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못의 기적은 사실인가? (요한복음 5:2-8)
RevSuh  2008-08-13 20:56:23 hit: 2,654

가정예배를 드리다가 이 본문에 와서 문제가 되었다. 그것은 천사가 실제로 내려와 못의 물을 움직이게 하는가? 그리고 정말 그때 그 못에 들어가면 무슨 병에 걸렸든지 다 낫게 되는가? 그런데 첫 번째로 들어가는 환자의 병만 낫게 되는가? 천사는 순수한 영이라 몸이 없는데 우리가 볼 수 있는가? 만일 이런 모든 사실이 실제가 아니었다면  성경이 틀리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성경의 권위 문제까지 나오게 되었다.
  
이 본문을 읽게 되는 누구에게나 문제가 될 것 같아 다루어 보기로 한다.
먼저 이 본문이 성경의 원저자가 쓴 원본의 본문인가? 그렇지 않으면 후대의 첨가나 삽입인가?   한글 개역성경에서는 4절(물의 동함을 기다리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을 괄호 안에 넣었다. 그리고  어떤 사본에는 이 괄호 안의 구절이 없다고 주를 달았다. 영어성경 중에 미국 표준역(ASV)에서는 4절을 생략하였다. 또 최근에 번역된 새국제역(NIV)에서는 3하반절부터 4절이 빠져 있다. 그리고 난하주에 어떤 사본에는 이 말씀(3절 하반절과 4절)이 있다고 하였다. 신개정표준역(NASV)에서도 이 구절을 괄호 안에 넣었다. 그러므로 영어 성경을 보면 우선 본문이 다른 본문과 차이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어떤 중요한 사본에 본문의 3절 하반절부터 4절 부분이 제외되었는가?  3절 하반절 물의 동함이란 구절이 서방 전통사본들(Bezae, Koridethi, Os, Rulg)에서는 나온다. 이런 점에서 이 본문이 원본이었겠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사본인 알렉산드리아 사본(Codex Alexanderinus)과 후에 헬라어 사본에서는 위의 본문이 제외되었다. 그러나 서방의 교부 터틀리안(Tertullian, A.D. 200년경)이 본문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가 있고 400년경에 크리소스톰(Crysostom)도 헬라 저작자들 중 그렇게 한 첫 인물이었다.1)
  
학자들 간에 이 문제에 대해서 원본이다, 아니다의 논란이 있으나 대부분은 원본이 아니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그렇게 신경을 쓸 일이 못 된다. 그것이 이 본문에서 강조하고 가르치려는 요점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영어 성경처럼 괄호 속에 들어 있는 말씀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다음으로 이 베데스다 못에 관해서 생각해 보자. 베데스다란 말의 의미는 자비의 집이란 뜻이다.  그러나 사본상 그 이름이 조금씩 차이점이 있어 그 의미가 조금씩 다르다. 예컨대 베데자다(Bethzatha)일 경우 감람나무의 집이 되며 베데사이다(Bethsaida)일 경우는 고기잡는 집이란 뜻이 된다.
  
그러면 정말 베데스다란 못은 양문 곁에 있었는가?  이 못은 1888년 예루살렘의 성 안네(Anne) 교회를 수리하다 그 모습이 드러났는데 희미한 후레스코(Fresco)벽화로 물을 동하는 천사가 벽화에 나타나 있다. 스키크(K. Schick)가 이곳을 발견한 곳은 두 개의 못이었는데 하나는 55피트 길이였고 다른 하나는 65피트 길이였다. 그런데 앞의 것에 행각과 일치하는 5개의 아치(Arches)가 있었다.  그래서 십자군들은 이 곳이 요한복음 5장에 베데스다 못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고 거기에 기념 교회당을 짓게 되었다.2)  그러면 과연 그 못에 천사가 내려와서 물을 움직였는가? 그리고 무슨 병에 걸렸든지 처음으로 그 못에 들어가면 그 병이 나았는가?  이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잘 알 수 없다.  혹시 베데스다 못이 온천이어서 자연적으로 병을 치료하는 효능이 있었는지 모른다. 로마 가톨릭이나 크리스챤싸이언스 그리고 믿음의 치료자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 당시에 전설이나 구전은 베데스다 못에 가끔 천사가 내려와서 물을 동하는데 누구든지 먼저 들어가는 환자의 병은 낫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본문에 나오는 38년 된 병자도 그 말을 믿고 병을 고치기 위해 거기 가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뿐이다. 그러면 그것이 사실이었는가? 사실이라고 받아들인다면 몇 가지 난점이 있다. 과연 순수한 영인 천사가 사람들의 눈에 보일 수 있느냐?  하는 문제요, 또 하나는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찌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께서 첫 번째로 들어가는 자의 병만 낫게 하셨겠는가? 하는 점이다. 정말 그랬다면 중환자로 스스로 움직일 수도 없는 사람은 결코 고침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본문을 이렇게 설명한다. 이 본문은 후대에 첨가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유대인의 전통과 일치하는 것으로 거기 병자들이 많이 모여 있는 이유를 분명하게 하고 또 7절 “물이 동할 때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에 대한 설명을 위해서 기록했을 뿐이라는 것이다.3)  그러므로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났든지 안 일어났든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정말 환자가 그 못에 들어가서 낫든지 안 낫든지는 성경 말씀의 옳고 그름에 아무 영향도 주지 않는다.
  
렌스키(Lenski)가 말한 것처럼 요한의 설명은 예수님께서는 그 병자가 다른 사람이 나았다는 것을 듣고 자기도 낫기 위해 소망을 가졌던 그 못에 대해서 완전히 무시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본문을 기록한 요한이 강조하는 것은 이 38년 된 병자가 일어나서 걸어갈 수 있게 고침을 받은 것은 이 특수한 못에 있는 어떤 의약적인 성분 덕분에가 아니요 천사의 활동도 아니라 예수님의 능력과 사랑으로 되었다는 것이다.4)

그러나 우리는 베데스다 못의 치유의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그 못은 온천의 물이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그 물로 자연적인 치료를 받던 사람들이 언제나 치료가 되지 않고 때때로 되는 것을 깨닫고 아마 천사가 내려와서 물을 움직이게 할 때만 치료가 된다고 소문을 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주
    1. Reymond E. Brown, The Gospel According to John, I-XII(Doubleday, 1966), p.207
    2. The Zondervan Pictorial Encyclopedia of Bible, Vol. I. p.551
    3. Joseph H. Mayfield, John(B.B.C. Vol. 7), p.74
    4. W. Hendriksen, John(The Banner of Truth Trust, 1961), p.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