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웃음을 논하여 이르기를 미친 것이라 하였고 희락을 논하여 이르기를 저가 무엇을 하는가 하였노라" (전 2:2)
한글 표준새번역에서는 이 구절을 "알고 보니 웃는 것은 미친 것이고 즐거움은 쓸데없는 것이다"라고 번역하였다. 두 번역이 의미상에는 차이가 없으나 전자는 웃음이나 희락을 의인화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성경이 어느 때는 웃음을 선한 것으로 말씀하지만 다른 때에는 악한 것으로 말씀하고 있다는데 있다. 위의 본문에서 저자는 웃음을 미친 것으로 보고 희락에 대하여 그것이 성취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반문하고 있다. 또 7장 3절에 가서는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라고 한다. 예수님께서도 웃는 자를 향하여 "화있을진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하셨다(눅 6:25). 그 밖에도 눈물을 흘리며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둔다는 말씀이 있다(시 126:5). 그러나 반대로 성경에는 웃음을 권장하고 있는 구절들이 있다. 예를 들어 잠언 17:22에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하였고, 해 아래서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 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고도 하였다(전 8:15). 그러면 웃음은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본문에서 솔로몬은 모든 웃음이나 오락을 악으로 정죄하거나 무익하다고 하지 않았다. 다만 웃음은 생의 기본적인 문제들 그 중에서도 특별히 죽음의 문제를 위한 해결에는 완전히 실패하고 만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전도서 전체를 통해서 기쁨의 삶을 추천하면서도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는 즐거움에 참여하는 것을 경고한다(1). 오락이 우리의 삶에 유익을 줄 수 있는 것은 사실이나 진정한 행복은 오락에서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다(2). 따라서 웃음이나 오락의 즐거움은 해 아래 머무는 자의 필요를 채우는데 실패한다는 것이다(3). 이제 문제의 해답을 정리해 보자. 전도서의 다른 구절에서 솔로몬은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다(전 3:1, 4) 하였다. 따라서 웃음이 선한가 악한가는 때와 경우에 따라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가이슬러(Norma Geisler)는 성경이 웃음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는지를 아래와 같이 대조하여 요약하였다.
웃음이 선할 때 |
웃음이 악할 때 |
즐거운 삶의 방편 |
생 자체의 목적 |
행복의 표현의 방편 |
행복을 얻는 방편 |
즐거운 정신에서 |
소란스러운 조서에서 |
분별있는 즐거움 |
무분별한 즐거움으로 |
. 그러므로 위의 본문에서 경계하는 웃음은 사려 깊은 즐거움이나 종교적인 절기의 기쁨(민 10:10; 삿 16:23) 그리고 하나님을 섬김에서 오는 기쁨(신 28:47)이 아니다. 웃음과 환락을 생의 목적으로 삼고 그것이 진정한 행복을 가져 올 수 있다고 보는 일종의 쾌락주의를 경계한 것이다. 이런 쾌락은 하나님을 떠나게 만들며(욥 21:12-14), 영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한다(딤전 5:6).
주 1. Duane A. Garrett, Proverbs, Ecclesiastes, Songs of Songs(Nashville: Broadman, 1993), p.291 2. Beacon Bible Commentary, Vol.3(Kansas City: Beacon, 1967), p.555 3. Michael A. Eaton, Ecclesiastes(Downers Grove: IVP, 1983), p.65 4. Norman Geisler and Thomas Howe, When Critics Ask(Victor Books,1992), p.2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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