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함을 받은 자와 택함을 받은 자
revdavidsuh  2008-08-07 15:18:21 hit: 3,629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마 22:14)

  본문 말씀은 결혼 잔치에 대한 비유의 말씀으로 마태복음에만 나온다. 이 구절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분명 이 구절은 복음과 구원에 대한 말씀이다. 그러나 청함을 받은 자와 택함을 받은 자는 누구인가?  예복을 입지 않고 혼인 잔치에 들어 온 사람들은 내어 쫓기고 말았는데 여기서 예복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여기서 부름 받은 자는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사람을 가리킬 것이다. 또 택함을 받은 자는 초청을 받은 자이다. 왕은 잔치에 많은 손님을 초대했으나 실제로 잔치에 오도록 초대된 사람은 소수뿐이었다. 여기서 잔치는 복음과 그 복음이 신자들에게 주는 축복에 대한 비유이다. 복음을 믿고 그 축복을 누리라는 초대는 복음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미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부름을 받아도 모두가 그 소명에 응하지는 않는다.  이 경우에 소명에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은 그들이 선택된 증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예복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예복에 대한 해석은 개신교 학자들과 로마 가톨릭 학자 사이에 차이가 있다. 개신교 학자들은 성경대로 믿음으로 신자가 입을 수 있는 그리스도의 의라고 한다. 그러나 가톨릭 학자들은 사랑(Charity)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이유로서 우리에게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기 때문이라 한다.1)  그러나 이런 해석은 전혀 성경 전체의 가르침과 맞지 않으며 행위 구원을 주장하는 저들의 입장에 맞추어 보려는 억지 해석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제 본문이 가르치려는 중요한 요점에 대해 생각해 보자. 본문에서 구원에 대한 가르침이라면 택함 받은 자가 적다 하였으니 실제로 구원받는 사람의 수는 적을 것이다. 그러면 얼마나 적을 것인가?  구원받은 자의 수에 관심을 가지고 계산하려는 것은 부질없는 일일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인구의 1/10정도로 생각하기도 하나 근거가 없다.  요한계시록에서는 구원받은 자의 수는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다(계 7:9)고 하였으니 그렇게 적은 수는 아닐 것이다. 바울은 그 수가 많을 것이라 하였다(롬 5:15, 19). 물론 여기서 많다는 것은 구원받지 못할 사람이 소수라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구원받지 못한 사람보다 구원받은 자는 적을 것이다.
  칼빈은 이 말씀을 주석하기를 만일 아담의 타락이 많은 사람의 파멸을 낳는 효과가 있었다면 하나님의 은혜는 많은 사람을 구원하는데 보다더 효과적이다. 왜냐하면 분명히 그리스도는 아담이 멸망케 한 것보다 구원하시는데 훨씬 더 많은 능력이 있으시기 때문이라고 하였다.2)
  그러면 본문에서 구원의 결정적인 요인이 무엇이라고 하는가?  어떤 학자들은 구원은 순전히 예복에 있다고 한다. 결혼식의 최종 결정적인 자격은 초청장도 아니요 영접도 아니라 결혼 예복이다.3)  그러나 이 해석은 구원을 인간 편에서만 보려는 편협한 해석이라고 보여진다. 이 해석에서 강조되는 구원의 요건은 개인의 신앙이다. 그러나 구원은 내 신앙 이전에 그 신앙을 가능케 하신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다. 그래서 핸드릭슨은 이 구절을 해석하기를 여기서 소수는 영원부터 영생이 상속되도록 택함 받은 자라 하였다. 그러므로 구원은 그 최종 분석에서 인간의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의 선물이다(눅 12:32; 요 6:39, 44; 엡 1:4).
  여기서 예복을 강조할 때 개인적인 구원의 가능성이 자신의 선이나 도덕적인 적합성으로 보기 쉬우나 이는 성경의 가르침과 맞지 않는다(욥 9:2; 사 64:6; 롬 3:9-18, 23, 24; 엡 2:8; 계 7:14). 또 예복을 그리스도의 의라고 하더라도 믿음으로 인한 전가된 의로만 생각하는 것도 옳지 않다. 하나님은 그가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시는 죄인들에게 의를 전가하실 뿐만 아니라 나누어 주시기도 하신다. 이 둘이 구별되어야 하나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4)
  그러면 왜 다같이 부름을 받는데 어떤 사람은 반응을 하고 어떤 사람은 반응을 하지 않는가?  부름(소명)에는 두 가지가 있다. 일반적으로 부름(Common call)과 효과적인 부르심(effectual call)이다. 후자의 유효적인 소명을 받는 사람만 반응한다. 유효적인 소명이 무엇인가?  이는 성령의 역사로서 우리에게 우리의 죄와 비참을 확신시키시며 그리스도의 지식으로 우리의 마음을 조명하시고 우리의 의지를 새롭게 하시므로 우리로 하여금 복음에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설복하시며 능력주시는 것을 말한다. 이런 효과 있는 부르심은 하나님이 택하신 성도에게만 해당한다.  
  따라서 구원받은 자의 선택도 두 편에서 볼 수 있다. 하나님 편에서 성경은 영생의 영원한 선택이 하나님의 선하신 기쁘심에서 온 것을 가르친다.  또 인간 편에서는 우리가 복음의 초대를 받고 복음의 명령들을 순종하는 자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의 축복을 얻는다고 가르친다. 그러니 이 둘 중에 어느 하나를 부인해서는 안될 것이다.5) 이 경우에 후자를 완전히 무시해 버리면 인간 편에서 구원받지 못하는 책임을 회피하게 되고 말 것이다. 사람의 행동은 그가 선택받았는지에 유무를 표시할 것이다(Stendahl).6)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회개와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참 믿음은 하나님께서 가능하게 하신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씀하였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이다.

   주
   1. R.V.G. Tasker, Matthew. p.208
   2. John Calvin, Romans and Thessalonians, pp.114-115
   3. Ralph Earle, Matthew(B.B.C. Vol. 6), p.199
   4. William Hendriksen, Matthew. pp.798-799
   5. John A. Braodus, Matthew, p.450
   6. Robert H. Mounce, Matthew(Hendriksen, 1985), p.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