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
revdavidsuh  2008-08-26 16:17:20 hit: 4,101

            정경과 성경의 권위    

정경과 성경의 권위는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것은 성경의 정경은 그 성경의 권위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경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그 책이 정경에 속했거나 성경의 목록에 속했다는 뜻이며 그 책이 바로 성경이란 말과 다르지 않다.
그러면 정경이란 무엇인가부터 살펴보고 정경의 결정 요인 그리고 신구약의 정경에 관하여 알아보기로 한다.

1. 정경이란 무엇인가?
    영어의 캐논(Canon)이라는 정경이란 말은 헬라어 카논에서 왔는데 적어도 아래 세 가지 의미로 쓰이고 있다.
  1) 갈대 혹은 막대기로 후에 자막대란 뜻이 되었다.
  2) 교회회의의 권위있는 결정을 의미했다.
  3) 성경에 적용되어서는 표준에 맞으며 만족할 만하며 하나님의 영감된 공인서로 A.D. 350년 후에 곧 성경과 연관되어 처음으로 사용되었다.1)  
      개신교의 정경에는 구약 39권과 신약 27권이 포함되나 로마 캐토릭에는 몇 권의 외경이 추가되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개신교의 구약 39권만을
      권위서로 인정하고 있다.2)

2. 정경의 결정 요인
    예수님께서는 책을 남기지 않으셨으므로 교회는 최고의 권위서의 여부를 그 책들이 사도들에게서 온 것인가에 따라서 판단하였다.

  1) 사도적 권위
예수님의 제자 중에 사도바울만큼 활동적으로 글을 쓴 이는 없었다.  바울의 사도직에 대해서는 의심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이방인 교회에서는 그의 사도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신약의 책들 중에는 바울의 서신들처럼 저자의 이름을 쓴 것은 쉽게 정경으로 수납될 수 있었으나 전혀 저자의 이름이 없는 책들도 있어서 문제가 되었다.  마태와 요한의 사도적 저작권은 전통에서 잘 확립되어 있었다.  그러나 마가와 누가는 어떤가? 누가복음의 경우 그 저자는 일찍이 바울이 사랑하는 의사 누가로 부른 인물이었다(골 4:14). 그것은 그가 바울의 조력자의 한 사람이었으며 바울의 사도적 권위의 어떤 것이 그에게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이런 경향은 초대교회가 얼마나 정경의 결정 요인에 사도의 권위를 중요하게 생각했는지의 예가 될 것이다.
그리고 초기에서까지도 만일 사도적 권위의 어떤 형태가 확립될 수만 있었다면 직접적인 의미에서 사도적 권위를 고집하지는 않았다.  거룩한 가족의 일원이 되는 자격은 명백하게 거의 사도적 신분을 수반하였다.  바울은 실로 주님의 동생 야고보를 사도들에 포함시킨 것 같다(갈 1:19). 그러나 야고보에 관한 한 바울 자신에게서처럼 그 이상 고려할 것이 있었는데 주께서 부활로 그에게 나타나셨다는 것이다(고전 15:7).  그러므로 만일 흩어진 12지파에게 보내는 그 서신의 저자로서 야고보가 주님의 동생과 동일시되었다면 그것은 그 서신이 사도적 문서 중에 수납될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만일 유다가 예수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동생이었다면 그  유다는 그 거룩한 가족의 일원이 되는 것이며 그것은 바로 그 서신이 짧은 것이었을지라도 호의로 교회가 수납하는데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또 요한일서는 항상 제 사복음서와 밀접하게 제휴되었으므로 그 복음서가 사도적이요 정경으로 인식되었듯이 비록 그 서신이 복음서처럼 무명이었을지라도 사도적이요 정경서로 인식되었다.

2) 오래됨
만일 한 작품이 사도의 것이거나 사도와 절친한 어떤 사람의 것이었다면 그 책은 사도시대에 속했음이 확실하였다.  그러나 후대의 작품들은 그것들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사도적 작품이나 정경에 포함될 수 없었다.  예컨대 헤르마스 목자서(Hshepherd of Hermas)는 무라토리 정경 목록의 편찬자가 높게 평가하였다.  그는 분명 이 책이 예언의 진품이라고 인식하였다.  그러나 그 책이 나타난 연대가 너무 늦어서 정경 예언서 가운데 포함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정경의 결정 요인은 사도와 그들의 동료들이 쓴 것인가에 달려 있었다.

3) 정통성
정경의 결정 요인은 그 책의 정통성에 있었다.  여기서 정통성은 사도적 신앙을 가리키며 그것은 사도적 책들에서 설명된 신앙이며 사도들에 의해 세워진 교회들 안에서 지속된 신앙이었다. 그들은 가현적(docetic)이
고 그노시스적인(gnostic) 이단에 대항하여 신앙의 규범으로 요약된 사도적 교훈을 변호하였다.  정통성에 대한 표준으로는 그 책이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대해서 무엇을 가르치는가?  예수를 역사적 나사렛 예수로, 십자가에 죽으시고 죽은 자 가운에서 살아나셔서 만주의 주가 되신 높아지신 분으로 사도적 증거를 하고 있는지가 고려되었다.
이런 결과 베드로 행전(Acts of Peter)나 바울의 행적(Acts of Paul) 같은 책은 그 이름이 사도와 연관이 있었으나 그 책들의 내용에서 비사도적 특성때문에 영구하게 신약의 정경 속에 가입될 수 없었다.

4) 보편성
어느 책이 한 지역에서만 알려진 것은 보편교회의 정경의 일부로 인식되지 않았다.  반면에 보편교회에서 광범위하게 인식되었던 책은 그 즉시나 혹은 후에 보편적으로 수납될 수 있었다. 예컨대 로마교회가 궁극적으로 히브리서를 정경서로 동의한 것은 나머지 정통교회와 공동보조를 취한 결과였다.  서신들의 경우 어떤 것은 아주 지역적으로 인식되었으나 이따금 보편적으로 수납되고 영구적으로 권위를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 지역적으로 용납되던 서신들이 점차 확산되어 보편적으로 인식되게 되었다.  요한계시록은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보낸 서신이었으며 복음서나 사도행전까지도 사실은 우선적으로 계획된 독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책들이 정경의 신분을 얻게 된 것은 그것들이 처음보다 점차 넓게 인식 되어진 결과였다.

5) 전통적인 사용
정경의 결정 요인은 역시 전통의 지속에 있었다.  가정된 고안서들은 우리가 항상 배운 바요 우리가 항상 행한 것이라는 논법으로 배격되었다.  그러므로 어느 교회 지도자가 3세기나 4세기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책을 진정한 사도적 저작으로 추천한다면 그는 그것을 수납되도록 하는 데 얼마나 어려운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 지도자가 이끄는 회중은 우리들 중에는 아무도 그것에 대해 들은 사람이 없다고 말할 것이다.  이렇게 모든 교회의 전통이 그렇게도 강경하였다.

6) 영 감
영감과 정경은 언제나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서 정경에 포함된 책들은 그것들이 영감되었기 때문이라 생각하였다.  영감된 것으로 알려진 책은 그것이 정경 안에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일반적으로 서방에서 정경의 원리가 사도성이라면 동방에서는 영감이라고 생각하였다.  알렉산드리아에서 필로에 의해 시도되었던 성경의 풍유적 해석이나 오리겐의 풍유적인 취급은 다같이 그 본문이 축어적으로 영감되었다는 확신에 근거하였다.  그런 영감된 본문은 풍유적인 방법으로만 나타낼 수 있는 깊은 의미를 지녔다고 보았다.

7) 그 밖의 문제들
그 밖의 정경 결정 요인으로서는 보다 실제적인 문제로 박해 때 그 책 때문에 순교한 책들은 생명자체의 값을 지불한 것이므로 다른 책과 구별되기도 하였다.  또 그 책이 크리스챤의 신앙과 생활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되는지의 여부가 정경 결정의 한 요인이 되었다.3) 그 책의 내용이 교화적인 것이며 교회 안에서 대부분이 확실하게 믿는 것이냐는 질문이 또 다른 정경 결정의 원리로 작용하였다.
    
   주
   1. Henry C. Thiessen, Lectures in Systematic Theology(Grand Rapids : Eerdmans, 1977). p.102
   2. The Zondervan Pictorial Bible Dictionary, Merrill C. Tenney, Edited(Grand Rapids : Zondervan Pub, Co., 1975) p.144
   3. F.F. Bruce, The Canon of Scripture,(Downers Grove, Illinois, I.V.P. 1988), pp.255-269에서
     요약 인용하였다.

  
성경은 어떤 책인가?
      
성경이란 무엇인가?
성경(Bible)이란 말은 헬라어 비브리온(Biblion)에서 왔는데 그 의미는 두루마리 혹은 책이란 뜻이다.  비브리온이라는 말이 이렇게 파피루스의 두루마리란 뜻이지만 이 말은 보다 폭넓게 쓰여 왔다.
오늘날 헬라어의 비브리온은 훨씬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원래 이 말은 중성(中性)이므로 마술의 책들로 쓰이기도 했고(행 19:19) 이혼증서로 쓰이기도 했으나 (막 10:4) 역시 거룩한 책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계시의 기록으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성경이란 말의 기원은 구약성경 단9:2(LXX)로 거슬러 올라가며 거기 나오는 타비브리아( Tabiblia)는 선지자들의 글들을 가리켰다.  그런데 그 말은 일반적으로 구약성경을 가리켰다. 그리고 기독교회로 이 말이 유입되면서(클레멘트2서 14:2) 5세기경에는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경적 글들의 전체를 포함하는 성경이 되었다.

구약성경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계시된 뜻이므로 사람들을 제어해 왔으나 주전 2세기까지는 고정된 형태를 이루지 않았었다. 또 신약성경의 정경은 1세기에 다양한 책들이 교회 안에서 회람되었으나 그 중에 어떤 책들이 신약의 정경으로 확정된 것은 350년대에 와서 된 일이다.  제2세기 교회는 밖으로는 박해의 공격을 받았으며 안으로는 이단의 발생으로 시달리게 되었다. 특별히 영지주의(Gnosticism)와 그 대표자였던 말시온은 사적인 정경 목록을 만들어 교회들을 유혹하게 되었으므로 정통교회는 정경결정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교회는 이미 교회들안에서 회람되고 있던 책들을 선별하여 정경으로 수납하게 되었는데 그 최종확인은 397년 칼라고회의 때였다(1).

그러면 왜 많은 회람서 중에서 어떤 책들은 정경에서 제외되었는가?  그런 책들은 정경의 기준에 일치하지 못하는 것들이었다.  일반적으로 정경의 기준이나 수납요인은 영감과 사도성 그리고 일관된 윤리였다.  그러나 여기서 기억할 것은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정경을 결정할 권위가 있었다는 것이 아니다.  교회가 정경이 아닌 책을 정경서로 만들 수 없을 뿐 아니라 정경서를 정경에서 제외시킬 권한도 없었다.  교회는 다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미 폭넓게 회람되던 책들을 정경으로 확인하고 수납했을 뿐이다.

성경의 원문은 세 가지 말 즉 히브리어와 헬라어 그리고 약간의 아람어로 쓰여졌다.  저자는 40여명으로 1600년어간에 기록되었으며 구약 39권과 신약 27권 도합 66권으로 되어있다.

성경은 자연계시(일반)에 비하여 특별계시라고 부른다.  자연계시를 통해서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창조주시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그러나 타락으로 인해서 우리의 이성이 손상되었을 뿐 아니라 자연까지 오염되었으므로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를 할 수 없게 되었다.  더구나 자연계시는 사람이 죄인이므로 구세주가 필요한데 그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이시며 그를 믿을 때 구원을 받는다는 복음을 가르치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특별계시를 주셨다.  여기서 특별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말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특별계시는 성경 안에서와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오기 때문이다(2).

그러면 성경(특별계시)은 무엇을 계시하는가?
성경은 역사 속에서의 구속을 계시한다.  그리고 이 구속은 주 예수그리스도의 사역에 중심이 되었다.  그가 죄인의 위치에서 죽으셨고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칭의의 증거로 살아나셨다.  이것이 성경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속을 위해 그가 하신 일에 대한 해석적 기록이다(3).

다시 말해서 성경의 이야기는 역사 속에서 능동적인 하나님의 간섭에 대한 기록이다. 성경의 인물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게 하시고 그들을 통해서 말씀하신 인물들이었다.  그 중심은 성육신하신 하나님이시다(4).
여기서 보다 더 명확한 이해를 돕기 위해 성경이 계시하는 진리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로 한다.

1. 하나님께서 자신을 들어 내셨다.  그는 조물주와 주인으로 그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을 보여 주셨으며(롬 1:2) 그의 성품과 그의 사람을 취급하시는
    방법들을 보여 주셨다(출 34: 6; 신 5:9; 렘 9:24; 요일 1:5; 4:7-10).  이 점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이 그 정점을 이루고 있다.

2. 하나님은 그의 나라를 드러내셨다. 하나님은 그의 우주적 왕직의 실제를 보여 주셨다(선지자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보좌의 환상은 보았는지를 기록했고(왕상 22:19; 사 6:1; 겔 1:26; 계 4:2) 어떻게 시편 기자가 하나님의 통치를 축하했는지를 기술하였다(시 93:1; 96:10; 97:1; 99:1; 계 19:6). 여기서는    앞으로 있을 메시아의 구원의 통치로 임할 역사의 종말이 그 정점을 이룬다(마 28:18;  히 1:3, 8, 13). 믿는 자와 반대자의 운명을 드러냈다(고전    15:24; 빌 2:9-11).

3. 하나님은 그의 계약을 드러내셨다. 여기서는 그와의 관계가 중심인데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맹서하시며 그들을 축복하시며 그들이 그를 섬기도록 그에게 맹서케 하셨다.  내가 너의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가 내 백성이 되리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계약적 축복의 새로운 단계마다 반복하신 관계적 헌신이었다(창 17:7-14,;출 19:4-6;레 26:12; 신 7:6; 14:2; 렘 11:3; 30:22; 31:33; 겔 11:20; 고후 6:16; 계 21:3). 이런 계약적 관계로 인한 축복이 새로운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인한 계약에서도 지속된다(히 8장 –10장).

4. 하나님은 그의 율법을 나타내셨다.  이 율법은 만인을 위한 것이지만 토라(권위있는 아버지의 교훈)로서 그의 백성에게 보이신다.  “저가 그 말씀을 야곱에게 보이시며 그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보이시는도다” (시 147:19). 구약시대에 하나님은 그의 백성의 아버지시였으며 새 계약 아래서는 하나님의 유일한 독생자를 영접한 모든 사람에게 아버지시다(출 4:22, 말1:6).  그리고 그들은 입양과 중생으로 예수님의 형제가 되었다(요 1:12, 20:17, 갈 4:4-7).

5. 하나님은 그의 구원을 보이셨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파멸시키려는 어떤 위협에서든지 예컨대 애굽의 포로나(출 14:13 ,15:2) 바벨론 포로(사 51:5-6,8) 그리고 민족적 원수나 개인적 고난(시편) 또 죄와 사탄에서(신약에서 여러 번 나옴) 양 무리를 구출하시는 구원의 행위를 드러내셨다.
  
이 점에서 계시의 정점은 하나님께서 복음의 말씀을 주신 대로(갈 1:11)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과 그리스도의 성령의 지속적인 사역을 설명한다(롬 1:16, 엡 1:13)(5).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말씀하신 구원의 기쁜 소식이며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법이요 교훈이다.  그리고 이런 맥락에서 바울사도는 디모데후서 3:16-17에서 다음과 같이 갈파하였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주
   1. Baker’s Dictionary of Theology(Grand Rapids : Baker Book House, Fouth Printing, 969). pp.94-95
   2. Bruce Milne, Know the Truth(Downers Grove : IVP. 1982) p.27
   3. James M. Boice, Foundations of the Christian Faith(Downers Grove : IVP. 1986). p.37
   4. R. Laird Harris, Inspiration and Canonicity of the Bible(Grand Rapids : Zondervan Publishing
       House, Ssevnth Printing, 1974). p.1
   5. J.I. Packer, God’s Words (Downers Grove : IVP, 1981), pp.21-23
  

성경의 권위

    오늘날 교회의 성경에 대한 권위는 일정하지가 않다.  성경이 단지 인간 저자의 책이 아니요, 보통 서적과 다르다는 의미에서라면 성경의 권위는 과거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이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권위가 있다는 입장이라면 오늘의 교회는 결코 일치하지 않는다.  진정한 의미에서 성경의 권위를 믿는 것은 개신교내의 복음주의 그룹과 로마 가톨릭 그리고 희랍정교회뿐이다.  물론 그것도 로마 교회의 경우는 외경과 교회의 전통의 권위도 인정하고 있으므로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인정하고 있지 않는 셈이다  

그러면 과연 성경의 권위는 잘못된 주장인가?  성경의 권위가 그 무오성에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성경의 무오함을 증명할 수 있는가?  그리고 실제로 우리가 성경의 무오를 증명할 수 있는가?  머레이(J. Murray)교수는 우리가 성경이 무오하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그것이 무오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고 하였다.  성경 앞에 증거를 두기는 불가능하다.  예컨대 어떻게 창세기 1장이 실질적으로 참되다고 증명할 수 있는가?  이것은 성경자체가 무오함을 말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성경을 변호할 때 우리는 그것으로 성경의 무오성을 증명하지 못한다.  어떻게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그가 구원받지 못한 수많은 사람의 죄를 속죄했다고 증명할 수 있는가?  어떻게 우리가 그의 승천 후에 하늘에서 하나님의 우편에 있는 거룩한 곳으로 들어가신 것을 증명할 수 있는가?  그것은 이런 일들이 참되어서가 아니라 성경이 그렇게 가르치기 때문이라고 논증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성경 그 자체와 그 자체의 기원 특성 그리고 권위에 대한 성경의 증거가 유일한 근거인 것이다.  우리가 이것들을 믿는 것은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기 때문이다(1). 그러면 성경 자체가 무오하다고 믿을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가?

  1. 성경의 영감
성경이 보통 인간의 저작이 아니라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그 근원이 신적인 증거가 있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졌다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성경의 영감에 대한 대표적인 구절은 디모데후서 3:16이다.  거기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고 하였다.  또 베드로후서 1:21에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 두 구절에서 모두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졌다고 했는데 그 말은 헬라어의 데오푸뉴스토스(             )란 말이다.  이 말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호흡하셨다는 뜻이요 성경이 전능자의 창조적 호흡으로 산출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모든 성경을 세오프뉴스토스라고 부르는 것은 그것들이 하나님께서 호흡하신 것이요 신적 활동의 모든 영역에 계신 성령의 창조임을 목적한 것이다(2).  다시 말해서 여기 호흡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에 의해 숨을 내쉬었다는 것이요 그 말은 하나님의 활동에 대한 비유로 특별히 성령을 통한 하나님의 행위를 가리킨다(3). 이렇게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적 호흡의 산물이므로 영감이란 말은 하나님의 자기 자기계시(Self-revelation)가 성경의 말씀으로 표현되게 된 방법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성경의 영감은 성경의 인간 저자에게 무관한 것이 아니다.  그 저자들에게 영감을 주어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하시는 대로 성경을 쓸 수 있게 하였다.  영감에 대해 가우센 (Gaissem)은 정의하기를 하나님의 성령이 성경의 저자들에게 역사하셔서 그들이 쓴 단어들의 사용까지 인도하시고 그들을 모든 오류에서와 모든 생략으로부터 지키시기 위한 성령의 설명할 수 없는 능력이라고 하였다(4).

이렇게 영감은 인간 저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단어를 선택하는데서부터 원저자들을 모든 오류와 생략에서부터 지켜 주었다는 것이다(5).  그러므로 성경의 영감은 성경의 무오를 보증한다.

   주
   1. Collected Writings of John Murray(London : The Banner of Truth Trust, 1976). Vol. I. pp.9-10
   2. B.B. Warfield, The Inspiratio and Authority of the Bible (Phillipsburg : The Presbyterian and
      formed Publishing Company, 1979). p.296
   3. Bruce Milne, Know the Truth(IVP. 1982) p.35
   4. R.P. Lightner, The Saviour and the Scriptures(Philadelphia :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Co. 1966). p.59.
   5. Ibid.,(L. Gaussen, The Plenary Inspiration of the Holy Scriptures, p.34)

  2. 계시와 영감의 관계
   계시는 하나님께서 알려 주시는 것 즉 하나님 자신과 그의 뜻에 관한 사실들의 감추어진 것을 알려 주시는 것에 대한 것이다.  이에 비해 영감은 계시의 산물인 그 기록에 관한 것이다.

영(E.J. Young) 박사는 계시와 영감사이를 구분짓기를 ‘둘이 매우 밀접하게 연관된 것이 사실이다.  넓은 의미에서 영감은 형식이나 계시의 한 양태인 것이 사실이다.  동시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데 계시는 근본적으로 정보에 대한 지식의 전달이요, 영감은 교훈에서 무오를 안전하게 하기 위해 계획된 것’이라고 하였다(1).

3. 영감의 범위
   성경의 영감을 완전히 부인하는 교회나 신학자는 없다.  그러나 성경의 영감을 부분적인 영감으로 보고 영적인 교훈에 제한시키는 이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역사적인 연대나 인물 그리고 사건 등과 과학적인 일들을 기록하는 데서는 오류가 많다고 지적한다.  다시 말해서 그런 것들은 영감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저들은 부분 영감설을 주장하는 셈이다.
그러면 성경은 그 자체로서 어떤 영감을 주장하는가?

  1) 구약의 영감
오늘의 구약성경 39권은 히브리성경에서도 그대로 나타나는데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하며, 유대인들은 거룩한 책들로 보아 왔다.1  닷스(Marcus Dods)는 구약은 신약의 저자들과 그들과 동시대의 모든 유대인에 의해 영감된 것으로 수납되었다고 하였다.2 더구나 구약의 영감에 대해서는 그리스도가 히브리 성경은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것으로 절대적 권위가 있다고 보셨다.  그 대표적인 구절은 마태복음 5:17-18이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이 말씀은 구약의 영감에 대한 예수님의 이해요 신념이며 확신이었다.  여기서 율법과 선지자는 구약성경에 대한 표준 명칭이다. 이 말씀은 말라기로부터 하나님께서 요한을 보내신 때까지 430년동안 하나님의 권위있는 계시로 서 있다.3

예수님께서 구약 전체를 영감된 말씀으로 받으신 증거로 그의 시대에 성경이 실재했던 대로 성경의 삼중 구분을 언급하신 데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눅 24:44).  그런데 여기 율법과 선지자와 시편은 당시 구약성경 전체를 가리켰다.  더 나아가 당시 어떤 때는 구약성경 전체를 단지 율법이라고만 불렀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율법으로서 오경 밖에 구절을 인용하셨다(요 10:30). 그래서 해리스(Harris)는 마태복음 5:17-18과 누가복음 24:44은 전체 구약을 가리킨다고 보았다.4  그 밖에도 너희가 읽어보지 아니하였느냐는 말은 너희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모르느냐는 말과 같은 말로서 (마 12:3; 19:4; 21:16; 22:31; 막 2:25; 12:10, 26; 눅 6:3) 그것은 기록되었으되를 의미하였다 (마 11:10; 21:13; 26:24; 막 9:12, 13; 11:17; 14:21, 27; 눅 7:27; 19:46).  이런 구절에서 예수님은 성경의 모든 부분 즉 역사, 율법, 시편 그리고 예언서가 동등하게 영감된 것으로 적용하여 사용하셨다

이런 예수님의 경향은 구약성경의 부분 영감 대신에 전체가 다 영감되었다는 견해를 견지하셨음을 보여 준다.  예수님은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직을 수행하실 때 그 말씀이 하나님의 영감된 것으로 오류가 없으므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신념으로 활동하셨다.  그는 의식적으로 친히 그 세미한 부분까지도 다 이루셨던 것이다(눅 4:18; 사 61:1; 마 8:16; 사 53:41; 막 8:31; 마 26:24; 눅 22:37; 사 53:12).5

예수님의 구약에 대한 권위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구약성경의 낱말에까지 영감된 것을 주장하셨다.  그 대표적인 구절은 마태복음 5:18이다 :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리라!”  여기서 일점일획은 히브리어 글자에 이오타(       )로서 그것은 하나의 콤마나 점을 친 것처럼 제일 작은 알파벳의 하나다.  그러나 실제로 여기서 의미하는 것은 그것도 아니라 돗(Dot 혹은 Title)으로서 영어로 하면 H자나 I자의 끝에 돌출부분을 가리킨다.6  그러니까 전체로서 율법이 다 이루기까지는 율법의 단어의 돌출부분도 없어지지 않으리라는 말씀이다.  그 본문에서 예수님은 구약성경의 영감이 글자에까지 미친 완전한 영감을 주장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예수님은 축자 영감과 같은 것을 가르치신 것이 분명하다.  그가 권위를 돌릴 때 저자보다 기록된 것들을 보신 것을 알 수 있다.  그 작품들은 단어들로 구성되었으므로 단어의 영감에 대한 어떤 형태가 있어야 한다.7
이렇게 구약성경은 그 부분과 전체가 심지어는 그 단어에 이르기까지 다 영감되었다는 것이 주님의 가르침이었고 그 당시나 우리 교회의 전통적 신앙이다.

   주
   1. The Infallible Word(Phillipsburg : Presbytarian and Reformed Publishing Co. 1946), p.55
   2. Marcus Dods, Inspriation, A Dictionary of Christ and the Gospels, ed, James Hastomgs.,(1907).
      1831-32(R.P. Lioghtner, Opcit., p.60)
   3. R.C.H. Lenski, The Interpretation of St. Lukes Gospel(Columbus : The Wartburg Press),839-40
   4. R. Laird Harris, Inspiration and Cononicity of the Bible(Grand Rapids : Zondervan, Pub.
      Co,.1957), p.46
   5. J.I .Paker, Fundamentalism and the Word of God(Grand Rapids : Eerdmans Pub, Co., 1960).
       pp.57-58
   6. J. Montgomery Boice, Fundations of the Christian Faith(Downers Grove : IVP. 1986). p.43
   7. J.W. Wenham, Our Lord’s View of the Old Testament(Downers Grove : IVP. 1953) p.25
  

     성경의 해석

1. 성경해석의 필요성
   성경의 각 책들은 옛날 책이다.  그 책은 오늘 우리와는 다른 사회적 문화적 배경을 반영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성경은 현대의 독자들을 위해서 고대의 다른 책들처럼 해석되는 것이 필요하다(1).

사실 해석의 필요는 성경만이 아니다.  고대나 현대의 어떤 문서도 해석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대법원의 결정들은 실제로 미국의 헌법에 대한 해석들이다.  또 철학자들은 자주 어떤 구절이나 단어가 풀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칸트에 의해 무엇을 의미하였는지를 토론한다.  사해사본에서부터 종교적인 글들을 주의깊게 분석하는 고고학자는 자주 그를 당황하게 하는 언급들을 접하게 된다.  그러므로 의미에 대한 시험적인 결론에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그가 알고 있는 모든 원리들과 기술을 사용해야 한다.

그 문서가 어떤 것이든 그 해석자는 그 의미를 외곡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이런 주의는 특별히 성경해석에서 요구되는데 그 이유는 그 책들이 역사, 격언, 사람들 그리고 제도들만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메시지요 계시이기 때문이다(2).

특별히 복음주의적인 입장에 서 있는 교회는 로마 가톨릭교회나 동방교회와 같이 성경 이외에 부가적인 것들 예컨대 교부들의 도덕적 저서, 고대신조, 교회회의의 결의, 구전 등을 함께 제2의 권위로 인정하는 데 반대한다.  오직 성경만을 권위로 여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성경 자체를 신실하고 정확하게 해석함으로써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알 수 있다(3)

이런 필요에서 생겨난 학문이 성경해석이다.  성경해석학은 개략적으로 정의한다면 해석의 원리라고 할수 있다.  특수한 본문의 해석을 위한 규범이나 원리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성경해석학의 관심사는 본문의 해석뿐 아니라 기록된 작품이나 혹은 구두(Verball나 비구두 예컨대 상징이나 상징적 행동이거나를 망라해서 대화의 어떤 행위들에 대한 해석이나 이해이다.  이를 위해서 성경해석학은 언어의 특성, 의미, 대화 그리고 이해에 대한 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을 다룬다(4).  이렇게 함으로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말씀하신 것을 확인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를 파악하게 되며 더 나아가서 성경기자의 생각과 현대인의 생각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5).

2. 성경해석의 원리들
1. 해석을 위해 알아야 할 일반적 원리
    성경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의 문맥을 연구해야 하며 직접 문자적인 문맥과 그것이 나타난 보다 넓은 상황에 대한 것을 다 함께 연구해야 한다.
  (1) 성경적 언어의 구조와 숙어
     성경의 문학의 유형  예를 들어 그것이 시냐? 역사냐? 알레고리냐 또는 문학적이냐?  상징적이냐를 가려내야 한다.  계시록 같은 성경은 특수한 유형으로 해석의 특별한 규범이 요구된다.
  (2) 역사적 배경
     성경 저자들 자신이 지녔던 역사적 감각은 그들의 기록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이다. 성경적 기록의 역사적 배경은 B.C.400년 초기부터 A.D.100년까지 근동문명의 전 기간이다.  그 시대를 이해하지 못하면 성경 이해에 갭이 생기게 된다.
  (3) 지정학적 조건
      사람들의 전망이나 행동 모형에 지역과 기후의 영향은 매우 중요하다.  구약시대의 종교적 투쟁은 팔레스틴의 지리에 대한 어떤 지식을 떠나서는 이해할 수가 없다.  예컨대 가나안 사람들에게 바알(Baal)신은 땅을 비옥하게 하는 비의 신이요 바알신숭배는 비가 오게 하고 곡식이 자라도록 하기 위해 계획된 마술적 의식이었다.
  (4) 생활환경
     성경에서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어떤 종류의 사람들인가?  그들의 행동, 말, 그들의 사랑과 미움, 그들의 동기와 포부 등을 이해하게 된다면 그들을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게 된다(6).

2. 성경의 실제적 해석방법
  1) 신앙의 유추
      종교개혁자들은 오직 성경의 권위만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성경해석의 주된 규범은 신앙의 유추라 불렀다.  신앙의 유추란 성경이 성경을 해석한다는 규범이다.  이 해석방법의 기본사상은 성경의 어느 부분도 성경의 다른 곳에서 분명하게 가르치는 것과 모순되게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해석원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된 말씀이며 하나님은 자신에게 모순이 되실 수 없으시듯이 성경은 그 자체가 서로 모순 되지 않는다는 확신의 소산이다.
  2) 문자적인 해석
     개혁자 루터는 성경은 그것의 문자적의미에 따라서 해석되어져야 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 말은 오해하기 쉬우나 그 의미는 문학으로서 성경을 해석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구절의 본래적 의미는 문법, 말, 구문(syntax) 그리고 문맥에 따라서 해석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문자적인 해석을 정확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문법에 주의해야 하며 장르의 분석이 필요하다.  문학의 형식, 말과 문체의 형태를 구별해야 한다.  특별히 비유적인 표현에 대해서는 그 해석에 주의를 더해야 한다.
   (1) 역사적인 맥락에서 해석해야 한다.
        예컨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의 경우 그의 기원, 신분, 사마리아인의 종교, 제사장과 레위인의 기
        능, 직분, 거주, 예루살렘과 여리고 사이의 지형 그리고 유대인의 이웃에 대한 개념 등의 역사적인 배
        경에서 해석하여야 한다.
   (2) 비유의 문학적 그리고 문법적 구조에 주의를 기울어야 한다.
   (3) 비유에 주어진 주요점은 신학적으로 예수님의 가르침과 성경의 나머지 부분의 가르침을 배경으로 하
        여 조사되어야 한다.
   (4) 비유는 오늘날 필요에 관계있는 말로 그 의미가 번역되어져야 한다(7).
  
3. 문법적 역사적 해석
     신앙의 유추나 성경의 문자적 의미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해석방법을 문법적 역사적 해석 방법이라 부른다.  이 해석의 특성은 문학의 형태만 아니라 문법적 구조 그리고 기록된 성경의 역사적 배경에 초점을 맞춘 해석 방법이다(8).  그러니까 앞선 해석방법의 종합이나 보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성경해석 방법이 옳다고 하더라도 이 방법에 따른 과학적이고 기계적인 해석으로 성경을 올바로 해석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시며 조명해 주시므로 영적인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시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3. 성경난제의 해석을 위한 제언
  성경의 해석은 문맥을 따라야 하며 어휘를 이해해야 하고 문법을 알아야 하는가 하면 저자의 의도도 파악해야 한다.  또 다양한 배경과  성경의 다른 부분과의 관계를 알아야 하며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한다는 원리를 따라야 한다.  그 밖의 비사(figur of spech), 상징, 비유와 우화(allegory), 히브리어의 관용어나 시, 예언, 교리 그리고 신구약의 관계 등등의 문제들에 대해서도 각각 그 문학적 표현 양태를 따라 해석해야 한다(9).  성경의 난제에 대해서도 예외는 아니다.
여기서 아처(G.L. Archer)의 성경난제 취급과정을 위한 제언을 요약 소개하기로 한다.

  1) 적당한 해석이 반드시 있다고 굳게 믿으라.
  2) 어떤 구절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그 구절이 자체의 배경 속에서 말하려고 하는 사상을 깨달을 때까지
     문제가 발생한 그 구절의 문맥과 구조를 주의깊게 연구하라
  3) 병행구절의 경우 정당화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들을 조화시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같은 사건
     에 대한 다른 각도에서의 기록이므로 신빙성이 있는 기록이다.  그러므로 이것들을 다 연구하면 보다
     더 완전한 이해에 도달하게 된다.
  4) 구할 수 있는 최선의 복음주의 학자들의 성경주석을 참고하라.
  5) 성경의 많은 난제들이 본문의 전사 과정에서 복사자들의 사소한 실수로 인한 것들이다.
  6) 성경의 역사적 기록들이 고고학의 발견이나 히브리 족속이외 다른 족속의 고대문서의 증거와 일치하
      지 않는 듯이 보이는 것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경우에는 언제나 성경 그 자체가 가장 수준 높은 고고학
      적 문서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10).


   주
   1. Baker’s Dictionary of Theology(Grand Rapids : Baker Book House. 1969). p.291
   2. A. Berkeley Mickelsen, Interpreting the Bible(Grand Rapids : WM. B. Eerdmans. Pub. Co.
     1976) p.3
   3. Bernard Ramm, Prptestant Biblical Interpretation(Baker Book House, 1972) (권혁봉역, 서울:
     생명의 말씀사, 1973)
   4. New Dictionary of the Theology(Downrs Grove, IVP. 1988). p.293
   5. Bermard Ramm,opcit., pp.20-23
   6. Baker’s Dictionary of Theology. p.292
   7. Simon Kistemarker, The Parables of Jesus(Grand Rapids : Baker Book House, 1980), pp.23-24
   8. R.C. Sproul, Knowing Seripture(Downers Grove, IVP, 1977). pp.46-57
   9. T. Norton Sterrett,, How to Understand your Bible(IVP. 1974)(서울: 한국성서유니온, 1978). 85-155
  10. G.L. Archer, Encyclopedia of Bilbe Difficulties(Regency, 1982). pp.15-17


구약의 정경

   A.D. 400년경 유대 탈무드(Talmud)에는 유대인의 성경이 나오는데 대략 그 순서와 이름은 오늘날 우리의 히브리 성경에서 발견되는 것과 같았다.

12소선지서를 하나로 묶었으며 사무엘서와 열왕기서 그리고 역대기서는 각각 한 책으로 계산해서 24권이었는데 그 내용은 율법서 5권, 선지서 8권 그리고 11권의 책들(시편, 잠언, 욥, 솔로몬서의 아가서, 욥기, 애가, 전도서, 에스더, 다니엘, 에스라, 느혜미아, 역대기)이었다.  초기에 그들은 사사기와 룻기를 한데 묶었고 예레미야와 예레미아애가를 하나로 묶어 히브리어 알파벳 22자에 일치하는 22권을 만들었다.
250년경에 오리겐(Origen)은 구약 22권의 목록을 작성했으나 탈무드의 순서는 아니었다.

유대인의 역사가 조세푸스(Josephus)는 A.D. 90년경에 아피온(Apion)에 반대하는 그의 작품을 썼는데(:8) 유대인이 받은 22권의 책들은 모세의 율법서 5권, 예언서 13권 그리고 하나님께 찬양과 생활을 위한 교훈서 4권이었다.  그는 말하기를 이런 책들은 경건한 유대인�_들이 바꾸거나 부인하기보다 차라리 죽기를 바라는 것이라 하였다.

A.D. 90년경에 유대인들은 잠니아(Jamnia)회의를 개최하였다.  거기서 어떤 책들 예컨대 전도서와 잠언 등의 정경성에 대한 토의가 있었다.

제1세기의 애굽계 유대인 필로(Philo)는 22권의 히브리 성경을 수납한 것이 분명했다.  왜냐하면 그는 그 책들에서 많은 것을 인용하였으며 권위가 있는 것으로는 그 책들에서만 인용하였다.  신약의 증거도 일치하는데 구약의 대부분의 책을 인용하지만 7권의 외경에서�_는 인용하지 않았다.  신약은 구약의 책들을 순서적으로 인용하지는 않았지만 3분화보다는 2분화하여 인용하였다.  예를 들어 율법과 선지서 혹은 모세와 선지자들이었다.  여기에 구약의 22권이 포함되었으며 단 한번 다른 곳에서 모세와 선지자와 시편의 셋으로 구분해서 인용되기도 했다(눅 24:44).  그러나 후에 헬라어의 번역본이었던 칠십인역(LXX)에서도 후대의 복사판은 3분화의 구분 대신 2분화를 따랐다.

이상에서 본 대로 외경의 토비트, 유딧, 지혜서, 집회서, 바룩, 마카비1서와 2서 그리고 에스더나 다니엘에 어떤 추가된 것들은 고대에 권위가 없었으며 그리스도와 사도들 혹은 유대인들에 의해 용납되지 않았다.  다만 1545년 로마 가톨릭의 트렌트(Trent)회의에서만 정경이 되었는데 이것은 개혁자들에 대한 반동의 결과였다.

구약의 정경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는 다니엘서가 선지서의 정경이 마감된 B.C.165년까지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선지서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견해가 있었으나 요세푸스의 증언은 초기에 다니엘서가 선지서 중에 있었음을 분명히 하였다.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사람들은 선지자로 불려졌으며 이들이 없이 영감된 어떤 그룹에 대한 기록은 없었다.  대부분의 구약의 저자는 선지자들이었다.  물론 여호수아나 잠언, 솔로몬의 아가 대부분의 시편 등의 다른 저자들도 역시 선지자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적어도 하나님께로부터 계시를 받았기 때문이다(민 12:6).  그밖에 책들 예컨대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서 그리고 열왕기서와 룻기 욥과 에스더서도 선지자에 의해 기록되었다.  확실히 이런 책들은 쿰란(Qumran의 사해사본에서와 신약에서 선지서의 이름에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선지자적 출처의 책들이 이스라엘에 의해 용납되었다면 그것이 구전에서처럼 기록된 교회의 권위서에 대한 검증의 실제적 시험이었다(신 13:1-5, 18:15-22).
  

신약의 정경    

  처음에 교회가 정경으로 크게 수납한 책들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동의했으나 세부적으로 각 책에 대해서는 정경에 대한 견해가 일치되지 않았다.  어떤 책들은 한 곳에서는 수납되었으나 다른 곳에서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신약의 27권 이외의 책들이 보편적으로 용납된 적은 없었다.
그 책들의 수집역사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1. 주후 170년대
170년경에 무라토리 정경(Muratorian Canon) 목록에 기록된 책들은 사도적이요 교회들에서 읽혀지고 있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 목록은 복음서와 사도행전 그리고 바울의 13서신을 언급하며 어떤 위서들을 경고하고 있는데 아마도 요한 2, 3서와 유다서 그리고 요한계시록이었을 것이다.  베드로의 묵시는 우리 가운데 있을지라도 교회에서 읽혀지지 않을 것이라 하였다.  헤르마스의 목자서(Shepherd of Hermas)도 비사도적인 저작으로 배제되었다. 그 목록에는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만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웨스트코트(Westcott)은 생각하기를 이것은 이런 모든 책이 초기에 수납되어 왔으므로 사본에 대한 원형의 파손이었으리라고 하였다.

2. 주후 140년대
이 시기는 순교자 져스틴(Justin Martyr)이 어떻게 사복음서가 구약과 함께 예배에서 읽혔는지를 말해준 시대다.  그는 히브리서를 포함해서 다른 여러 책들을 인용하였다.  이 시기부터 우리는 근래에 애굽에서 발견된 진리의 복음(Gospel)에서 새로운 증거를 확보하게 되었다.  이 책은 노스틱파의 발렌티누스(Valentinus)가 쓴 것으로 야고보서, 베드로후서, 요한이, 삼서 그리고 유다서를 제외한 신약이 포함되어 있으며  히브리서와 요한계시록이 포함되어 있다.

3. 주후 95년에서 118년까지
이 시기에는 로마의 클레멘트(Clement of Rome),  이그나티우스(IgatiusS) 그리고 폴리갑(Polycarp) 세 사람이 95년과 118년 사이에 글을 썼다.  이 사람들은 인용에 의해서나 암시로�_서 누가복음, 계시록,골로새서, 빌레몬서, 베드로후서, 요한이, 삼서 그리고 유다서를 제외한 모든 신약을 알았고 인용하였다.  그런데 그 책들 중에 얼마가 제외된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요한계시록과 요한이, 삼서는 클레멘트가 95년에 글을 쓸 당시 아직 기록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초기부터 신약의 정경 27권이 모두 한결같이 수납되어 온 것은 아니었다.  복음서는 언제나 의심이 없었다.  요한서신은 이단들도 의심했을 정도였다.  히브리서는 애굽에서 바울의 저작으로 수납되었다.  로마에서는 여러 교부들이 사용하였으며 마침내 애굽과 팔레스타인의 견해가 널리 보급되어 완전히 수납되었다.
베드로후서는 외중은 미미했으나 내증이 강했다.  유다서는 무라토리 정경 속에 포함되었고 터틀리안이 베드로후서 3:3로부터 분명하게 인용하므로 수납되었다(1).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제4세기 이래로 신약에 속한 것으로 인식되어온 27권의 신약은 값진 판단이 아니라 사실의 언급이다.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 신약의 정경은 너무 엄격하거나 너무 포괄적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견해는 정경의 동일함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정경은 그들이 생각하거나 말한 것 때문에 줄어들거나 더해 지지 않았다.
        
   주
   1. The Zondervan Pictorial Bible Dictionary, Morrill C. Tenny, Edited, (Grand Rapids : Zondervan,
       1967),  pp.144-146
   2. F.F. Bruce, The Canon of  Scripture (Downers Grove :  IVP,1998) p.250



신약의 영감

  구약의 영감은 구약자체의 증거와 예수님의 구약의 인용으로 확립되었다.  그러나 신약의 형성에서 예수님이 하신 일은 무엇인가?
예수님은 구약과 신약사이에 서 계신다.  그는 구약의 영감에 대한 신적 증거를 하신 것과 같이 신약의 영감의 보증으로 성령을 약속하였다.  그 성령은 구약을 영감하신 동일한 성령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약의 영감은 구약의 영감만 못하다고 말할 수 없다. 구약을 소급하여 인정하는 사람은 신약을 조망하여 인정하는 사람이다(1).

예수님은 진리를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활동이 끝나지 않았음을 분명히 하셨다 :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요16:12).  예수님께서는 성경(정경)이 그의 죽음의 시간까지도 마감되지 않았음을 아셨다.  그는 성령의 사역에 의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제자들에게 약속하셨고 그 성령께서 오셔서 계시를 완성하셨다.
스코필드(C.I. Scofield)는 신약에 대한 그리스도의 예증(pre-authertication)을 아래 네 가지로 언급하였다.

  1. 그가 드러내지 않은 많은 것을 남기셨다(요 15:12)
  2. 이 계시가 성령이 오신 후에 마칠 것이며 그런 부가된 계시가 새 예언에 포함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요 16:12, 13)
  3. 그가 이런 부가된 계시들을 받고 그들에게 그의 증인들이 될 어떤 사람들을 택하셨다(마 28:19; 요
     15:27; 16:13; 행 1:8; 9:15-17)
  4. 그가 성령으로 그를 위해 말할 때 그들의 말에 그 자신의 것과 똑같은 권위를 주셨다(마 10:14 15; 눅
     10:16; 요 13:20; 17:20; 고전 14:37, 그리고 영감, 출 4:15; 계 22:19)(2).

  예수님께서 신약영감의 사역에서 성령의 사역을 약속하신 구절이 요한복음 14:26에도 나온다 :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신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또 요한복음 15:26,27에서는 오실 보혜사가 그리스도를 증거하실 것이며 제자들도 증거할 것이라 하셨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면서 제자와 성령을 남기셨는데 이 성령과 제자가 바로 신약의 저자였다.

역시 예수님께서는 성경의 이해를 위해 성령의 조명하시는 역사도 약속하셨다.  또한 제자들에게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이해할 수 있게 하셨다(눅 22:44).  그러므로 성령께서는 신약의 저자였던 제자들에게 무엇을 써야 하는지를 지도해 주셨고 기록된 말씀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독자들을 조명해 주신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런 약속에 대해서는 신약의 저자들이 성령의 역사로 인도받았음을 증거하고 있다(고전 2:9-12; 7:24; 벧후 3:1-2; 계 1:1-2).  신약의 저자들은 그들 자신의 글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이들의 글들을 위해서도 권위를 주장하였다(딤전 5:18; 벧후 3:16).  그러므로 구약과 신약은 다같이 성령의 영감으로 된 책으로 성경이라고 부르기에 적합하다.  거기에 어떤 구별이나 차별이 있을 수 없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누가와 함께 신명기를 성경으로 인용하였다(딤전 5:18).  베드로는 바울의 글을 성경으로 불렀다(벧후 3:16).

디이슨(Henry C. Thiessen)은 그의 조직신학 강의에서 신약의 신뢰성이 아래 네 가지 사실에서 확증된다고 하였다.  그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신약의 저자들은 충분한 자격자들이었다.
    마태, 요한 그리고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제자요 그의 사역과 교훈의 증인이었다.  마가는 베드로의 해설자요 교훈에 대해 그가 기억한 것을 정확하게 기록했다.  누가는 바울의 친구였으며 그가 전한 복음을 책에 기록하였다.  바울은 분명하게 그리스도에 의해 부름받고 임명되었으며 그는 그의 복음을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받았다고 주장하였다(갈 1:11-17).  야고보와 유다는 그리스도의 형제였고 그들의 메시지는 그 배경에서 우리에게 전해졌다.  이들이 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 기록하였다.

2. 신약의 저자들은 정직하였다
   그들의 글의 도덕적인 기풍이 진리에 대한 그들의 증거이며 그들의 설명의 상세함은 그들이 거짓을 전하는 자들이 아니라 정직한 사람들임을 지적한다.  동시에 그들의 증언은 그들의 세상의 유익 예컨대 그들의 사회적 신분, 그들의 물질적 번영, 심지어 그들의 삶까지 위태롭게 하였다.  그런 위험을 자초하면서 거짓말을 꾸며 쓰거나 그것을 전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3. 그들의 기록들이 서로 조화된다
    공관복음서들은 서로 모순되지 않고 서로 보충한다.  요한복음은 그 자세한 부분에까지 공관복음과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사도행전은 바울의 10서신을 위한 역사적 배경을 제공해 준다.  그 밖의 모든 서신과 요한계시록까지 그 내용들이 제1세기에 부합되지 않는 것은 없다.  특별히 신약의 27권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사역에 대한 하나의 잘 어울리는 그림을 소개해 준다.

4. 그들의 기록은 역사와 경험에 일치한다.
    신약에는 많은 당대 역사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예컨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었을 때 호적한 것(눅 2:2) 대 헤롯의 행적(마 2:16-18) 헤롯 아그립바의 행적(마 14:1-12) 아그립바의 행적(행 12:1) 갈리오의 행적(행 18:12-17) 아그립바 2세의 행적(행 21:13-26:32) 등등이다.
    
이런 사건의 기록은 모두 믿을 수 있는 원천에서 나온 것들이다.  그 밖에 여러 가지 기적들이 기록됐는데 이런 것들은 처음 기록됐을 때 그것들이 하나님의 계시임을 증명하기 위해 필요하였다.
    이상의 여러 가지 증거들은 신약이 바로 구약과 같이 성령의 지도와 증명 그리고 영감하여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게 한다(3).

성경영감의 결과

성경의 영감의 결과는 아래와 같은 사실을 확신하게 한다.

1. 성경의 무오함
성경의 영감과 무오는 동의어다.  이 말이 성경을 가리키는 것으로 쓰여질 때 우리는 성경이 전적으로 오류나 착오에서 자유하며 그러므로 결함없는 권위를 소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4).  그러나 두 말은 구분이 가능한데 무오(Infallible)란 말은 오도하지 않는 질을 함축한다.  그러니까 모든 성경의 주장은 믿을 수 있으며 전적으로 신뢰할 가치가 있으므로 인간의 거짓된 말이나 언급과 대조되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 자신의 자증이기 때문에 잘못 인도하지 않는다.  성경의 무오성은 전체로서 그것의 메시지를 가리킨다.  이 말은 어떤 구절이나 본문이 무오하다는 말이 아니다.  정경의 전체 문맥 안에 특수한 언급이나 부분이 다 무오하다는 뜻이다.  예컨대 야고보의 질문, 믿음이 그를 구원하겠느냐? (약 2:4)를 그 대답이 아니라는 말과 떼어서 인용했다고 하자.  그때 우리는 야고보서에 있는 하나님의 무오한 진리를 놓치고 만다.  이 경우에 우리는 야고보서 전체의 윤곽 안에서 읽어야 하며 성경의 다른 부분의 보충적인 교훈 특별히 바울의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곁에 두고 읽어야 한다(5).

완전영감은 무오와 함께 쓰이지만 오류가 없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만일 성경이 진리의 하나님에 의해 그 낱말까지 감동되어 내려왔다면 성경은 오류에서 자유할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의 신앙(교리) 혹은 삶의 모형(윤리) 혹은 실제적 사건을 기록한 내용임을 기술할 때 그것이 진리를 말씀하는 것이다(6).
이렇게 성경의 영감의 결과는 성경의 무오함과 성경의 정확한 안내를 보장한다.

2. 진실성과 참됨(genuineness)
성경의 영감은 그것의 기원이 신적임을 드러낸다.  특별히 구약에 대한 예수님의 증거나 근대에 와서 각광을 받고 있는 성서고고학이 역사적 자료들을 발굴해냄으로 그 진정성을 밝혀가고 있다.  신약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대해서는 앞서 인용한 디이슨의 네 가지 사실을 참고하기 바란다.

3. 성경의 권위와 신뢰성
성경의 영감은 그 책이 하나님의 저작의 권위와 그 신뢰성을 갖게 해 준다.  그래서 루터(M.Luther)는 비록 그것들이 인간에 의해 쓰여졌으나 인간의 것이나 인간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하였다(7).  또 하나님의 말과 인간의 말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는데 인간의 말은 작은 소리로 공중으로 날아가면 곧 소멸되어 버린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하늘과 땅보다 더 위대하며 죽음과 지옥보다 더 위대하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의 능력의 부분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며 영원토록 존속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8).

개혁자 칼빈( Calvin)은 우리는 성경에 대해 그것의 유일한 출처가 그 안에 있고 인간의 출처가 그것과 혼합된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존경을 성경에도 드려야 된다고 하였다(9). 역시 요한 웨슬레는 성경은 그 자체로 충분한 규범이며 하나님의 영감된 사람들에 의해 즉시 세상에 전해진 것이라 하였다(10).

   주
   1. F.F. Bruce, The Books and the Parchments, (London Pickering & Inglis , Ltd.,1950). p.103
   2. Ciscofield,, The Scofield Reference Bible(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09), p.1138
     (Robert P. Lightner, opcit., p.71)
   3. Henry C. Thiessen, Lectures in Systematic Theology(Grand Rapids, Eerdmans, 1977), 100-102
   4. Robert P. Lightner, opcit., p.73
   5. Bruce Milne, Know The Truth(IVP. 1982), p.42
   6. Ibid., p.43
   7. Martin Luther, The Doctines of Man are to be Rejected, What Luther Says : Anthology, Vol. 1.
     p.63 (James M. Boice, Foundation of the Christian Faith, p.69)
   8. Martin Luther, Table Talk, 44, A Compend of Luther’s Theology, Ed.  Hugh Thomson Kerr
     (Philadelphia : Westminster, 1943). p.10(J.M. Boice, Ibid.,)
   9. John Calvin New Testament Commentaries,(Grand Rapids, Eerdmans, 1964). p.330
  10. John Wesley, A Roman Catechism, Question 5, The Work of John Wesley, Vol.10
     (1872, Reprinted., Grand Rapids., Mich.,: Zondervan, N.D.), p.90(J.M. Boice,  Ib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