
위 구절에서 야고보 사도는 무엇보다도 라는 말을 앞에 두므로 독자들로 하여금 맹세하지 말라는 경고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게 하였다. 특별히 야고보는 구속하지 않는 맹세로 진술을 강화하는 유대의 관습을 반대한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이 들어가지 않은 맹세ㅡ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 하는ㅡ는 구속력이 없다고 생각해서 쉽게 번복하거나 책임을 회피하였다. 그러나 그 맹세가 무엇으로 한 것이든 결국은 하나님께 호소한 것이 되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한 맹세와 다를 바가 없었다. 따라서 여기서 야고보나 산상수훈(마 5:34, 35, 37)에서 예수님이 맹세를 금하신 것은 구속력이 없는 맹세를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언제나 진실하게만 말하고 그 말에 대한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그런데 선한 맹세도 있다. 하나님께 헌신을 서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 그 서원을 지킬 마음과 거기에 드는 희생의 각오가 없이 하는 것이라면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법정에 증인으로 서게 된다면 판사 앞에서나 검사나 배심원 앞에서 맹세해야 한다. 그것은 세상 법의 관례이기 때문에 예외가 있을 수 없으며, 공정한 판결을 위해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선한 맹세와 악한 맹세를 구분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 차이는 참된 것(거짓된 것), 선을 행하기 위한 것(악을 행하기 위한 것), 거룩한 것(불경스러운 것), 의미있는 것(헛된 것), 중요한 것들(하찮은 것들), 재판적인 것들(은밀한 것들)이다.1) 그러므로 신자는 선한 맹세는 할 수 있다. 물론 이 경우도 그가 한 맹세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하며 구속력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악한 맹세는 결코 해서는 안 된다. 신자는 맹세와 상관없이 진실해야 하며 진실만을 말해야 한다. 주 1. Norman Gesler and Thomas Howe, When Critics Ask(Victor Books, 1992), p.5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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