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귀신
RevSuh  2008-08-12 12:27:44 hit: 2,141

    "잠잠하고 그에게서 나오라" (막 1:25)

마틴 루터가 어려서 자랄 때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산과 강에는 귀신이 꽉 차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오늘처럼 과학 문명이 발달한 시대에 귀신의 이야기를 하면 시대에 뒤진 이야기라고 아예 무시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시대에 상관없이 마귀의 역사는 지속되고 있으며 사실 어떤 의미에서 그 역사가 더 강해진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그 당시에 흔했던 똑같은 방식의 역사는 아닐 것이다. 오늘날은 개명한 시대인 만큼 그 역사도 더 은밀하고 교묘하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한 예를 하나 든다면 내가 예수라는 수많은 적그리스도의 출현과 이단파의 득세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마귀와 그의 사자들인 귀신의 역사는 예수님이 재림하심으로 마지막 날에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마 25:41).
  
본문은 예수님께서 갈릴리 지방에서 전도하실 때 있었던 사건이다(막 1:21-28). 예수님은 언제나 안식일에는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셨다. 바로 그 자리에 귀신들린 자도 들어와 있었는데 그 귀신들린 자는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이미 알고 있었다. 나사렛 예수여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귀신들린 자는 자기의 지혜로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안 것이 아니라 귀신이 안 것이다.  여기서 귀신들린 사람은 문자대로 번역을 하면 더러운 귀신(영)안에 있는 사람이다. 결국 귀신이 들렸다는 것은 귀신의 지배를 받게 된 것을 가리킨다.
  
귀신이란 말 앞에 더러운이란 형용사를 붙여 쓰는 것은 공관복음의 공통점인데 마가복음에 제일 많아 10번, 누가복음에 6번, 그리고 마태복음에 2번을 쓰고 있다. 그러면 귀신이면 귀신이지 왜 더러운 귀신인가?  더러운 영인가?  그것은 그 귀신의 역사가 더럽기 때문이다. 사람이 귀신에 지배되면(귀신 들리면) 그 사람은 악의 공허, 탐욕, 호색, 고독, 절망, 사나움에 빠지게 된다.
  
귀신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라고 하였다. 이 말은 더러운 귀신과 대조되는 말이며 구약에서는 선지자를 가리켰다. 여기서는 선지자이기보다는 하나님 자신으로 생각할 수 있겠다. 그것은 선지자도 이적을 행할 때는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 했고 귀신을 쫓아낸다는 사람들도 유명한 사람의 이름으로 그렇게 했는데 예수님은 직접 귀신에게 나오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이다.1)
  
여기서 귀신이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안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인지라 그 분이 더러운 자, 모든 거룩하지 못한 자를 다 멸하실 것을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귀신은 신앙고백을 한 것인가?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사람들에게 선전한 것인가?
  
과거 학자들 중에 데오프랙트(Theophylact)와 그로티우스(Grotius)는 예수님이 세상에 계심으로 끝장이 날 운명을 아첨함으로 막아 보려고 했다고 하였다. 또 제롬(Jerome)은 마치 도망간 노예가 오랜 후에 주인을 만나 매를 때리지 말아 달라고 비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보다 더 좋은 해석은 세상에서 받는 주님의 명예를 손상시키려 하였다. 그리하여 진리 자체가 거짓 영에게서 증언을 받음으로써 의혹과 불신을 받도록 하려는 데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마귀의 증언을 잠잠하라고 꾸짖으시고 그에게서 나오라고 하셨기 때문이다.2)
  
예수님은 단호하게 이중 명령으로 잠잠하고 나오라 하셨고, 귀신은 그것이 싫어 귀신들린 사람으로 소리치며 경련을 일으키게 하면서도 그가 할 수 있는 전부가 그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었으므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3)  그 결과 사람들은 예수님의 교훈이 권세있는 새 교훈임을 깨닫게 되었다.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신 사건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우는가?
귀신이 들렸다는 것은 귀신의 지배 아래 들어간 것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내실 때 사실은 귀신들린 사람에게가 아니라 마귀의 수종자요 졸개인 귀신과 상대하셨고 귀신에게 명령하셨다.
  
귀신의 역사는 언제나 더러운 것이다. 죄에 깊이 빠지게 하여 그 영혼을 불행하고 비참하게 하며 망하게 하는 것이다. 귀신은 나오면서도 경련을 일으키고 소리를 지르며 그 사람을 해치려고 하였다.  살리는 성령 의 역사와 너무도 대조적이다.  귀신은 하나님도 알고 예수님도 안다. 그러나 믿지는 않는다. 하나님을 알기만 하고 믿지 않는 것은 귀신의 신앙보다 나을 것이 없다. 귀신의 역사는 복음의 역사를 증진시키는 것이 아니라 반대하며 방해하는 것이다.

   주
   1. W. L. Lane, The Gospel of Mark(Grand Rapids: Eerdmans, 1984), p.15
   2. R. C. Trench, Notes on the Miracles of  Our Lord. p.91
   3. W. Hendriksen, The Gospel of Mark(Edinburgh : Banner, 1976), p.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