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는 여호사밧을 낳고 여호사밧은 요람을 낳고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 (마 1:18)
본문에서 마태는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 하였다. 그러나 역대상 3:11에 보면 요람은 아하시야의 아버지라고 하였다. 그러면 어느 기록이 옳은가? 이 족보에서 마태는 세 왕들을 생략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의 14대수의 세 모형으로 묵기 위함인 것 같다. 그 세 왕들의 이름은 아하시야, 요아스 그리고 아마시아이다. 그러나 마태는 여기서 칠십인 역(LXX)의 역대상 3:11을 따랐다고 보는 것이 옳은 것 같다. 거기서 요람은 웃시야의 아버지였다. 마태는 계속하여 웃시야는 요람의 아버지였다고 하였다. 그런데 칠십인 역에서는 요아스, 아자리아, 요담이 모두 그의 아들이었다. 따라서 마태는 아하시아를 생략한 대신에 요아스와 아마시아 그리고 아자리아(웃시아)를 생략한 셈이 된다.1) 그러면 왜 이런 문제가 생겼는가? 마태의 의도는 완전한 족보를 제시하는데 있지 않았고 그리스도의 조상의 요약된 족보를 제공하려고 하였을 것이다. 또 아들이란 말은 흔히 직접 아들에게만 아니라 후손이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손자를 아들로도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낳았다(begot)는 말은 아버지 대신에 조부와 관련짓고 있다. 이렇게 성경에서 아버지란 말은 아주 넓게 쓰였다.2)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는 이렇게 구분할 수 있다. 아하시야는 요람의 아들이었고, 웃시야는 후손이란 뜻의 아들이었다. 유대인들에게 정확한 족보는 매우 중요했다. 그러나 제사장 가족의 족보만이 주후 70년 전에 공적으로 성전에 보관되어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정확한 족보는 몇 대에 한하였다. 세금징수를 위한 호적의 실태조사로도 7대이상을 넘어가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는 마태의 예수님 족보가 누가와 차이가 있으며, 14대의 세모형으로 묶으면서 빠진 이름이 있는 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안 된다. 더구나 마태는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한계가 명확한 시기들을 연합시키고 그 시기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지적하게 하려고 했다.3) 그러므로 이런 목적에 부합되지 않는 인물은 예수님의 족보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었다.
주 1.W. E. Albright and C.S. Mann, Matthew(Doubleday: New York, 1971), p.4 2.William Hendriksen, Matthew(Banner: Edinburgh, 1973),p.124 3. Craig S. Keener, Opcit., pp.76-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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