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의 표적
revdavidsuh  2008-08-08 14:46:14 hit: 1,372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           (마 12:38-40)

  본문은 예수님이 하신 예언의 말씀 중 일부이다. 이 예언은 그의 지상 사역 기간에나 부활 때 이루어질 사건으로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그의 하늘로서 오신 표적을 구한 데 대한 응답으로 하신 것이다. 여기 하늘로서 오신 표적은 하나님의 역사를 가리키는 것으로 스승에 대한 확증을 위해서 어떤 랍비들에게 요구되었다.  스승으로서 예수님에게도 그런 요구가 기대될 수 있었다. 만질 수 있는 증거를 위한 이 의심스러운 조사는 예수님에 의해 거부되었다. 왜냐하면 표적의 요구는 신앙의 끝장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1)
  따라서 예수님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것이 없다고 하셨다. 여기서 악하다는 말은 도덕적으로 부패한 것을 가리키며 음란하다는 말은 영적으로 그 백성들이 그들의 정당한 남편이신 여호와 하나님께 성실하지 못한 것을 가리킨다(사 50:1; 렘 3:8; 31:32; 겔 16:32; 호 2:13).2)
  여기서 예수님은 요나의 사건을 하나의 역사적인 사건으로 인정하셨을 뿐만 아니라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3일을 있었듯이 자신도 땅속에 밤낮 3일을 있겠다고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3일을 무덤(땅) 속에 계시다가 부활하실 것을 가리켰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고 하신 데 있다. 예수님이 죽은 지 3일 만에 살아나신 사실은 누구나 인정한다. 그러나 밤낮 3일이라면 무덤에 계신 시간이 적어도 72시간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그래서 그 시간에 맞추기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이신 때를 수요일로 보는가 하면 목요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날은 금요일이었기 때문이다(막 15:42; 눅 23:46; 요 19:14).
  이 문제에 대하여 세 가지 해석이 제시되어 왔다.

1. 제3일에 혹은 3일 만에의 해석이다. 이런 해석은 사무엘상 30:12-13에서 그 실례를 볼 수 있다.
   거기 12절에는 밤낮 사흘이라고 했고, 그것을 13절에는 사흘 전에로 말씀하였다. 그렇다면 밤낮 3일이 제3일에라고 한다면 본문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유대적인 산출법에 따르면 금요일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주일 즉 제3일에 살아나셨다. 금요일 오후가 하루, 금요일 오후 6시에서 토요일 오후 6시는 이틀, 토요일 오후 6시에서 주일 오후 6시는 제3일이 된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그 날의 한 부분은 온 하루와 동등하게 계산하였고 밤의 한 부분은 온 밤으로 계산한 데 근거한 산출법이다.3)  밤낮 사흘은 단지 두 밤에 해당하는 시간에 적합한 유대인의 술어였다.4)
2. 문자적 해석을 반대하는 것으로 마태는 셋째 날의 부활(마 16:21; 17:23; 20:19)이나 혹은 금요일 십자가에 달리시고 주일에 부활(마 27:62; 28:1)하신 시간표 사이에 어떤 마찰도 알지 못하였다. 그에게는 밤낮 3일은 3일 후에나 제3일에와 서로 바꾸어 쓸 수 있었다.
3. 마태복음 12:40에서 예수님의 유추의 주 요점은 시간의 지시가 아니라 부활의 표적이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는 오직 한 가지 기적과 표적만 주어지는데 그것은 부활이다. 그러므로 시간적인 지시는 덜 중요한 것이었다. 예수님이 밤낮 3일을 가리킨 것은 그 표현이 구약성경에서 그가 인용하기를 원했던 구절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욘 1:17).

  위의 세 가지 해석이 다 일리가 있겠으나 부활의 중요성에서 시간상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았다는 해석보다는 시간상의 표현까지도 그 당시 표현법으로는 모순이 없다는 해석을 취하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그러면 이 본문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우는가?  예수님은 기적을 행하는 분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구주로 오셨다. 믿기 위해 표적을 구하는 것은 잘못된 신앙 방법이다. 성경은 로마서 10:1에서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하였다.
  
   주
   1. R.T. France, Matthew, p.212
   2. W. Hendriksen, The Gospel of Matthew, p.533
   3. D.A. Carson, Matthew(E.B.C. Vol. 8), p.296
   4. R.T. France, Op,cit., p.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