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약 5:1) 성경은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에게 특별한 관심이 있으시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모세의 율법에 많은 부분이 가난한 자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께 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후대의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가난한 자는 무시되었으며 부자들의 착취의 대상이나 이용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이런 부자는 지혜서에서 불의한 자의 동의어가 되고 말았으며(시 10:15-16; 14:20) 선지서의 많은 부분들 특별히 부한 압제자들에 대한 정죄를 서슴치 않았다(아모스). 그리고 이런 주제는 신ㆍ구약의 중간 유대 문학에 아주 현저하다(특히 에녹일서 94-105장). 특별히 신약의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은 부의 위험성을 많이 경고하셨다. 거기서 이 세상에서의 위안은 다음 세상에서 울고 통곡함으로 대치될 것이라 하셨다(눅 6:24-25). 요한계시록 18:10-24에서는 큰 성 바벨론의 황폐를 인해서 울고 통곡할 세상의 상인들에게 길게 화가 있으라고 경고하고 있다. 또 마태복음 19:23에서 예수님은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말씀하셨다. 이런 배경에서 이 세상의 부자에 대해서 성경이 어떤 축복이나 칭찬이나 위로와 같은 말을 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부자라고 다 악하고 불의한가? 그렇다면 여기서 왜 부자를 정죄하는가? 하나님은 가난한 자만 사랑하시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 아니질 않는가? 부자를 일방적으로 정죄하고 심판하는 것은 부당한 것이 아닌가? 이상의 문제들을 하나씩 생각하면서 그 해답을 찾아보자. 먼저, 여기서 말씀하는 부자가 누구인가부터 알아보기로 하자. 부에 대한 최초의 형태는 음식, 옷 그리고 값진 보석이었다. 그런데 여기 나오는 부자가 신자라면 그 정죄와 심판이 부자연스러울 것 같다. 그래서 여기 부자는 신자가 아니라는 견해가 있다. 그들은 기독교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라 가난하게 사는 신자들을 압제하는 사람이라 한다(비교, 2:6). 그리고 만일 그들이 유대인이었다면 그들은 성경의 영적 교훈에서 떠난 자들로 세상의 사람이 된 사람들일 것이다.1) 그러나 이런 견해는 문제점이 없지 않다. 왜냐하면 성경이 불신 부자에 대한 경고를 하고 있다면 저들에게 아무 영향도 줄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성경을 보지 않으며 성경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그러므로 여기 부자는 꼭 불신자만을 가리킨다고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야고보 사도는 그의 동료 신자들의 약점을 자주 발견하였다(1:26; 3:13-17; 4장). 특별히 예배 때에 가난한 자와 부자 신자가 함께 있었고(2:1-9), 두 마음을 품은 자(약 1:8)나 헛되게 기도하는 자(약 4:3; 1:7)도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야고보는 신자가 아닌 부자와 이기적인 신앙인 부자를 다 포함하였다(Rops, Dibelius, Meinertz, Feuillet, Plummer).2) 여기서 부자는 누가복음 12:34에 의하면 세상에 보물을 쌓아 두고 거기 마음을 빼앗긴 자를 가리켰을 것이다. 여리고 성의 세리장 삭개오는 부자였으나 주님을 만나 구원받은 후에 세상의 재물에 두었던 마음이 자유를 얻어 하늘에 소망을 두게 되었고 그의 재물을 후하게 가난한 자들과 나눌 수 있게 되었다(눅 19:1-10). 이렇게 볼 때 여기 부자에 대한 심판은 모든 부자를 겨냥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이런 부자들은 어떤 심판을 받게 되는가? 초대 교회는 임박한 주님의 재림과 심판에 대한 사상이 강했고 그것이 저들의 신앙의 인내와 활력소가 되었다. 여기 부자들이여 울고 통곡하라는 말씀은 언뜻 보기에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처럼 들린다. 그러나 실은 회개가 아니라 심판에 대한 정죄일 뿐이다. 여기 눈물은 회개의 눈물이 아니라 멸망의 눈물이요 그들의 세상의 일들의 죽음에 대한 슬픔의 눈물이다.3) 그러므로 여기 고생은 부자들에게 임할 세상적인 일시적 고난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심판날 그들에게 배정하실 정죄와 심판을 가리킨다.4) 마지막으로, 여기 부자들이 가난한 자들을 취급함에 있어서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를 5:1-6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데이빗즈(Davids)는 야고보 사도는 여기서 다섯 가지로 저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것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1. 부자들의 부가 무가치하다 하였다. 저들은 불완전한 창고에 부를 쌓았다. 옷과 돈이 창고에 보관되어 있으나 좀과 도적이 해치고 훔쳐가 버린다 (마 6:19-20). 가난한 자를 위해 나누지 않는 재물은 안전한 천국의 창고에 보관할 수 없다. 2. 저들은 마지막 심판 때 그들을 대적해서 증거할 복음을 순종하는데 실패하였다. 그들은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에서처럼 풍성한 소유로 문밖 에 있는 거지를 돕지 않으므로 하나님께 순종하는데 실패하였으므로 지옥의 불이 저들의 살을 먹게 될 것이다. 3. 그들은 불의를 자행하였다. 저들은 가난한 품꾼의 품삯을 그날 지불하지 않았다(레 19:13; 민 24:14-15). 그것은 곧바로 품꾼과 품꾼 가정의 양식을 주지 않은 것과 같았다.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들을 정죄하셨다(사 5:9-10). 4. 부자는 방종하였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에서처럼 날마다 연락하였다. 5. 부자들은 가난한 자와 의인을 압제하였다(무죄한 사람들). 그들은 정죄하고 살인하였다. 그들은 법정을 이용해서 가난한 자들을 간접적으로 죽였 다.5)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은 당연하였다. 우리는 내게 주어진 모든 재물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인식해야 하며 그것들을 내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선한 청지기처럼 가난한 사람과 나누어야 한다. 그것은 하늘나라에 보화를 쌓는 축복이기도 하다.
주 1. Simon J. Kistemaker, James and I-III John, p.155 2. James Adamson, The Epistle of James, p.183 3. Ibid., p.184 4. Douglas J. Moo, James, p.159 5. Peter H. Davids, More Hard Sayings of the New Testament, pp.141-1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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