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빌 4:5)
성경에는 재림에 대한 약속이 많을 뿐만 아니라 매우 가깝다고 한다(참고, 벧전 4:7). 그러나 주님의 재림은 아직까지도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주님이 오시지 않았다면 베드로와 바울 사도의 말은 모두 잘못된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고 옳다면 우리는 주께서 가까우시다는 말씀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이 구절은 시편 145:8(144 LXX)이나 혹은 초대 신자들의 표어 그리고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마라나타)라는 주님의 오심에 대한 기원의 변형된 인용이다(고전 16:22; 참고, 계 22:20). 미카엘리스(Michaelis), 케이드(Caird), 부르스(Bruce) 그리고 게티(Getty)는 이 구절을 주님과 교제의 경험에 대한 가까움의 의미로 보았다. 그리고 칠십인 역의 시편 118, 시편 119:5이 이 견해를 지지한다.1) 따라서 위의 견해는 주님이 곧 오시고 계시다는 의미보다는 항상 가까이 현존하신다는 의미로 생각했다. 이렇게 해석하는 것은 주님이 지금까지 재림하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일 주님이 신자들이 죽기 전에 재림하신다면, 또 주께서 강림하시기 전에 신자들이 죽는다면 신자들 자신의 자각과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에 대하여 두 가지 사실이 남게 될 것이다. 곧 (1) 신자들의 이 땅에서의 생애는 참으로 짧은 것이다(시 39:5; 90:10; 103:15, 16). (2) 신자의 영혼이 죽어서 하늘에 들어가는 때와 주님의 재림의 사이는 실로 잠시 동안이다(계 6::11). 왜냐하면 하늘의 시간은 지상의 시간의 척도와는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점에서 어떤 경우가 되든지 바울은 주께서 가까우시니라고 할 수 있었다.2)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견해는 그렇지 않을 경우에 바울에 의한 복된 소망(딛 2:13)이나 요한에 의한 깨끗하게 되는 소망(요일 3:2-3) 그리고 깨어 있어서 갑자기 놀라움으로 주님을 맞지 말라는 말씀에 지지를 받는다(참고, 살전 5:1-2). 더욱이 신자들이 재림 전에 표적과 사건을 분별할 능력이 있다면 그 날과 시간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주님의 말씀에 잘 맞지 않을 것이다(마 24:36).3) 따라서 두 가지 해석이 다 가능하다. 다만 문자적인 해석은 실제로 예수님이 오시지 않은 상태에서 설득력이 부족하다. 그러나 신자가 주님의 재림을 대비해야 하며 어느 순간에도 오실 수 있다는 경각심을 주게 되므로 시대를 초월해서 재림 전 모든 신자에게 주시는 말씀이 될 수 있다. 주 1. Ralph P. Martin, Philippians, pp.170-171 2. William Hendriksen, Philippians, 서춘웅 역(서울: 아가페, 1976), p.260 3. Norman Geisler and Thomas Howe, When Critics Ask(Victor Books, 1992), p.4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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