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세메스 사람 50,000명이 죽었는가?
RevSuh  2008-07-30 22:21:32 hit: 3,887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본 고로 그들을 치사(오만) 칠십 인을 죽이신지라 여호와께서
    백성을 쳐서 크게 살륙하셨으므로 백성이 애곡하였더라"    (삼상 6:19)

이 본문에서 우리는 어떻게 주전 11세기에 벧세메스와 같은 적은 도시에 50,000명 이상의 인구가 살수 있었을까?  정말 법궤 안을 들여다 본 사람 5만 명이 죽었는가?  왜 저들은 죽어야 했는가 하는 의문을 품게 된다.
  
먼저 벧세메스란 곳부터 알아보고 문제를 풀어보자.
벧세메스란 말은 태양의 신전이란 뜻이며 이스라엘 이전 시대에 태양신에게 봉헌된 도시에 대한 이름이었다.  벧세메스란 곳은 아래 세 지역에서 다같이 나온다.

1. 위 갈릴리 지방: 납달리 지파의 거주지였던 가나안 도시였다(삿 1:33; 삼하 24:6,7).  성경적으로 벳아나와 납달리의 벧세메스는 상부 갈릴리 중앙에 위치한 곳이었다(삿 1:33).
2. 아래 갈릴리 지방: 잇사갈 지파 지역의 변방에 있는 도시였다(수 19:22).  이곳은 납달리 경계 잇사갈 지역의 북쪽에 있었다.
3. 유대 지방: 유다 지파 거주의 북쪽 경계의 하나였다(수 15:10).  이곳은 이르세메스(수 19:4)와 헤레스 산으로 알려지기도 하였다(삿 1:35). 성경 역사상 이곳 벧세메스는 유다의 북쪽 변방의 경계표였으나(수 15:10) 이르세메스란 이름으로는 단 지파에 속해 있었다(수 19:4).  그러나 단 지파는 아모리 족에게 밀려 하레스산 지역인 벧세메스를 차지할 능력이 없었다(삿 1:35).  이 도시 자체는 아론의 후손에게 주어졌다(수 21:16; 대상 6:59).

언약궤가 불레셋 사람들에 의해 이스라엘로 돌아 왔을 때 그 궤는 소렉 계곡을 거쳐서 벧세메스로 운반되었다(삼상 6장).  언약궤는 기쁨과 제사로 영접되었으나 후에 어떤 사람들이 법궤 안을 들여다 본고로 죽게 되었다(삼상 6:19-21).  그결과 그 궤는 기럇여아림으로 옮겨가게 되었다⑴.
  
그러면 과연 벧세메스 사람 5만 명이 죽었는가?
그렇다면 그 도시에는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살고 있어야 했다.  따라서 이 문제는 그렇게 쉽게 설명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사무엘하 24:15에서는 염병으로 죽은 자가 7만 명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본문에서 그 5만 명이 죽은 이유가 법궤 안을 들여다보았기 때문이라는 말에서 어떤 빛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법궤는 사실상 큰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3.3히트 길이에 2.25 히트 넓이였다.  따라서 열 사람만 둘러서도 그 법궤는 다른 사람들이 볼 수가 없었다.  따라서 5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모두 법궤 안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이렇게 보면 5만 명 대신에 70명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인 해석일 것이다.  또 히브리 문법에 따라서 50,070이라는 숫자가 쓰인 곳은 이곳밖에 없으며 정상적인 어법으로 읽는다면 칠십 인과 오만인 그렇지 않으면 오만 인과 칠십 인이 되어야 한다.  일반적인 방법은 먼저 큰 수를 쓰고 작은 수가 뒤따라오는데 이 경우는 거꾸로 되었다.  따라서 5만인과 70인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숫자의 지시는 언제나 접속사 그리고 와 함께 써야 했는데 여기서는 생략되었다⑵.  이렇게 이 본문에서 정상적인 어순의 위 두 가지 경우가 아닌 표현을 한 것을 보아 이 본문이 전사의 과정에서 오는 부주의 때문에 오전 됐을 가능성이 크다.
  
또 주후 1세기 조세프스(ANTIQUITIES, 6,1,4)는 벧세메스에서 죽은 사람들의 수를 언급하면서 5만 명은 이야기하지 않고 다만 70명만 이야기하였다.  그뿐 아니라 5만인을 제외시킨 사본들도 있다⑶.
  
다음으로 여기 죽은 70인들은 누구였는가?
어떤 학자들은 여기 벧세메스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치신 것은 그들 중에 제사장들이 없었기 때문이며 여호와는 당신의 궤를 부정한 손으로 가까이 하는 것을 허용하실 수 없으셨다고 한다⑷.  이렇게 해석하는 이유는 7:1에 와서 법궤를 옮겨간 후에 적법하게 구별된 제사장을 세워 돌아보게 했기 때문이다.  이 해석에 따르면 여기 죽은 사람은 제사장이나 제사장의 아들들이나 레위 인이 아니라 평범한 벧세메스 사람들이었다.
  
마지막으로 법궤를 들여다보는 것이 왜 그리도 큰 죄가 되는가?  그것은 저들이 하나님의 임재와 같은 거룩한 언약궤와 그 안에 둔 십계명의 두 돌판을 경외심 대신에 호기심을 만족시키려고 들여다보았기 때문이다.  저들은 이렇게 불경한 태도를 취함으로 하나님의 거룩을 손상시켰던 것이다.
  
마침내 법궤는 벧세메스에서 기럇여아림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그곳은 벧세메스에서 동북쪽으로 24 Km상에 있었으며 유대와 단 그리고 베냐민 변경에 있었다(수 15:9,10,60; 18:14,15).  그러면 왜 궤를 옮겨야 했는가?  벧세메스 사람들은 이 사건으로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누가 능히 서리요 하며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여기 앞에 서리요 라는 말은 참석한다. 경배한다. 예배한다는 뜻이요(창 19:27; 신 10:8; 19:17; 삿 20:27-28),  또 멈춰 선다, 저항한다 또는 터전을 지킨다는 뜻이다(삿 2:14; 왕하 10:4)⑸.  그러므로 벧세메스 사람들은 그들의 누구도 그들의 어느 곳에도 궤를 머물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우리는 이 본문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하나님의 거룩이 얼마나 두려운가?  특별히 죄인은 스스로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죄인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고 그에게 예배와 경배를 드리는 은혜를 위해서는 반드시 속죄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⑹.

   주
   1. Pictorial Encyclopedia of the Bible. Vol. I,(Zondervan, 1976), pp.545-548
   2. Norman Geisler & Thomas Howe, When Critics Ask(Victor Books, 1992), p.156
   3. G.L. Archer, Encyclopedia of the Bible Difficulties(Grand Rapids: Zondervan, 1982), p.169
   4. P.Kyle McCarter, Jr. I Samuel(New York: Doubleday, 1980), p.131
   5. Ralph W. Klein, I Samuel(Waco: Word, 1983), p.60
   6. Cf. Barnes, Notes, I Samuel to Esther(Baker, 1987), p.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