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진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마 26:52)
본문 말씀은 범죄에 저항하는 모든 수단이나 범죄자에 대한 처벌을 반대하는 뜻으로 해석하는 이들이 있다. 특별히 고린도후서 10:4-5에서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라는 바울의 말씀을 들어 여하한 전쟁도 불가하며 정부에 의한 사형제도도 거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전세계적인 추세인데 특별히 미국의 경우 1930-1949년 사이 매해 148명의 사형 집행이 있었으나 1967년부터는 거의 사형 집행이 중지되었다. 1968년에 7,000명이 그리고 1969년에는 8,500명이 살인을 하고도 처형되지 않았는데 만일 법대로 집행이 되었더라면 1968년에 5,000명이 또 1969년에는 7,000여명이 처형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향은 클락(Gorden H. Clark)이 지적한 대로 비성경적인 인간에 대한 견해, 범죄범에 대한 세속적 원리 그리고 생명가치의 경시나 낮은 평가에서 기인된다고 할 것이다.1) 그러면 사형제도에 대한 성경 전체의 가르침은 무엇인가? 본문에서 검을 가지지 말라는 말씀은 마치도 칼을 사용하는 것이 모두 잘못인 양 절대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는 다만 우리가 칼로 치리이까(눅 22:49)라고 예수님께 묻고 그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은 채 칼을 휘두른 행동이 잘못이라는 것을 가르치신 것이다.2) 성경은 모세오경에서 형벌에 대한 세 가지 주요한 형태를 기록하고 있는데 생명과 종교와 가정을 대적한 공적인 죄의 사형과 사적인 중한 죄에 대한 백성으로부터 끊어짐, 그리고 재산상 상해를 끼친 데 대한 배상이 그것이다.3) 모세의 법에서 사형에 해당되는 죄목은 18가지였다. 살인(출 21:12-14), 임신한 여인을 죽게 하거나 그 태아를 죽게 함(출 21:22-25), 사람을 받는 소를 단속하지 않아 그 소가 사람을 받아 죽였을 경우(출 21:28-30), 유괴(출 21:16), 간음(민 22:25-29, 22:13-21; 레 20:10, 세 경우가 다 다름), 근친상간(레 20:11-12, 14), 동성연애(레 20:13), 수간(레20:15-16), 부모를 침(출 21:15), 부모를 저주함(출 21:17), 부모를 배반함(신 13:1-16), 법으로 방면된 자에게 원수 갚음(신 17:12), 거짓 증거 그 밖에 안식일을 더럽히는 것과(민 15:32), 거짓 예언(신 13:11) 등이다.4) 그런데 성경에서 제일 중요한 사형 형벌에 대한 언급은 창세기 9:6인데 피를 흘린 자는 그의 피도 흘려야 한다는 말씀이다. 거기서 그 이유를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으로 사람을 지으셨기 때문이라 하였다. 살인죄는 하나님에 대한 범죄이다(Ryrie). 살인 행위는 하나님의 것에 대한 더러운 손을 덮치는 것이다(H.C. Leupold). 여기서 살인자는 죽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다. 그리고 점진적 계시는 창세기 9:6의 최초의 명령을 바꾸지 않았다(William Baker). 창세기 9장은 노아 때처럼 오늘날도 참되다(John Marray). 그러나 신약에서는 어떤가? 요한복음 7:53-8:11에 간음 중 현장에서 잡힌 여자는 돌에 맞아 죽어야 했으나 예수님께서 나도 정죄하지 않노니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시지 않았는가? 그리고 더구나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셨는데 세상에 죄 없는 자가 어디 있는가? 그러니 예수님은 사형제도를 폐하신 것이나 다름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본문은 본문상에 문제가 있고, 죄 없다는 말은 헬라의 세속적인 용어로는 결점, 잘못이 없다는 뜻이다. 만일 죄 없는 자가 증인이 되고 재판관이 되어야 한다면 재판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 그러나 신약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롬 13:1-7). 또 예수님은 마태복음 5:17에서 모세의 율법은 폐하여지지 않고 다 이룬다고 하셨다. 결국 이 구절을 가지고 예수님이 일반적인 죄나 특별한 간음죄에 대한 사형 형벌을 폐지하려고 의도하셨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로마서 13:1-7에서 바울은 관리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않았다고 하였다. 여기 칼에 대해 고데(F .Godet)란 학자는 황제가 그의 직책상 권위의 상징으로 차고 다닌 무기가 아니라, 사형을 집행하는 권위를 가리킨다고 하였다. 그것이 상징적인 것이 아님은 6절에 세금이 상징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다. 바울이 로마서를 쓸 때 그는 로마 정부가 사형의 형벌을 가하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여기서 칼은 사형 선고에 대한 상징으로서가 아니라 사형의 도구로 쓰였다(William Baker). 또 하나의 사형제도를 인정하는 구절이 있다. 사도행전 25:11인데 심문대 앞에 선 바울이 베스도에게 내가 죽을 죄를 지었다면 죽기를 사양치 않겠다고 하였다. 거기서 바울은 어떤 죄는 사형에 해당되는 것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5) 성경은 칼을 쓰라고 장려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무죄한 약자의 생명을 지켜 보호하기 위해 정당방위의 칼, 범죄자에 대한 사형의 칼 그리고 침략 전에 대비한 전쟁 참가의 칼은 허용하고 있다. 여기서는 사형에 대한 가르침이 아니라 악을 악으로 대적하지 말라는 것이다.
주 1. Baker's Dictionary of Christian Ethick,ed., Carl. F. Henry, p.84 2. W. Hendriksen, Matthew, p.925 3. Gardon Wenhem, Law and the Legal System in the Old Testament, p.42 4. John J. Davis, Evangelical Ethics(Baker, 1985), p.198 5. Ibid., pp.197-2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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