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족속이 그 이름을 만나라 하였으며 깟씨 같고도 희고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더라" (출 16:31)
만나는 애굽에서 해방되어 가나안을 향해 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먹은 양식이었다. 만나는 매일의 양식이었으며 누구에게나 적거나 많지가 않았다. 만일 누가 하루 분 이상으로 많이 거두어 비축했다면 썩어서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러면 그 만나는 광야에 상존했던 식물이었는가? 그렇지 않으면 초자연적으로 하나님이 그 백성들을 위해 예비하신 양식이었는가? 도대체 만나는 어떻게 생겼으며 어떤 종류의 양식이었는가? 그것은 맛이 기름 같았는가? 그렇지 않으면 꿀 같았는가? 이 문제는 적어도 지난 1세기간 거듭하여 본문 비평을 통해 논란이 되어 왔다. 만(man)이란 히브리어는 음식이라는 뜻을 지닌 애굽어 만누(mannu)에서 왔다고 본다(Francis Nichol). 칠십인 역에서는 이것이 무엇이냐로 번역했는데 이 번역은 15절에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그들이 몰랐기 때문이었다. 뵐(F.M.Th. Bohl)은 만(man)의 형식은 무엇이라는 옛 셈어 관사였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만나란 말은 14세기에 기록된 문서였던 팔레스틴 아말나 서신들에서 나타난다. 따라서 뵐은 이것이 무엇인가가 적절한 번역이라고 결론한다. 민수기 11:9에 의하면 만나는 이슬같이 내렸으며 땅에 작고 동글며 서리같이 세미한 것이었다(출 16:14). 그것은 신선한 기름 맛이었고(민 11:8) 깟씨 같고 희고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다(출 16:31). 따라서 만나는 씨 크기와 모양의 어떤 것이었다⑴. 시편에서는 하늘에서 온 양식이요 전능하신 이의 떡이요(시 78:24) 하늘의 떡이었다(시 105:40). 이 만나는 아침에 내렸다가 이슬처럼 사라졌다(출 16:14). 따라서 아침 일찍이 일어나야 거둘 수 있었다. 만나에 대한 다양한 이해와 설명이 시도되었다. 그 중에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바위에서 자라는 이끼(Lichen)로 바람에 날려가기에 충분하리만큼 가벼운 콩알 크기 만한 작은 알 같은 것을 만들어 낸다. 이것은 중앙아시아 원주민들이 단맛을 위해 자주 채집한다(F.S. Bodenheimer). 보다 더 근래에 수납되는 견해는 만나는 중앙 시내 산들의 골짜기 시냇가에 있는 위성류(Tamarisk) 덤불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6월중에 여기서 3주 내지 6주간 이런 덤불의 연한 잔가지들에 콩알 크기로 단 물질의 알갱이들이 돋아난다. 그것들의 양은 겨울비가 오는데 따라서 많고 적음이 결정된다. 이 단 물질은 그 식물 자체의 껍질에서 생산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오늘날 알려진 바로는 곤충들이 이 위성류의 연한 가지에다 꿀을 배설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알갱이들은 작고 끈끈하며 밝은 색깔에 아주 달다(Werner Keller). 이 위성류 만나는 시내 반도에서 6월과 7월 사이에만 발견된다. 그러나 이런 위성류의 만나는 성경의 언급과 맞지 않는데 그것을 구을수가 없으며 단지 몇 일간만 보관이 가능하다⑵. 더구나 이런 위성류에 생기는 만나가 곤충들이 배설하는 꿀이라면 성경이 언급한 200만 명의 이스라엘 백성이 먹을 만큼 많은 양을 생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날마다 만나를 먹었으며 거의 40년을 지속적으로 먹었으므로 이런 자연적인 만나(?)를 가지고는 공급이 불가능하였다. 그러므로 여기 만나는 자연산으로 어떤 식물에서 생산되거나 어떤 곤충들이 배설해 내는 꿀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위해 예비하신 초자연적인 양식이었다⑶. 그러면 이 만나는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가? 이 만나의 목적은 후세들에게 그의 백성을 위해서 예비하시는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기억케 하는데 있었다(참고; 신 8:3)⑷. 더나가서 만나는 안식일에는 거둘 수가 없었다. 누구든지 부지런히 6일을 일하면 일용할 양식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만나에서 배우는 더 중요한 진리는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다. 그러나 하늘에서 내려오신 떡이요 만나이신 예수님은 영생의 떡이시다(요 6:32-35). 따라서 그를 믿으면 영원히 죽지 않고 사는 영생의 축복을 받게 된다(요 6:51; 3:16)는 사실이다. 이렇게 볼 때 그의 백성의 육신적 배고픔을 만족케 하시려는 하나님의 관심에 대한 구약의 증거는 생명의 양식으로 구축되셔야 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약 성경의 증언에 기본적인 기초를 제공해 준다고 할 수 있다⑸.
주 1. John 1 Durham, Exodus(Waco: Word,1987), p.226 2. John J. Davis, Studies in Exodus(Grand Rapids: Baker, 1988), pp.190-192 3. Larry Richards, Bible Difficulties Solved(Fleming H. Revell, 1993),p.57 4. John J. Davis, Ibid., p.193 5. Brevard S. Childs, The Books of Exodus(Philadelphia: Westminster, 1976), p.3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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