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요 3:13) 본문은 예수님이 니고데모와 하신 대화의 일부이다. 이 말씀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인자(예수님)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다는데 있다. 그러나 성경은 이미 에녹(창 5:24)과 엘리야(왕하 2:1-12)가 하늘로 승천했다고 기록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예수님이 잘못 말씀하신 것인가 혹은 요한이 기록을 잘못한 것인가? 또 여기서 하늘에 올라갈 자가 없느니라고 했다면 아직 예수님이 승천하시지 않으셨기 때문에 이해가 쉬우나 이미 현재 완료형을 써서 현재나 과거에 이미 하늘에 올라간 자로 말씀하기 때문에 더 문제가 된다.
우리가 이 말씀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로 앞에 나오는 구절(문맥)들과 연관을 지어 해석해야 한다. 거기서 예수님은 중생에 대해 바람의 유추(세상의 일)로 설명해 주셨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런 기초적인 영적 진리도 이해를 못하는 그가 훨씬 더 진보된 신령한 진리(하늘의 일)를 말씀한다면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본문과 유사한 구절이 구약성경이나 다른 유대 문헌들에도 나오고 있다.1) 신명기 30:12에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하였다. 유대 기독교적 전통에서는 계시나 구원은 아래에서부터 인간의 성취가 아니라 위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었다.2) 이런 맥락에서 본문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나 뜻은 인간의 노력으로 얻는 것이 불가능한 것을 일컬어 그런 진리를 얻기 위해 하늘에 올라갈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 하늘에 올라갈 수 없으며 거기서 하나님의 신비를 알아 낼 수가 없다.3) 그러므로 본문은 지금까지 결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다는 말씀이 아니다. 그것은 에녹과 엘리야가 이미 승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 두 사람도 본문이 의도하는바 하늘에서 하나님의 지식이나 신령한 일을 깨달아 알고 다시 땅으로 내려와서 그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승천하지는 않았다. 이런 의미에서 하늘에 올라간 자는 아무도 없다고 하실 수 있었다. 그러면 신령한 일은 무엇이며 인자만이 가지고 오신 진리는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구속의 진리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그의 백성의 구속에 대한 하나님의 작정은 그것이 그의 백성들(사람들)에게 계시될 때까지는 온전히 인간의 지식의 범위밖에 놓여 있다는 뜻일 것이다. 죗값의 저주를 담당하시고 인간을 자유하게 하시기 위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려는 작정을 하실 때 실제로 아버지와 하늘에 함께 있던 사람이 있었는가? 거기에는 한 사람, 하늘에서 내려 오셔서 지금(그 당시) 세상에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뜻을 말씀하시는 인자(예수님)밖에는 없었다.4) 이런 의미에서 아무도 하늘에 올라간 자는 없었고 하늘에서 내려오신 인자뿐이라는 것이다.
이제 마지막 문제를 풀기로 하자. 앞서 지적했듯이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 오셨을 뿐 승천은 장래의 일이 아닌가? 그런데 왜 이미 과거에 올라간 분으로 말씀하는가? 스테인(Stein)은 학자들의 견해를 요약해서 아래와 같이 네 가지로 설명하였다.
1. 기대의 관습으로 예수님의 장래의 승천을 말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 일어날 사건의 확실성 때문이다. 2. 올라가셨다는 단어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직접으로 교제하신 때 즉 세례 시에 예수님의 체험에 대한 언급으로서 추상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3. 요한복음 3:13은 예수님이 말씀한 것이 아니라 저자의 해석적 서술이다. 그 이유는 이 말씀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이 해석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그런데 사실 예수님이 하신 말씀만을 붉은 글씨로 쓴 성경에서 어디서나 저자의 말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으로 되어 있다. 4. 요한복음 3:13은 예수님이 실제로 한 말씀이다(붉은 글씨). 그런데 예수님도 미래 시제로 승천하실 것(shall ascend)으로 말씀하셨다. 그것은 예수 님이 아직 승천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한이 이 말을 과거로 바꾸었다. 그 이유는 요한이 이 말씀을 쓸 때 예수님은 승천하신 후였기 때 문이다. 요한의 독자들에게 승천은 사실 과거의 사건이 되기 때문이다.
세 번째와 네 번째의 해석이 가장 적합하다고 보겠다.5) 기독교의 신앙은 계시에 의존한다. 이 계시는 하나님께서만 인간에게 나타내시고 보여 주시는 것이다. 그것은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의 선물이지 아래서부터 인간이 노력으로 획득하고 얻는 것이 아니다. 이 본문은 특별히 구속 사건과 연관을 시켜 해석되어야 한다. 여기서 그의 높아지심은 그가 그의 사람들을 그 자신에게로 이끄심으로 구원의 사역을 성취하신 것이다. 또 내려오신 것은 인류의 구원을 위한 승천의 전제로 언급되었다. 이런 일은 하나님 주권의 구원을 성취하도록 아버지에 의해 권위와 능력을 얻으시고 하늘에서 내려오신 유일하신 인자의 사역이다.6) 그러므로 인자밖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었다.
주 1. J. H. Bernard, The Gospel According to St. John, Vol. I, T. & T. Clark, 1953. p.111. R. Abbahu는 말하기를 만일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내가 하늘에 올라갔다고 말했다 하자 그러나 그는 그것을 증명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그 일은 불가능하다. 이것은 수납된 유대인의 원칙이었다. 반면에 유 대인의 외경들은 그들이 영적 진리를 전해 주기 위해서 승천한 성도들이 있다고 한다. 예컨대 에녹(Enock IXX,I), 아브라함(The Testament of Abraham) 그리고 이사야(Ascension of Isaiah,7)등이 있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그런 전설을 따랐거나 영향을 받지 않았다. 2. R.H. Stein, Difficult Passage in the Gospel. p.95 3. Leon Morris, John, p.223 4. W. Hendriksen, The Gospel of John, p.137 5. Stein, Op,cit., pp.96-97 6. George R Beasley-Murray, John(Word Books, Publisher, 1987). p.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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