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멍에는 쉬운가 그렇지 않으면 힘든가?
revdavidsuh  2008-08-08 15:05:09 hit: 1,435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마 11:28-30)

  예수님은 내 멍에는 쉽고 가볍다고 하셨다. 그러나 히브리서 12:6에서는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신다고 하였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예수님의 멍에는 쉽고 가벼울 수 있겠는가?
  여기서 멍에는 구약성경에서 가끔 압제의 상징이었다(사 9:4; 58:6; 렘 27:27-28장). 그러나 역시 하나님을 섬기는 선한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후에 멍에에 대한 이 후자의 의미는 율법에 순종을 위해서 유대 문서들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게 되었다. 율법의 멍에는 모든 유대인이 지고 가는 것이 자랑스러워야 했다. 실제로 멍에의 기능은 짐을 운반하기 쉽게 한다. 율법은 그 자체가 짐이 되나 새 멍에는 무거운 짐을 가볍게 하는 것이 요청되었다. 따라서 예수님의 멍에는 쉽다. 그 요구가 가벼워서가 아니라 그것이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분과 제자 관계로 들어오는 것을 설명하기 때문이다(참고, 고후 10:1).1)  따라서 여기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멍에가 예수님의 멍에이지 율법의 멍에가 아니다.  제자직은 예수님께 대한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으로부터 배우면 영혼이 쉼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렘 6:16).2)  누구든지 예수님께 오면 죄사함 받고 그 영혼이 쉼을 얻는다. 그러나 육신에는 고난이 있다. 하나님의 손 안에서 징계를 받기도 하기 때문이다. 구원은 하나님과의 평안을 가져온다(롬 5:1). 그러나 역시 세상과는 분쟁을 가져온다(요일 2:15-17; 갈 5:17). 예를 들어 사도 바울 자신은 그의 생애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으나 역시 그의 육체에 가시가 있었다(고후 12:7-9).3)  그러나 그럼에도 천국의 도래와 새 언약의 개시 때문에 예수님께 자신이 인류를 위한 구속적 섬김의 짐을 지고 가시기 위해 신뢰하셨던 그의 성령께서 그 짐을 지고 가도록 동일한 힘을 예비해 주시기 때문이다.4)


   주
   1. R.T. France, Matthew(Leicester, IVP, 1985), p.201
   2. D.A. Carson, Matthew, p.278
   3. Norman Geisler and Thomas Howe, When Critics Ask(Victor Books, 1992), p.342  
   4. Hofemann, the God of promise and the Life of faith, 203, Michael J. Wiking, NAC, Matthew,
      p.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