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사의 죽음은 정당한가?
RevSuh  2008-07-31 11:38:58 hit: 3,651

     “저희가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의 잘못함을 인하여
      진노하사 저를 그곳에서 치시니 저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삼하 6:6-7)

불레셋과의 싸움에서 이스라엘은 법궤를 빼앗기고 말았다. 그러나 불레셋 땅은 그 법궤 때문에 여러 가지 재앙을 받게 되어 마침내 이스라엘 땅으로 되돌려 보내게 된다.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그 법궤를 옮겨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두게 되었는데 거기서 20년을 지냈으며(삼상 7:1) 사무엘과 사울 아래서 40년 그리고 다윗 아래서 10여 년을 합해서 70여 년을 지내게 된다.
  
다윗은 예루살렘에 왕도를 정한 후 법궤를 그곳으로 옮겨가려고 했는데 그것은 일찍이 그의 서원에 대한 이행이었으며 너무도 당연하고 선한 목적이었다. 법궤를 옮겨가는 것은 자연히 축제의 분위기가 되어 다윗과 모든 이스라엘 족속이 하나님 앞에서 찬송을 부르며 악기를 연구하며 춤을 추게 되었다.
  
그런데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법궤가 미끄러져 땅에 떨어지게 되자 웃사가 그것을 막으려고 법궤를 잡았다가 하나님이 치시므로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 구절에 와서 하나님께서 웃사에게 불공평하셨다고 생각한다.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가려는 것은 좋은 목적에서였으며 그 법궤가 땅에 떨어지려는 것을 붙들어 안 떨어지게 하려고 한 것도 역시 그 목적에서 선하였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그를 죽이셨는가? 설사 그가 잘못한 접이 있다고 해도 그를 죽이신 것은 지나치게 가혹한 형벌이 아니었는가? 그래서 어려운 말씀이다.
  
그러면 기쁨이 슬픔으로 변해 버린 웃사의 이 죽음은 어떤 이유에서였는가?
앞서서 다윗은 도움이 필요할 때, 예를 들어 불레셋에 의한 공격을 받았을 때는 언제나 하나님께 물었다(삼하 5:19, 23). 그러나 법궤를 옮겨가는 중요한 일을 하면서 다윗은 하나님께 묻지 않았다. 그것은 아마도 하나님께서 이미 법궤를 옮기는 데 대한 교훈을 분명히 주셨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법궤는 그 궤에 금고리를 달고 장대에 꿰어 레위 사람들이 어깨에 메고 운반하되 그 안을 볼 수 없도록 베일로 덮어야만 했다(민 7:9; 4:5-6).
  
이것이 사실이라고 보면 다윗은 하나님의 뜻이 명백했음에도 불레셋 이교도로부터 그가 배운 다른 지식을 더 중시한 것 같다. 그는 법궤를 새 수레에 실었다(삼하 6:3).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결코 새 수레를 사용하는 데 대해 어떤 것도 말씀하지 않았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과 법에 대조되는 사람의 착상이었다.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의 방법 대신 잘못된 사람의 방법으로 법궤를 옮겼다. 이것은 분명 다윗의 잘못이었으며 그는 하나님의 책망을 받다 마땅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남는데 그러면 왜 다윗 대신에 웃사가 벌을 받았는가?
민수기 4:15에 의하면 법궤를 옮기는 것은 고핫 족속과 레위 가족으로 한정되었으며 그들까지도 거룩한 것은 만지지 말아야 했다. 그런데 웃사는 고핫 족속도 아니고 레위 인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는 민수기 4장과 7장에서 율법이 가르치는 것을 알아야 했다. 웃사의 동기는 다윗의 것처럼 순수하였으나 다윗이 한 것과 똑같이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무시하였다. 그는 거룩한 것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거룩을 범하는 죄를 지었고 그 값을 받았다. 같은 맥락에서 법궤는 특별한 방법으로 그의 백성 가운데 계신 하나님의 임재를 가리켰다(출 25:22). 조세푸스(Josepus)는 웃사의 죽음은 제사장이 아닌 그가 거룩한 법궤를 붙잡았기 때문이라 하였다. 웃사의 죽음은 그가 수년 동안 법궤를 책임지고 있었던 가족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당연하였다.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게 될 때 선한 목적과 올바른 정신의 가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일은 역시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야만 한다. 선한 목적을 수행하는 것이 자동적으로 올바른 방편을 사용하는 것을 수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레에 법궤를 실어 보낸 불레셋 사람들의 죄는 하나님께서 벌하지 않으셨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율법의 지식이 없는 저들에게 보다 더 자비하셨음을 알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예수님께서는 심판 날에 가버나움보다 소돔과 고모라가 더 견디기 쉬우리라 하셨다(마 11:23-24).

  주
  1. C.F. Keil & F. Delitzsch, Joshua, Judge, Ruth, 1 & 2 Samuel(Grand Rapids: Eerdmans, 1980), p.330
  2. Walter C. Kaiser, Jr., Hard Sayings of the Old Testament(Downers Grove: IVP, 1988), pp.117-118
  3. A.A. Anderson, 2 Samuel(Dallas: Word Book, 1989), p.104
  4. Joyce G. Baldwin, 1 & 2 Samuel(Downers Grove: IVP, 1988), p.208
  5. Walter C. Kaiser, Jr., op.c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