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아합을 꾀어 저로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죽게 할꼬 하시니 하나는 이렇게 하겠다 하고 하나는 저렇게 하겠다 하였는데 한 영이 나아와 여호와 앞에 서서 말하되 내가 저를 꾀이겠나이다 여호와께서 저에게 이르시기를 어떻게 하겠느냐 가로되 내가 나가서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그 모든 선지자의 입에 있겠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되 너는 꾀이겠고 또 이루리라 나가서 그리하라 하셨은즉" (왕상 22:20-22)
하나님은 진실하시므로 결코 거짓말을 하실 수 없으시다. 거짓의 아비는 마귀이며 하나님께서는 거짓말하는 죄를 관용하시지 않고 정죄하시며 심판하신다. 초대교회의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교회에 거짓이 결코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본보기로 보여 주셨다(행 5:4-5). 그런데 이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아합의 선지자들에게 거짓말하는 영을 보내셔서 아합 왕을 꾀어 전투에 나가 죽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거짓말하는 것을 허락하셨을 뿐만 아니라 가서 그리하라고 명령까지 하셨다. 영어 성경에서는 보다 더 분명하게 가서 하라(go and do it)고 번역하였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께서 직접 악한 일을 명령하셨으니 그 책임을 지셔야 하지 않겠는가? 이와 유사한 구절이 예레미야 4:10과 에스겔 14:9에도 나온다. 더 나아가 사단이 하나님의 백성을 시험하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는 사단에게 그것을 허용하시기까지 하셨다(욥기 1:-2장; 슥 3:1, 2).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선하심과 진실하심을 주장할 수 있겠는가? 먼저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본문에 아합을 길르앗 라못의 전투에 참가해서 죽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은 불의하고 악한 것이었는 가? 그렇지 않다. 물론 여기 아합 왕은 언제나 악이나 우상 숭배에 빠져 있지는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선지자를 신뢰했으며 진실하였다. 선지자의 책망을 듣고 회개하였고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기도 하였다(왕상 21:27-29). 그는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만 볼 때는 성공적인 왕이었다. 일반 역사에서 아합의 위치는 대단한 것이었다. 살만에셀의 통계 보고서에 의하면 아합은 2,000병거와 10,000명의 군대를 지휘한 왕으로 병거(전차)단에 있어서 그의 군대는 어느 다른 왕들의 것보다도 훨씬 더 컸었다(1). 그러나 그는 결혼부터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이방 시돈의 옛 바알왕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맞이하였다(신 7:4; 왕상 16:31-33). 그 결과 하나님 대신 바알을 신으로 섬기게 되었고 이세벨의 악한 꾀에 동참하게 되었다(왕상 21:25). 이런 맥락에서 성경은 그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악한 길을 따른 왕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그를 길르앗 라못의 전투에 나가 죽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은 공의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그의 죽음은 나봇을 죽이고 그의 포도원을 빼앗은 죄에 대한 심판이었다(왕상 21:19). 하나님은 결코 죄를 두둔하거나 관용하시지 않는다. 그리고 죄와 악을 관용하시지 않는데서 하나님의 선하심이 드러난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진실하심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여기 본문에서는 거짓말하는 영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으로 되어 있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께서 결국 악(거짓말)을 행하신 것이 된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악도 행하신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 여기서 하나님은 허용만 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것을 원하셨거나 죄를 짓지는 않으셨다는 것이다(2). 여기서 거짓말하는 영은 예언의 인격화한 영으로서(삼상 10:10-12; 19:23-24)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에 일치하는 일을 하였다. 그 선지자들은 악의 영향력 아래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그들의 미혹시키는 예언들은 왕 자신의 자멸적인 종말에 쓰였을 뿐이다. 여호와께서 이런 모든 조건들을 사용하셔서 그 상황 속에서 당신의 뜻을 이루셨다(3). 이렇게 하나님의 직접 하신 일로 보면서 하나님께는 그 책임이 없다고 보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 다시 말해서 선과 악이 함께 존재한다는 이원론 대신에 선이신 하나님만이 만물의 근원이신 사실에 근거했다고 볼 수 있다(4).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속이는 영에게 거짓말을 하라고 말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단지 그 영이 그의 거짓말하는 일을 하도록 허용하신 것뿐이다. 더 나아가서 거짓말을 명령하거나 장려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진리이시며(신 32:4) 신자들은 진리를 말하도록 분명하게 교훈 되었다(출 20:16; 엡 4:25). 그러나 좀더 이성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해석하는 학자들이 있다. 많은 성경 저자들은 제이의 원인은 무시한 채 발생하는 모든 일을 직접 하나님께 돌렸다. 왜냐하면 그가 만물을 다스리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동사의 명령형으로 표현된 언급들은 종종 발생하도록 허용하는 것만을 기술하고 있다. 따라서 예수님은 귀신들이 돼지 떼에게 들어 갈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청했을 때 가라(마 8:31)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그 자신을 악의 능동적인 후원자로 만들지 않는다. 그는 단지 귀신들 자신이 하기를 원했던 것을 하도록 허용하신 것뿐이다. 비슷한 방법으로 예수님께서는 가룟유다에게 명령하시기를 `네가 원하는 것을 속히 하라'고 하셨다(요 13:27)(5). 그러나 예수님은 그 자신에게 죄를 범한 악의 저자가 되지는 않으셨다. 유다의 악한 계획을 그저 행하라고 허락하신 것뿐이다. 그런데 여기서 거짓말하는 영이 하나님의 허락을 받았을지라도 그들의 은사를 오용한 선지자들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들은 왕이 정확하게 듣기를 원했던 것을 말했다. 그들의 말은 왕의 소원의 반항에 불과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의 의지를 무시하셨거나 강제하신 것이 전혀 없으셨다. 아합에게는 거짓말하는 선지자의 메시지와 여호와의 선지자의 메시지 둘이 다 있었다. 그런데 그가 운명적으로 길르앗 라못을 치러 가기로 자신이 결정을 하였다. 이런 견지에서 본문은 문자적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 명령은 거짓 영에 대한 허용으로서만 보아야 한다(6).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배우는가? 아합 왕에게는 진리와 거짓의 예언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있었다. 그런데 진리를 배척하고 거짓을 택하고 말았다. 이것은 바울이 데살로니가후서 2:11-12에서 그들이 모두 심판을 받도록 진리를 배척한 자들에게 유혹을 저희 가운데 역사 하신다는 언급과 유사하다. 따라서 이 구절은 누구든지 진리를 거역하면 거짓의 유혹을 받아 심판 받게 되고 만다는 경고이다(7).
주 1. The Zondervan Pictorial Encyclopedia of the Bible ,Vol.I(Grnad Rapids: Zondervan, 1976), p.81 2. C.F. Keil, 1 & 2 Kings(Grand Rapids: Eerdmans, 1980), p.277 3. R.D. Patterson and Hermann J. Austel, 1 & 2 Kings, E. B. C. Vol.4(Grand Rapids: Zondervan, 1988), p.165 4. Walter C. Kaiser, Jr., Hard Sayings of the Old Testament(Downers Grove: IVP, 1988), pp.119-120 5. The New Bible Commentary, Ibid., 6. Jamieson, Fausset & Brown, Commentary on the Whole Bible(Grand Rapids: Zondervan, 1961), p.269 7. J. Carl Laney, Answers to tough Question(Grand Rapids: Kregel, 1997), p.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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