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함을 얻느니라" (마 11:19)
본문은 예수님께서 그 시대의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 어떤 인물로 이해되셨는지를 보여 주는 구절 중에 하나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거룩과 경건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그것은 외형적이요 형식적이며 의식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경건의 내용보다 경건의 모양에 더 관심이 컸다. 그런 관점에서 그들은 세례 요한을 보고 주시하였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세례 요한은 거룩한 사람 같았다. 그는 약대 털옷을 입고, 가죽 허리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으며 사막에서 살았다. 그는 세속적인 인간 사회와 완전히 구별되어 있었다. 그는 나실 인답게 금욕적인 삶을 살았다. 그러면 그들은 세례 요한을 환영했는가? 잠시는 그를 좋아하는 듯 했으나 곧 그를 떠났으며 심지어 그에게 귀신이 들렸다고 악평하기까지 하였다. 그의 회개하라는 외침은 거부되고 말았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셨다. 그는 세례 요한과 정반대의 삶을 사셨다. 그는 갈릴리의 농부들이나 어부들이 입는 옷에 그들의 음식을 잡수셨고, 포도주를 마셨다. 잔치집에 가셔서 축복하셨는가 하면 당시 유대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세리들과 함께 식사하셨다. 어린아이들을 반기셨으며 죄인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나누셨다. 이것은 유대종교 지도자들의 기대 밖의 생활 양식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그를 반대하였다. 마침내 예수님을 평하기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세속적인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 하였다. 하나님께서 세례 요한을 그들에게 보내셨을 때 그가 피리를 불며 그들과 함께 춤추기를 기대하였다. 그러나 세례 요한이 그런 놀이에 관심이 없고 그들과 함께 하지 않자 저들은 그를 배척하였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그들에게 보내셨을 때 그들은 예수님의 때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정반대로 장례식과 금식과 준엄한 안식일 준수를 고집하였고, 마침내 예수님도 배척하고 말았다.1) 그들은 그들이 요한에게 요구한 것으로 예수님을 정죄하였고, 그들이 요한을 정죄한 것을 예수님에게 요구하였다. 이런 잘못은 저들로 세례 요한은 너무 엄격하고 예수님은 지나치게 사회적이라고 생각하게 하였다.2) 이것은 그들이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사명의 차이점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세례 요한은 좋은 소식에 대해서 증거하였으나 예수님은 좋은 소식 바로 그 자체로서 세상에 내려오셨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마 9:13). 예수님은 병든 자에게라야 의사가 필요한 것을 너무도 잘 아셨다. 이런 맥락에서 예수님은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함을 얻느니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지혜는 그 산물로 정당화된다는 뜻이다.3) 구약에서 지혜는 인격화되었다. 거기서 지혜는 하나님이시었다. 그러므로 여기서 지혜는 인자(예수님)을 가리키며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함을 얻는다는 말씀에서 그 행한 일은 그리스도의 행하신 일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성육하신 지혜이셨다.4) 결국 예수님은 자신이 하신 일로 판단을 받으셔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이 점에서 유대 인들도 사실 예수님이 행하신 일에 잘못이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병행구절인 누가복음 7:35에서는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함을 얻는다 하였다. 누가는 지혜의 자녀로서 요한과 예수님의 생활양식, 그들의 인격에 초점을 맞추었고 마태는 그들의 행실에 초점을 맞추었다. 누가의 경우는 예수님과 세례 요한의 인격으로 판단해야 옳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우리는 이 구절에서 무엇을 배우게 되는가? 참으로 경건한 그리스도인이 불신자와 달라야 하는 특성, 구별됨은 어떤 외적인 형식이나 모양에 있는 것이 아니다. 신자가 불신자와 달라야 하는 것은 세상 사람처럼 무엇을 먹고 마시고 어느 장소에 가고 안 가는 외형적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부정적인 증거, 먹지 않고 마시지 않고 가지 않는 그런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5) 경건이나 구별됨은 수도원이나 사막에서 나 개인을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사회 속에서 사람들 속에서 그들과 함께 저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골방에나 교회에서 기도와 말씀으로 얻어진 경건은 사회의 불경과 세속 속에서 내 생활로 말미암아 드러나야 한다. 주 1. R.C.H, Lenski, The Interpretation of St. Matthew's Gospel. p.442 2. W. Hendriksen, The Gospel of Matthew. p.493 3. Beacon Bible Commentary, Vol. 6. p.116 4. The Expositor's Bible Commentary, Vol. 8. p.271 5. W. Neil and S. Travis, More Difficult Sayings of Jesus. p.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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