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revdavidsuh  2008-08-12 11:11:24 hit: 2,936


    "제 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막 15:34; 마 27:46)
                                        
   본문 말씀은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마지막으로 하신 고뇌의 말씀으로 구약 시편 22:1의 인용인데 거기서 다윗은 예언적으로 고난받고 죽으시는 메시아를 묘사하였다.1)  다윗은 선지자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 고통 중에 하실 말씀을 미리 기록할 수 있었다. 이 말씀은 마태와 본문 마가만이 기록하고 있는데 원래는 아람 어로 하셨다. 마태는 첫마디로 엘리(ELI)란 히브리 어를 썼고, 마가는 엘로이(Eloi)란 아람 어를 썼다. 그러나 다같이 라마사박다니라는 아람 어를 쓰고 있다.
  
학자들은 한결같이 본문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 중 가장 어려운 말씀이라는데 의견을 같이한다.  그것은 이 절규가 예수님이 자의적 십자가 순종과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사랑과 조화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다. 여기서 어두움과 절규 사이에는 연결이 매우 밀접하다. 어두움은 절규의 고뇌의 내용에 대한 상징이었다. 예수님의 이 고뇌의 말씀은 3시간 동안의 어두움에서 그가 당하신 고난 때문이었다. 여기 어두움이 임하여를 마태복음에서는 "해가 빛을 잃고" 라고 썼는데 그 원래의 뜻은 일식이 되어란 말이다. 그러나 오리겐(Origen)은 이 때가 만월이므로 일식은 있을 수가 없다고 하였다.2)  그러므로 여기 어두움은 초자연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라고 절규하셨는가?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죄가 되셨고(고후 5:21) 저주가 되셨다(갈 3:13). 우리의 허물과 죄 때문에 찔리고 상하셨다(사 53장). 이 절규는 그의 죽음과 장사 사이 즉 겟세마네, 가야바 그리고 골고다에서 그가 당하신 모든 고난을 연상시켜 볼 수 있을 것이다.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은 그 자신과 씨름하셨다. 그리하여 자신을 아버지의 뜻에 복종시키셨다. 그런데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하나님과 씨름하셨고 지금은 그 안에서 아버지를 볼 수 없으셨다. 그것은 분리의 벽이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생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세상의 죄와 저주가 이제 아들에게 임한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갈급해 하셨으나 하나님은 자신을 옮기셨다. 아들이 아버지를 떠난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아들을 떠나셨다. 아들이 아버지께 부르짖었으나 그에게 대답하지 않으셨다.3)
  
그러나 아무도 아버지가 아들을 버린다는 이 말씀의 깊이를 완전히 알 수는 없을 것이다.
핸드릭슨은 어떻게 하나님이 하나님(아들)을 버리실 수 있는가?  아버지 하나님은 제한적으로 아들의 인성을 버리셨다고 보았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 사랑을 중단하신 때는 없었다고 하였다. 아버지도 아들도 피차 버리신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실은 큰 병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한 어린아이로 설명하였다. 부모는 그 자리에 늘 있을 수가 없다. 그러나 병으로 입원해 있는 아이를 부모는 여전히 사랑한다. 전보다 더 사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부모가 곁에 없을 때 엄마 아빠를 찾고 애타게 부르는 것이다.4) 그러므로 여기서 허무한 절망을 느끼심으로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아직도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시며 이 잔은 예수님께서 그의 아버지의 손에서 기꺼이 받으신 것이었다(28:36-46).5)
  
그러면 아버지가 버리셨다는 말의 참 뜻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의 진노를 맛보는 것을 가리킨다. 죄 값의 진노는 죽음이다. 물론 예수님은 죽으실 때 그의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셨으니 버림받지 않으셨다. 그러나 역시 그는 세상의 죄에 대한 형벌로 죽으셨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나님 아버지는 그것이 필연적이 아닐 때 아들을 극한 고난 속에 내버려두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나 십자가의 형벌은 그가 그의 백성의 죄에 해당한 형벌을 충분히 받기 위해 필연적인 것이었다. 이런 뜻에서 아버지는 아들을 버리셔야만 하셨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죄는 반드시 그 값을 치러야 한다는 사실이다. 내 죄 때문에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아버지의 버림을 당하셨고 내 죗값의 진노를 당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나와 모든 믿는 자의 구원을 위한 죗값을 친히 다 담당하셨다. 골고다의 폭풍과 어두움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에게 평안과 구원의 햇빛이 밝게 비치고 있는 것이다.
  
   주
   1. R.C.H. Lenski, The Interpretation of St. Mark's Gospel. p.715
   2. New Bible Commentary, P.884
   3. R.C.H. Lenski, Ibid. P.717
   4. W. Hendriksen, The Gospel of Mark. p.662
   5. R.T. France, Matthew, p.3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