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7:9-10은 가룟 유다의 돈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산 것을 구약의 성취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하신 말씀이 이루었나니 일렀으되 저희가 그 정가된 자 곧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정가한 자의 가격 곧 은 삼십을 가지고 토기장이의 밭 값으로 주었으니 이는 주께서 내게 명하신 바와 같으니라 하였더라". 그런데 이 구절의 많은 부분은 실제로 스가랴 11:12-13에서 온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고가를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말라 그들이 곧 은 삼십을 달아서 내 고가를 삼은지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나를 헤아린 바 그 준가를 토기장이에게 던지고". 그런데 스가랴서의 말씀과 마태의 인용 사이에는 그 돈을 토기장이 개인에게 주기보다 밭을 사는데 주었다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마태는 밭을 샀다고 하였고, 스가랴서의 구절은 전혀 밭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러나 예레미야 32:6-9에서는 선지자가 은 십칠 세겔을 내고 아나돗에 있는 밭을 샀다. 예레미야 18:2에는 선지자가 그의 집에서 흙으로 그릇을 빚는 토기장이를 주시하고 있으며, 19:2에서는 토기장이가 성전 근처에 살면서 힌놈의 골짜기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예레미야 19:11에서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사람이 토기장이의 그릇을 한 번 깨뜨리면 다시 완전하게 할 수 없나니 이와 같이 내가 이 백성과 이 성을 파하리니 그들을 매장할 자리가 없도록 도벳에 장사하리라 하였다. 그러므로 스가랴의 토기장이에게 준 돈은 예레미야의 상징적 행위로 복귀하였다.1) 그러면 왜 스가랴는 아니고 예레미야인가?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해답들이 제시되었다.
1. 어떤 사람들이 예레미야 대신에 사소한 본문상의 변형인 스가랴를 따랐다. 2. 원래의 본문에는 선지자의 이름이 없었다. 예레미야의 이름은 서사자들의 실수였다. 3. 마태가 조금 실수했다. 4. 예레미야의 한 외경에서 인용했다(Origen, Jerome). 5. 예레미야가 스가랴 9-11장을 썼다. 6. 마태는 첫 번째 책(비록 전혀 예레미야서가 마태 당시에 첫 번째 책이 아닌 것이 확실하지만)의 이름 아래 속한 선지서의 전 책들을 가리켰다. 7. 헹스텐베르크(Henstenberg)의 설이 유력한데 그의 설은 스가랴 11장에 밭을 가리키는 구절은 없으며 마태의 인용은 예레미야 19:1-13일 것이라는 것이다.2)
그러나 마태는 토기장이의 밭을 언급하고 있으므로 스가랴서와 예레미야서에서부터 선지자적 상징주의의 요소를 연합하고 요약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왜 스가랴 대신에 예레미야인가? 그것은 두 선지자 중에 스가랴보다는 예레미야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경우는 마가복음 1:2-3에서 말라기 3:1과 이사야 40:3을 인용하면서 보다 중요한 이사야 선지의 이름을 든 것과 같다고 하겠다. 마태는 스가랴서와 예레미야서를 자유롭게 섞어 인용하였으나 에례미야가 스가랴보다 그의 독자들에게 더 잘 알려진 선지자였다.3) 마태는 자료의 원천을 소선지보다는 대선지로 언급하였다.4) 뿐만 아니라 바벨론 탈무드(Bara Bathra 14B)에는 예레미야가 선지자 중 첫 번째였으며 그의 책은 다른 모든 선지서를 대표하였다.5) 이런 배경에서 마태는 스가랴보다는 예레미야를 택하였을 것이다.
주 1. G.L. Archer, Encyclopedia of Bible Difficulties, p.345 2. The Expositor s Bible Commentary. Vol.8. p.563 3. R.T. France, Matthew, p.387 4. W. Hendriksen, Matthew, p.948 5. The Bible Knowledge Commentary, ed., John F. Walvoord and Roy B. Zuck. p.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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