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가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까닭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였음이더라" (요 12:39-40)
본문 말씀은 유대인들 가운데서 예수님의 기적을 본 증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은 불신에 대한 요한의 설명이다. 그런데 그 이유가 하나님께서 저희의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기 때문이라고 한다. 더구나 하나님께서는 혹시라도 그들이 예수를 믿고 구원받게 되실까 하여 염려까지 하시는 분으로 비춰지고 있다. 여기서 요한은 이사야 6:10을 인용하였다. 하나님의 주권이 저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메시지의 진리에 대해 눈을 멀게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씀은 하나님의 주권적 목적들이 악한 사람들의 불신과 반대로 좌절시키거나 실패케 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오히려 그의 목적들이 성취되어진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 문제들이 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저들의 불신에 대한 책임을 물으실 수가 있겠는가? 또 구원이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에 의한 것이라면 사람의 책임은 어떻게 되는가? 성경은 이에 대한 완전한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의 신비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님이 선하시며 사랑하시는 분이시요 공의하신 분이심을 믿는다. 여기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완고케 하셔서 어쩔 수 없이 믿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그것과 상관없이 자의적으로 예수를 믿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믿지 않은 책임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에게 있었다. 하나님께서 신앙과 불신앙을 통제하시나 각 사람은 그리스도를 신뢰하도록 개인적인 결단을 해야 한다. 그를 개인적으로 믿지 않고서는 구원이 없다.1)
이 구절은 출애굽기 7장 이후에 나오는 모세와 바로의 대결 때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재앙 앞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지 않은 바로 왕의 강퍅함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그 경우에 항상 하나님께서는 내가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다고 하였다(출 7:3). 그럼에도 바로는 자기 스스로 마음을 강퍅케 하여 모세를 통해 전달된 하나님의 요구를 거부하였다.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야 말았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완고케 하심으로 믿지 않았다는 말씀은 그들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 때문에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믿지 않았다는 말씀이 아니다. 그들의 자유 의지를 하나님께서 강제하시지 않았다. 다른 말로 하면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적극적으로 은혜를 베푸시지 않으신 것뿐이다. 실제로 구원의 신앙을 갖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으로만 가능한 일이다.
주 1. J. Carl Laney, Answers to Tough Questions(Grand Rapids: Kregel, 1997), p.2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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