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막 2:10)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의 어느 집에 계실 때, 그 소문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몰려 왔다. 한 중풍병자를 네 친구가 예수님께 데려왔으나 인파의 장벽 때문에 예수님을 만날 수가 없었다. 생각 끝에 지붕을 뜯고 중풍병자의 침상을 예수님 앞으로 달아 내렸다. 더러운 침상 위에 누운 초췌하고 냄새나는 병자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나 예수님은 저들의 신앙을 보시고 그 중풍병자를 고쳐주시기로 하셨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병자에게 네 침상을 들고 걸어가라고 말씀하시기 전에 "내 아들아! 네 죄가 사하여졌다"(2:5)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그 중풍병의 치료에 대해서는 아무 말씀도 안 하셨다. 왜 그랬을까? 예수님은 그 중풍 병자에게 먼저 필요한 일은 그의 병을 고치시는 일이 아니라 그의 죄가 사하여졌다는 확신이라고 보셨던 것이다. 그리고 만일 이 용서의 확신이 그에게 기쁘게 용납될 때, 육신적인 병도 치유될 것을 아셨다. 그러나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바로 알지 못했던 군중들은 "네 죄가 사하여졌다"는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사람이 누구이기에 멋대로 죄의 용서를 선언한단 말인가? 죄란 하나님을 대적한 것이니 하나님만이 용서하실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사람은 그가 누구이든 하나님이 당신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바랄 뿐이라고만 말할 수 있지 않은가? 더구나 이 중풍병자는 죄의 용서를 위해 회개한 일도 없었고 속죄제를 하나님께 드렸다는 증거도 없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인간 예수가 죄의 용서를 선언한단 말인가? 실로 예수는 하나님의 대권을 참칭한다고 생각하였다. 예수님이 참람된 말을 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십분 양보해서 설사 예수가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다고 인정하자, 그러면 그 증거를 보여 줄 수 있는가? 죄가 사해졌는지는 아무도 모르지 않는가? 죄용서는 말뿐이어서는 안 되고 보여 줄 증거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들의 생각을 아시는 예수님은 그 중풍병자에게 네 침상을 들고 걸어가라고 명령하셨다. 예수님의 명령에 아무 효과도 나타나지 않는다면 죄에 대한 용서의 선언은 거짓된 것일 것이다. 그러나 만일 예수님의 명령대로 중풍병자가 일어나서 걸어간다면 죄의 용서의 선언은 참됨이 밝혀질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10절에 가서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노라 하시고 이어서 중풍병자에게 네 침상을 들고 집으로 가라고 하셨다. 사람들은 그가 즉시 일어나 그들 앞에서 걸어가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여기 중풍병자를 고친 일과 죄를 사하는 일은 둘 다 하나님의 권능으로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말씀의 치유능력으로 그의 죄에 대한 용서의 선언은 참된 것으로 증명되었다.1) 그러면 인자가 누구이기에 죄를 사할 수 있는가? 인자란 말의 참 뜻이 무엇인가? 이 말의 성경적 유래는 어떠한가? 여기 인자란 말은 문자적으로 사람의 아들을 가리키지 않는다. 이 말은 예수님에게만 부칠 수 있는 특별한 명칭이었다. 그래서 핸드릭슨은 인자란 말은 예수님의 자기 호칭으로 특별히 구약성경을 완전히 모르는 사람들에게 쓰심으로 자신의 숨겨진 어떤 것을 나타내려 하셨다고 하였다.2) 라이리(Ryrie)도 "하나님의 아들은 예수님의 신적 이름이고(마 8:20), 다윗의 아들은 그의 유대 이름이며(9:27), 인자는 그의 세상과의 사명에 연관된 이름이다. 인자는 그의 낮아지심과 겸양(8:20), 그의 고난과 죽음(눅 19:10),그리고 그의 왕으로서 장래의 다스리심을 강조한다(마 24:27)"고 하였다.3) 인자란 말은 원문에서는(호 휘오스 투 안드로푸, ὀ ύίὁϚ Τού ἀνθρὠπου) 두 헬라어에 다 정관사가 붙어 있는데 사람의 한 아들 즉 인간 존재에서 아주 구별된 형태다. 여기 사람은 결코 복수가 아니다. 그러니 총칭적인 의미이다. 어떤 사람에게서 나오신 분이 아니라, 인류의 아들로서 사람의 본성을 가지신 분이시다. 사람의 한 아들은 그가 참 인간이시면서 다른 사람이 그것을 지닐 수 없는 방법으로 인성을 지니신 분이시며,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나오신 한 분임을 드러낸다. 인자는 단지 이성적 인간이 아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요, 그의 신성에 우리의 인성을 연합하신 아들이시요, 우리의 살과 피를 취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4) 그러면 인자란 말은 구약의 어디에서 유래되었는가? 성경학자들은 구약의 다니엘 7:13-14에서 인용되었다고 믿으며 인자란 말은 신성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막 13:26; 마 24:30; 20:64; 시 104:3; 18:10-18; 97:2-4; 사 19:1; 나 1:3). 구약학자 드라이버(Dr. Driver)도 "초인간적인 엄위와 지위"(Superhuman Majesty and State)로 해석하였다. 유대인 가운데서 메시아는 구름의 아들(Son of Cloud)로 생각하였고, 수리아나 아람 어로 인자는 한 사람이란 뜻이므로 흠정역의 사람의 한 아들(a son of man)이 정확한 번역이다.
존 칼빈(John Calvin)은 인자 같은 이란 말은 그리스도가 아직 우리 육신을 취하시기 전인 사실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또 롤록(Robert Rollock)은 다니엘이 인자 같은 이를 본 것은 사람의 아들이 아니라고 보았다. 아주 오래 전에 그리스도는 아버지와 선지자들에게 인간의 모양으로 나타나셨다. 그는 그때에는 참 인성을 입지 않았고 다만 모양을 취했으며 그의 장래의 인성에 어떤 그림자로서 나타나셨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인성은 이미 시작부터 모양을 나타내지 않았고, 시간 속에서 나타나셨기 때문이다. 터틀리안(Terttullion)은 그가 그 시간에 그의 인성의 견본(Specimen)을 입으셨다고 하였다. 그러니 여기서 모양은 오실 메시아의 인성을 나타낸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보다 보편적인 인자의 해석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보는 견해이다. 그 이론은 다니엘 7:18, 28에 호소하며 그 입장을 변호하는데 거기서 그 나라는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들에게 주어졌다. 그러나 이 해석은 한 분 개인 메시아 대신에 단체적인 백성을 가리키는 것이므로 본문에는 부합되지 않는다. 초기의 인자에 대한 해석 역시 메시아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에녹서 37-71에서 이 구절이 14회 나오는데 이 견해는 일반적으로 유대 랍비들이 채택해 왔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명칭을 자신에게 적용시키셨으며 그 사실이 옳았음을 성경이 분명히 한다(마 25:31; 막 10:45; 눅 17:24). 근래에 보다 자유주의적인 학자들은 메시아적인 해석을 하나의 신화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 입장은 하늘의 모양을 하나의 전통에 속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그 모양(인자)은 한 사람(신적 정복자)을 나타내지 성도로 불릴 백성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므로 초기의 해석이나 근대의 해석이나 인자란 말은 단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개인을 가리키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인자 같은 모양은 초인간적인 인격을 드러낸다. 왜냐하면 그가 구름과 함께 오시는 것은 하나님의 보좌에로 이끌리심이요, 보편적이고 영원한 나라가 그에게 주어진 때문이다. 사람을 가리키는 인자란 말에 관한 한, 그것은 깨어지기 쉬운 연약한 것을 가리키고, 전치사 ‘같은’ 이란 말에 관한 한, 하늘의 모양의 성육신 전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리고 인격의 인성이 역시 지적되고 있다. 우리 주님이 자신에 대해 인자로 말씀하심은 그의 낮아지심의 상태에 있음을 가리키나 그럼에도 그 신성을 제외시킨 것이 아니다. 이 명칭을 예수 그리스도가 친히 쓰신 것은 그가 그 자신에게 신성을 돌리신다는 가장 강한 증거다.5) 이제 인자가 세상에서 죄 사하는 권세가 있는 말씀은 어렵지 않게 되었다. 여기서 인자는 물론 인성을 입으신 예수를 가리킨다. 그러나 그의 인성은 대표적인 인간으로서 인자요 바울이 마지막 사람(고전 15:45)으로 기술한 분이시다. 그리고 이 인자는 다니엘서의 인자 같은 이에서 유래된 것으로 메시아를 가리킨다. 인자이신 메시아는 인성을 입으셨으나 역시 하나님이심을 포기하지 않으신 하나님이시다. "죄의 용서의 선언과 수여는 하나님의 최상의 대권인데 하나님은 그것을 인자와 함께 나누신 것이다".6) 여기서 인자란 명칭은 사람이 되신 예수님이시면서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가리키는 말이다. 역시 하늘에 계시고 세상에도 계신 분으로 그 분의 역할은 하늘과 땅에 다 연관되어 있다(요 1:51; 요 5:27; 6:27). 인자란 하나님이시며 인간이신 구세주로서 가장 적합한 이름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중풍병자에게 네 죄가 사하여졌다고 선언하실 수 있었고 그 증거로 그 중풍병자를 걸어가게 하실 수 있었다.
주 1. A. Elwood Sanner, Mark(B.B.C. Vol. 6), p.286 2. W. Hendriksen, Mark(Banner, 1976), p.91 3. The Ryrie Study Bible, p.1457 4. B.C.H. Lenski, The Interpretation of St. Mark‘s Gospel. pp.105-106 5. Edward J. Young, Daniel(Banner, 1972), pp.154-156 6. F.F. Bruce, The Hard Sayings of Jesus, pp.27-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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