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암 8:11-12) 아모스 선지자는 북왕조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주전 7793-753년)의 치세말에 활동하였다. 그는 계속해서 북왕조의 배교에 대해 경고해 왔는데 멸망을 앞에 둔 북왕조에 양식의 기갈 대신 말씀의 기갈이 있으리라 한다. 멸망을 앞에 둔 이스라엘에 양식의 기갈이 심하지 않았겠나? 그런데 왜 여호와의 말씀인가? 먼저 날이 이르리라는 의미부터 알아보자. 일반적으로 보라 그 날이 오고 있다는 말은 여호와의 날이요 심판의 날을 가리켰다. 그러나 여기서와 9:13에서는 그의 시대, 그의 때를 가리켰다(참고, 2:16; 3:14; 8:3, 9, 13). 그리고 보다 더 긴 형식으 로 쓴 것은 예례미야의 특성이었다(예; 7:32; 9:25; 16:14; 19:6; 23:5; 30:3; 31:27, 31, 38). 그리고 아모스서와 예레미야서에서 그 형식은 여기서처럼 심판을 소개하는 고시나 구원의 약속을 알려주는 것이었 다(암 9:13).1) 따라서 여기서 그날은 이스라엘 북왕조의 최후 10년간을 가리키고 있다.2) 다음으로 왜 하나님의 말씀에 기갈이 오게 되었는가? 왜 이스라엘은 그의 선지자들에게서처럼 하나님께로부터 메시지를 들을 수 없게 되었는가? 저들은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말씀을 얻어 보려고 애썼으나 허사였다. 이는 마치 기근으로 죽게 된 사람이 양식을 찾아 방황하는 모습과 흡사했다. 바다에서 바다는 일반적으로 지구의 극단을 가리켰으나(시 72:8; 슥 9:10) 여기서는 이스라엘의 전 영토 다시 말해서 사해에서(남쪽) 지중해(서쪽)까지를 가리켰다. 그러면 왜 이스라엘이 그 어디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얻지 못하게 되었는가? 그것은 저들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기 때문이다(2:11-12; 7:10-13,16). 그들은 하나님의 선지자의 예언을 금했으며(2:12), 선지자들을 박해하고 살해했다. 따라서 말씀의 기근은 그들에게 적절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그들은 말씀의 가치를 바로 알지 못하고 버림으로 영원히 그 말씀을 상실해 버리고만 셈이다(참고, 눅 17:22; 요 7:34). 그런데 말씀의 기갈은 육신의 양식의 기갈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중요했다. 그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기 때문이다(마 4:4). 누구나 떡의 자양이나 물의 신선함 없이 살수 없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과 인도하심 없이는 아무도 살수가 없음과 같기 때문이다.3) 그들에게는 그들의 굶어 죽어 가는 영혼에 자양분을 공급해 줄 생명의 떡이 없었으며 그들의 무서운 갈증을 해소시켜 줄 복음의 물이 없었다.4) 그러면 말씀의 기갈은 어떤 말씀을 가리켰는가? 여기 여호와의 말씀이 모세의 율법이냐? 그렇지 않으면 선지자의 계시냐? 선지자의 계시가 율법 안에 그리고 율법에 기초했다고 볼 때 최선의 해답은 그 둘을 다 가리킬 것이다.5) 그러나 그 때에 히브리 성경을 파괴했다거나 이스라엘에게서 제거시켰다는 역사적인 증거가 없으므로 여기서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직접적인 말씀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때 이스라엘이 도움과 인도를 구할 것이나 하나님은 침묵하실 것이다(참고, 겔 7:26; 말 3:7). 하나님은 그들에게 어떤 사자도 보내지 않으실 것이다. 그들이 아직도 히브리 성경들을 소유하고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선지자를 통해서 오는 여호와의 말씀은 기근일 것이다.6) 하나님의 말씀의 기근과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는 무엇인가? 이스라엘이 마침내는 여호와를 찾게 될 것이다(암 5:4-6). 그러나 여호와를 찾지 못할 것이다. 그때는 너무 늦고 말았다.7) 도움을 구하는 반응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말씀을 받을 수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서 그의 얼굴을 감추신 것이요 그들을 배격하시고 그들의 원수들에게 버리신 것을 의미한다.8) 오늘 우리 교회는 말씀의 값진 가치를 바로 인식해야 하며 순종해야 하며 존중해야 한다. 말씀은 생명의 원천이기 때문이다.9) 오늘 우리는 어디서나 너무 쉽게 말씀을 들을 수 있어서 오히려 말씀을 경시하고 등한히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경향은 말씀의 풍요 속에 말씀의 기갈이라는 아이러니한 결과를 낳고 있다. 따라서 이 또한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라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주 1. David Allan Hubbard, Joel & Amos(Downers Grove: IVP. 1989),p.223 2. 글리슨 아처, 성경 난제 백과사전, 황영철역(서울: 생명의 말씀사, 1990), p.406 3. David Allan Hubbard, Ibid., 4. Theodore Laetsch, Minor Prophets(St. Louis: Condordia, 1975), p.182 5. Douglas Stuart, Hosea-Jonah(Waco: Word, 1987), p.386 6. Norman Geisler and Thomas Howe, When Critics Ask(Victor books, 1992), p.303 7. The Bible Knowledge Commentary, Old Testament(Victor Books, 1985), p.1449 8. Billy K. Smith and Frank S. Page, Amos, Obadiah, Jonah(Brodman & Holman,1995), p.151 9. Thomas E. McComiskey, Amos, E.B.C. Vol.7(Grand Rapids: Zondervan,1985), p.3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