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 왔느냐" (마 22:12)
혼인잔치에 대한 이 비유는 누가복음 14:16-24에 나오는 큰 잔치의 비유와 병행구절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세부적인 내용에서는 차이가 있으나 전체적인 개요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주인이 많은 손님을 초대했으나 초대받은 손님들은 하나같이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잔치에 불참했다. 음식이 마련되었고 그 밖의 모든 것이 다 준비되었다. 주인은 할 수 없이 종들을 시켜 거리를 다니면서 아무나 데려다가 자리를 채우게 하였다. 이 비유는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선포다. 종교적인 지도자들은 정규적으로 회당에 출석했으나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나 그가 가져오신 복음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 대신 평민들이 복음을 기쁘게 영접하고 들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결혼예복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결혼예복은 누가 준비해야 하는가에 있다. 예복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일반적으로 개신교에서는 신앙의 의로, 가톨릭교에서는 사랑(행위)으로 본다. 그러면 이 예복을 손님 자신이 자신을 위해 예비한 것인가? 혹은 왕(주인)이 손님을 위해 예비한 것인가? 본문에 의하면 잔치에 참석한 사람 중에는 예복을 입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만일 그 예복을 손님 자신들이 예비한 것이라면 거기 참석한 사람은 아무도 예복을 입지 못했어야 옳았다. 왜냐하면 거기 참석한 사람은 아무도 왕의 초청을 받고 그 잔치에 참석하기 위해 준비하고 자발적으로 온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 주인이 예복을 입지 않은 손님에게 왜 예복을 입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던 것을 보면 여기서 예복은 참석한 손님이 준비한 것이 아니라 초대한 주인(왕)이 예비한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길거리에서 초대받은 손님은 혹시 집에 예복이 있었다고 해도 그 누구도 집에 돌아가 예복을 입고 그 잔치에 올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에 보면 동방에서나 심지어는 헬라의 경우에도 잔치에 예복은 초대한 주인이 초대 받은 손님의 수에 충분하게 준비하는 것이 관례였다(창 45:22; 삿 14:12,19; 왕하 5:22). 이것이 사실이라면 본문에서 예복은 자신이 준비한 선행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공로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영접하신 것도 우리가 지닌 행위나 도덕이 훌륭해서가 아니다. 행위로는 누구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 선을 행하였을지라도 무익한 종일뿐이다(눅 17:10). 따라서 예복은 믿음에 의해 우리의 것이 된 전가된 의이다. 만일 믿음이 예복(Luther)이라면 그것은 의의 값의 선물을 수용하는 잔(cup)과도 같은 신앙이다. 요한계시록 19:8에 신부가 입은 흰옷도 신랑되신 예수님이 예비한 성도의 의이다.1) 어떤 학자들은 여기 예복을 공적 신앙고백으로 보기도 한다. 부르스(Bruce)는 옷은 성경에서 개인적 성격의 상징으로 쓰였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 자신들을 천국의 자녀 중 하나나 예수님의 제자로 간주하는 자로서 그런 고백과는 어울리지 않는 특성을 지닌 자들이다. 그렇다면 결혼예복의 비유는 거짓으로 제자인 척하는 사람에 대한 경고가 될 것이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 갈 것이 아니라 하늘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라야 들어간다(마 7:21).2) 하나님의 구원에 들어가는 것은 만인을 위한 무상이다. 그렇다고 표준이 없거나 가볍게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새로 구원에 들어 온 사람은 그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경고가(21:41, 43) 여기서 보강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예복은 특별하게 회개나 칭의 혹은 어느 특별한 행위를 설명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에게 적절한 삶이라고 보기도 한다.3) 위의 해석들은 서로가 서로를 보충한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교훈이요 구원에 대한 교훈이라면 예복(의)은 하나님이 준비하신 것이며 우리는 믿음으로 그 예복을 입음으로서 구원의 자녀, 하나님의 자녀, 하늘나라의 백성이 된다고 하겠다. 구원이 선물이라면 믿음은 그 선물을 받는 손이라 할 수 있다(요 3:16).
주 1. R.C.H. Lenski, The Interpretation of St. Matthew’s Gospel. pp.856-857 2. F.F. Bruce, The Hard Sayings of Christ. p.207 3. R.T. France, Matthew, p.313, Fendon은 결혼예복을 복음의 설교에 뒤따라오는 선한 행위의 새로운 삶이라고 보았다. 요한계시록 19:8에서 어린 양이 신부가 입는 흰옷은 성도들의 의로운 행위로 말씀하였다. 그러므로 마지막 심판 때 변화된 삶이 없는 신자들은 버림받게 될 것이라는 경고 로 해석하기도 한다(Robert H. Mounce, Matthe. p.206). 그러나 이 경우 우리가 의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것은 우리의 성품을 변케 하시는 하나님의 의롭게 하시는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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