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려주일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 예수님이 타신 나귀의 수
revdavidsuh  2008-08-07 15:25:16 hit: 1,526


        마태복음 21:2;  마가복음 11:2;  누가복음 19:30

  여리고에서 예루살렘까지 로마의 군용 도로가 나 있었는데 대략 70마일 길이에 3000피트의 오르막길이었다. 그 길은 베다니와 감람산의 남동 경사지에 위치한 벹바게(무화과의 집)를 통과하였다. 그리고 그 산과 기드론 골짜기를 지나 예루살렘으로 들어갔는데 본문에서 예수님은 그 길을 따라 여행하고 계셨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며칠 전 주일(일요일) 베다니를 떠나시면서 적은 마을 벳바게로 두 제자를 보내 자신이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나귀 새끼를 빌려 오게 하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끌어 온 그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들어 가셨다. 그런데 마태는 나귀와 나귀새끼 즉 두 마리의 나귀를 말씀하는데 비해, 병행구절인 마가복음 11:2과 누가복음 19:30에서는 한 마리 나귀새끼만을 언급한다. 물론 세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전에 사람이 타보지 않은 나귀새끼를 타셨다는 데는 일치하고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어미 나귀이다.
이 문제의 해답으로는 크게 두 가지 설이 있다.

  첫째 설은, 마태가 스가랴 9:9을 오역했다는 것이다.  마태는 마치도 선지자가 나귀와 나귀새끼 위에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설은 설득력이 없다. 마태는 유대인이어서 히브리 대구법을 잘 알았으며 그 접속사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또 12제자 중에 하나였으므로 마가복음에 온전히 의존하지도 않았다. 마태가 여기서 나귀 새끼를 어미 나귀에게서 억지로 떼어놓지 않은 것은 그의 친절한 행위로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두 번째 설은, 마태는 마가의 설명을 바꾸어 한 마리의 나귀를 두 마리로 대치시킴으로 예언과 조화시켰으며 예수님께서 동시에 두 나귀를 타신 것처럼 묘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7절에 "나귀와 나귀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에서 그 위에는 겉옷을 가리키지 나귀와 나귀새끼를 가리키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동시에 두 마리의 나귀를 타셨다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이야기이겠는가?1)
  그밖에 마가의 아무도 타지 않은 이란 구절이 마태로 하여금 두 마리의 동물로 언급하도록 자극을 주었다는 설(Stendahl, Lindars)과 마태는 그 장면의 목격자였다는 주장(Gundry)이 있다.2)
  마지막 설이 본문의 문제를 푸는 데 제일 적합하게 생각된다. 여기 아직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는 비록 젖을 떼었지만 아직도 심리적으로나 감정적으로 그의 어미를 의존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어미 나귀에게 성문을 향하여 거리로 내려가게 한다면, 새끼나귀는 비록 전에 사람을 태워 본 일이 없었을지라도 어미 뒤를 따라 갈 수 있었을 것이다. 마태는 목격자(마가나 누가는 아님)로서 어미가 실제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 앞서가고 있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서간에 모순은 없다. 예수님은 어미 대신에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새끼를 타신 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이 발생했을 때 목격자의 한 사람으로서 마태는 그가 본 장면을 보다 더 자세하게 기록한 것이다.
  본문은 일반적으로 왕들이 오는 방법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왕들은 일반적으로 말을 타고 정복자로서 오기 때문이다. 나귀새끼는 평화의 상징이었다.3)  과연 예수님께서는 보통 왕이 아니라 평화의 왕으로 세상에 오셨다.

   주
   1. W. Hendriksen, Matthew, p.763
   2. D.A. Carson, Matthew(E.B.C. Vol. 8), p.438
   3. The Bible Knowledge Commentary, New Testament(Victor Books, 1983), p.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