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마 13:12) 하나님은 만인을 차별하지 아니하신다. 더구나 하나님은 고아나 과부같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관심과 사랑을 쏟으신다. 따라서 다윗은 시편 68:5에서 그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하였다. 또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도 않으신다(롬 2:11). 따라서 예수님의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고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는 말씀은 이해가 안 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신가? 본문 말씀은 마태복음 25:29에서 다시 반복되고 있으며 마가복음 4:25에도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전후 문맥으로 보아 이 말씀은 하나의 비유에 속한다. 일반적인 해석이나 설명 방식을 따라 문자적으로 적용하려고 한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1. 이 말씀은 자본주의 경제원리가 영적 조명의 비유로 쓰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자본이 수입을 증가시키는 반면에 자본의 부족은 파산한다). 따라서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들은 이미 그것들을 받아들이는 영적 능력을 가진 자에게만 이해될 수 있다는 말이다. 또 빼앗긴다는 말은 여기서 하늘나라의 것이 아닌 종교의 궁극적인 무익함을 가리킨다.1) 알부라이트(W.F. Albright)는 여기서 본문은 믿음을 위한 능력이 아니라 영적인 상속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제자들은 유대인 청중들과 같이 예수님에 의해 상술된 그들의 상속으로부터 배우기에 충분히 겸손하였다. 그들에게는 더욱더 천국의 상속이 더해지게 될 것이다. 그 선언에 반대함으로서 그들의 상속을 비운 자들에게는 옛 계약에 대한 그들의 신뢰는 무가치하게 될 것이다.2) 2. 그러나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예수님이 선포하신 천국에 대한 불신은 그들이 보나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13절) 자가 되도록 그들의 혼란의 원인이 된다. 반대로 예수님의 말씀을 영접한 자들에게는 전보다 더 크게 이해하게 된다는 뜻일 것이다.3)
실제로 말씀을 믿고 사모할 뿐 아니라 실천하려는 자는 말씀을 더 잘 이해하며 더 많은 영적 진리를 얻게 된다. 그러나 말씀은 믿지도 않고 사모도 하지 않는 사람은 이미 소유했던 말씀까지 상실하게 되고 만다.
주 1. D.T. France, Matthew(Leicdster, IVP. 1985), p.223 2. W.F. Albright and C.S. Mann, Matthew(Doubleday: New York, 1971), p.167 3. Norman Geisler and Thomas Howe, When Critics Ask(Victor Books, 1992), p.3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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