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눅 12:49)
일반적으로 본문 말씀은 53절까지 한 부분으로 취급하는데 그 주제는 분리자 예수라고 할 수 있다. 여기 불은 주님의 길을 예비했던 세례 요한이 예수님의 이루실 사역의 성취로 묘사하였다.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눅 3:16). 여기서 불은 성령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으나 마가복음에서는 성령만 있지 불은 생략되었다. 그러나 마태와 누가는 불을 덧 붙였다(마 3:11). 그리고 마태와 누가는 이 말씀에 덧붙여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마 3:12; 눅 3:17)고 하였다. 위의 구절에서 바람과 불은 성령의 상징이며 그것들은 이름뿐인 천국의 자녀에서 참 천국의 자녀를 분리시킴으로서 오실 자가 성령의 능력으로 하실 일을 묘사하였다. 예수님의 사역은 정확하게 요한이 직시한 심판의 사역이 아니었을지라도 확실히 그것은 키질을 하고 분리시키는 것이었다.1) 그러면 내가 땅에 불을 던지러 왔다는 말씀의 참 뜻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예수님의 말씀에서 불은 그의 백성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가리켰다. 이렇게 불이 심판과 연계된 성경구절은 많이 있다(사 66:15; 욥 1:16; 암 1:7; 10-14; 2:2,5; 말 3:2,5; 고전 3:13; 살후 1:7-8). 그런데 이 심판은 갈보리에서 제시되었다. 거기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케 하셨고 심판을 짊어지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여기서 이제 곧 다가올 수난과 죽음을 생각하신 것이다.2) 이 해석은 바로 다음에 나오는 내가 받을 세례란 말씀이 지지해 준다. 거기서 세례는 주님의 수난과 십자가를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3) 정말 예수님의 십자가는 불과 같은 효과가 있다. 불의 효과는 이중적이다. 타기 쉬운 물체는 파괴시키며 타지 않는 것은 정화시키거나 정련시킨다. 이처럼 십자가는 악의 제거와 악인의 파멸 그리고 성실한 신자를 정화하고 정련한다. 같은 맥락에서 불은 가르고 분리시키는 것을 가리켰다고 할 수 있다.4) 본문이 가리키듯이 예수님의 사명은 땅에 불을 던져 온 세상을 다 사르는 일이었다. 제2세기 기독교 작가였던 저스틴 마터(Justin Martyr)도 예수님의 요단강에서의 세례를 이런 의미로 설명하기를 예수께서 물로 내려 가셨을 때 불이 요단에서 붙었다고 하였다.5) 이렇게 예수님은 그의 활동의 시발점에서 참으로 세상에 이 불을 붙이기 시작하셨다. 그러나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란 말씀대로 아직은 불이 완전히 붙지는 못하였다. 이 불은 예수님의 구속적인 죽으심 그의 부활 승귀 그리고 오순절에 성령의 부어 주심이 있은 후에야 완전히 타게 될 것이었다.6)
주 1. F.F. Bruce, Hard Sayings of Jesus, pp.122-123 2. W. Hendriksen, The Gospel of Luke. pp.681-682 3. R.C.H. Lenski, The Interpretation of St. Luke's Gospel, p.713 4. Leon Morris, Luke. p.240 5. Justin Martyr, Dialogue with Trypho, F.F. Bruce. op,cit., 6. N. Geldenhuys, Commentary on the Gospel of Luke, p.3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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