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이 구절은 역사적 기록이 없는 에디오피아 사람 세라에 대해서 언급을 할 수 있는가?
RevSuh  2008-07-31 17:56:18 hit: 2,741

    "구스 사람 세라가 저희를 치려하여 군사 백만과 병거 삼백승을 거느리고  마레사에 이르매"    (대하 14:9)

아사가 유다 왕이었을 때 그는 백만 명의 병력을 이끈 에디오피아 사람 세라와 대결하였다. 그러나 만일 그런 인물이 없다면 이 기록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성경에 세라란 인물이 일곱 명이나 나온다.  여기 세라는 위에서 언급되듯이 에디오피아의 왕으로 아사 통치 때 대군을 거느리고 유다를 침입해 왔다.  위기에 처한 아사는 기도했고 하나님께서 에디오피아 군대를 치시므로 그 전쟁에서 승리하였다.  세라는 에돔족속의 주요 그룹이었으며(창 36:13, 17, 33; 대상 1:37, 44) 구스는 일반적으로 애굽과 에디오피아를 가리키는데 누비아의 성경적 지명으로(창 10:6; 사 20:3; 시 68:31 등) 아마도 학개서 3:7에서처럼 미디안과 연관이 있거나 민수기 12:1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여하튼 그 곳은 그 땅 남단의 어떤 부분을 가리킬 것이다(1).
  
세라는 주전 900-897년사이 아사 제 십년과 십사년 사이에 유다를 침공해 왔는데 이 시기는 키친에 의해 산정된 연대에 따르면 바로 오솔콘(Pharoh Osorkon) 통치 25년에서 29년에 일치한다(TIPE, 467). 그러나 히브리나 애굽 인의 세라란 이름들과 오솔콘(Osorkon)은 서로 불합하지 않는다.  따라서 두 개인들이 같은 이름을 가진 경우라고 생각한다. 오솔콘은 리비아의 왕이었고 세라는 왕으로 부르지 않은 누비아 사람(구스인)이었을 것이다. 오솔콘은 이미 늙었고 시삭과 약탈 경쟁을 위해서 누비아인 장군 세라의 지휘 아래 팔레스틴으로 군대를 급파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이 역사적 재건을 받아들이지 않고 다른 견해들을 제시한다.

  1. 벨텐(Welten): 전체 이야기는 저자가 꾸며 낸 것이다.
  2. 올브라이트(Albright): 세라는 다만 아사의 추적의 마지막에 가서만 언급되었으며 침략의 원천으로서는 아니다(14:11).
  3. 다른 학자들은 애굽의 참전을 제외시킨다.  그 이야기에서 애굽은 언급되지 않았다.  구스는 누비아가 아니라 차라리 아카바만의 북동 해안에 위치한 미디안의 영토이다.  하박국 3:7에 구산의 장막은 미디안의 장막과 병행 구절이다.  모세는 구스여인과 결혼했는데(민 12;1) 많은 학자들이 이 구절이 같은 여인에 대한 언급을 한다고 생각한다(2).

따라서 세라는 확실히 구스 인이었다. 그리고 세라의 군대 수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백만의 군사라면 삼백의 병거수는 너무 적다는 것이다. 이 경우 역시 서사자의 실수가 있었을지 모른다. 아사가 그의 군사의 수의 열세로 인해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한 것을 보면 상당수의 군대였을 것은 자명하다. 그리고 세라의 역사성에 대해서는 이미 밝힌 대로이며 설사 만족할만한 역사적 사실이 아직 없다고 하여 성경이 잘못되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그것들도 언젠가는 국가적인 역사적 사실의 발견이나 고고학적 발견으로 밝혀질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
     1. Sara Japhet, I & II Chronicles(Louis Ville: Westminster, 1993), p.710
     2. Raymond B. Dillard, 2 Chronicles(Waco: Word, 1987), p.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