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을 위한 고자
revdavidsuh  2008-08-07 15:48:49 hit: 1,476


   "어미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마 19:12)

  본문은 마태복음에서만 나오는데 결혼과 이혼에 대한 예수님의 설명 후에 하신 말씀이다. 제자들은 이혼할 바에야 차라리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예수님은 저들에게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11절)고 하셨다. 이 말씀은 독신 생활을 성공적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은 독신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이 문맥은 다음 12절에 나오는 고자에 대한 언급이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1)
  예수님은 결혼 문제와 연관하여 세 종류의 고자를 소개하셨다. (1) 타고난 고자  (2) 사람이 만든 고자 (3) 천국을 위한 고자이다. 이 중에서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결혼할 수 없는 육체적인 결함을 지니고 태어나는 사람들은 어느 시대에나 있어 왔다.  또 사람이 만든 고자는 고대 근동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천국을 위한 고자는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초대 교회의 탁월한 학자였던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겐(Origen A.D. 185-254)은 이 말씀을 젊은이의 정욕으로 문자적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여 자신을 거세하였다.2) 그러나 후에 그는 그의 마태복음 주석에서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이 말씀을 영적으로 이해했고 육신과 문자에 따른 해석을 배격하였다.
  그러면 예수님이 의미하신 것은 무엇이었는가?
  본문은 죄에 빠뜨리게 한 손은 자르고 눈은 빼란 말씀이 문자적인 의미가 아니었듯이 영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여기서 세 번째 천국을 위한 고자는 결혼을 할 수 있고 원하면 그 상태에서 책임을 다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에게 있어서 결혼하지 않는 것은 순전히 자발적인 것이다. 하나님의 작정이나 사람의 결심으로 된 고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관심에서 된 고자요 독신을 가리킨다.
  여기서 예수님은 결혼 생활을 경멸하고 독신 생활을 장려하신 것은 아니다. 또 독신 생활이 결혼 생활보다 하나님을 섬기는데 꼭 유리하다거나 효과적이라고 말씀하신 것도 아니다. 만일 이런 의미로 본문을 이해하고 적용시켜 억지로 고자가 되려고 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1. 나면서 된 고자는 공로가 되지 못하며 죄가 되지도 않는다.
   2. 그러나 억지로 고자가 된 사람은 불행하게 되며 사실 그것은 죄가 될 것이다.  
   3. 그리고 자원해서 그것이 신앙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나온 것일 때는 도덕적 가치와 장점이 될 것이다.  그러나 독신이 결혼 상태보다 순결면에           서 우월한 것은 아니다.3)

결혼 생활을 경멸하는 사상은 성경적이 아니다.
성경은 결혼이 정상적인 생활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임을 밝히고 있다(창 1:27-28; 2:24; 9:7; 24:67; 시 127:3-4; 128:3, 8; 요 2:1-11; 엡 5:22-23; 딤전 5:14). 또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는 신부와 신랑의 결혼 관계로 묘사되었다(엡 5:32; 계 19:7).
  예수님의 교훈이 있은 지 25년 후에 바울은 결혼과 독신 생활에 대해 교훈하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결혼하지 않고 주님을 섬기는 것이 보다 유익한 것으로 말씀한다(고전 8장). 그러나 우리는 그 말씀을 바울 당시에 시대적인 상황을 이해하고 보아야 한다. 박해와 핍박 속에서 복음을 증거해야 하는 전도자들에게는 가정은 돌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어쩌면 거의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또 천국의 사역이 너무나 긴급해서 정상적인 가정의 인연도 포기하는 것이 당연했을지 모른다. 사실 예수님도 세례 요한도 바울도 결혼하지 않았다.4)
  그러나 우리는 베드로가 전도 여행 때 아내를 데리고 다녔다(고전 9:5)는 사실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두 사람의 은사가 달랐던 것이다.
  로마 가톨릭의 경우는 독신은 보다 더 거룩한 것으로 간주하여 수도사나 수녀만 아니라 신부들의 독신을 주장하며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다. 그러나 독신 자체가 결혼 상태보다 우월하다거나 공로가 된다는 생각은 크게 잘못이다. 예수님의 의도는(사실 바울의 교훈도 마찬가지다) 성적인 욕망도 하늘나라를 위해 완전히 복종시킬 것을 가르치셨다. 영적 목적을 위한 제어를 말씀하신 것이다.5)
  그러나 우리는 어느 한편을 경시하고 다른 편은 중시해서도 안될 것이다. 그것은 각 개인의 형편과 은사에 따라 같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독신 제도가 로마 교회(구교)의 전 유물인 듯이 생각해서 무조건 잘못된 것이라고 보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많은 수는 아니지만 독신의 은사를 받은 성도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은사를 무시한 채 획일적인 제도로 모든 성직자에게 독신을 강요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과 다르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독신과 결혼 생활은 서로 다른 은사라고 할 수 있다. 고자가 되는 은사는 소수의 사람에게만 해당된다. 독신 생활로 소명을 받은 자는 자신에게서 독신의 은사를 발견하게 될 것이고 자신을 천국을 위한 고자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주
   1. F.F. Bruce, Hard Sayings of Jesus, p.63
   2. Ibid,. p.64
   3. Lange, Matthew, p.339
   4. F.V. Filson, A Commentary on the Gospel According to St. Matthew(Hendriksen, 1990), p.207
   5. R.C.H. Lenski, Matthew. p.7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