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마 12:36)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람과 다른 피조물과 구별되는 중요한 특성 중에 하나이다.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문자가 발명이 되고 인간다운 삶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특권이나 축복은 그만큼 의무와 책임이 크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한 말에 따라 심판하신다. 따라서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선생된 자들에게 더 큰 심판이 있으리라는 경고는 너무나 당연하다(약 3:1-2). 그러면 여기서 심판받게 될 무익한 말이란 무엇을 가리켰는가? 여기 무익하다는 헬라 어 아라고스(argos)란 말은 이유가 없는 사실 무근한 말로 번역되기도 했으나(JB) 무의미한(Stendahl, Peake)이란 뜻이 더 적합할 것이다.1) 또 이 말은 게으르다, 무익하다는 뜻으로 아른트(Arndti)와 깅그리히(Gingrich)는 그것의 무가치성 때문에 부주의한 말이며 발설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은 것을 가리킨다고 하였다.2) 케이드(G.B. Caird)는 무익한 말을 하는 자는 생각없이 하는 농담하는 자가 아니라 그들이 한 말에 대해서 신속하게 행동해야 함에도 빈들거리고 노는 자로 약속을 어기고 서원을 지키지 않는 자를 의미한다고 했다. 따라서 선생님 내가 가겠습니다고 했으나 결코 가지 않는 자와 같은 사람이라 하였다.3) 그러므로 여기서 무익한 말은 생각없이 하는 말이요, 마음에도 없는 말이요, 그 말에 대한 책임이나 의무조차도 필요 없는 말일 것이다. 또 설사 그런 의무나 책임이 있더라도 전혀 책임과 의무를 실천할 의사가 없이 한 말을 가리킬 것이다. 알브라이트(Albright)는 이 말은 무익할 뿐 아니라 해로운 것이라고 보고 성급한 판단이나 한 순간의 충동으로 말하는 것으로서 그 주제가 선과 악처럼 심각한 것일 때에는 용납될 수 없는 것이라 하였다.4) 예를 들면 안식일 날 병을 고치는 것이 옳은가로 예수님께 도전했던 바리새 인들의 경우와 같은 것이다. 그들 중에 누구라도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진 양을 건져냄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고통에는 관심이 없었다. 바리새 인들은 그들이 인간의 고통은 간과하면서도 무엇이 옳은가에 그들의 초점을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는 것과 같다.5) 여기서의 욧점은 악한 말의 위험이 아니라 무익하고 가치가 없는 말까지도 심판받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사실 말은 마음속을 반영한 것이다. 따라서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무익한 말을 하는 자는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다.6) 주 1. D.A. Carson, Matthew, p.293 2. Ralph Earle, Matthew, p.126 3. R.T. France, Matthew, p.212 4. W.F. Albright and C.S. Mann, Matthew, p.157 5. Larry Richards, Bible Difficulties Solved, p.242 6. Donald A. Hagner, Opcit., p.3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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