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바로가 그 모든 신민에게 명하여 가로되 남자가 나거든 너희는 그를 하수에 던지고 여자여든 살리라 하였더라" (출 1:22)
이스라엘 백성이 처음 애굽으로 내려가게 된 것은 가나안 땅에 흉년이 심해 살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 흉년 때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의 초청으로 야곱은 그의 아들들과 그 가족들을 데리고 애굽의 고센 땅에 들어가 살게 되었다. 애굽으로 내려간 가족의 수는 야곱의 혈족으로 모두 70인이었다(출 1:5). 그러나 그들이 애굽 백성들보다도 더 잘 살 수 있었던 기간은 그리 오래지 못했고 요셉을 알지 못하는 바로가 다스리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예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런데 애굽 인들이 그들을 강압한 기간이 400년이나 되었다. 미셀(Michell)의 계산에 의하면 야곱이 애굽에 내려간 때가 주전 1879년이었으며 출애굽은 1449년에 있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출애굽은 주전 1447년으로 보며 애굽에 있었던 기간은 4대였다(400년, 창 15:13; 430년, 출 12:40). 이것이 사실이라면 왜 그 백성을 사랑하시고 돌보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400년 이상이나 노예로 지내게 하셨는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가서 4대를 지내게 된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었으며 아브라함에게 보여 주신 사실이요 약속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 백성이 애굽에서 4대를 머문 후에 가나안으로 올라오리라 약속하셨다. 그러면 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돌보심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오랜 시간 애굽에 체류해야 했는가? 거기에는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가르치시려는 귀한 진리가 있었다.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그들의 구원의 대장이신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처럼(눅 24:26) 환난을 통과해야만 한다(창 14:22). 다른 한편 하나님은 자주 그들의 궁핍이 기적적으로 공급되도록 그들의 손실을 배상으로 상쇠하시는 것을 깨닫기를 바라셨다⑴.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400년간이나 애굽에서 노예로 살게 하신 것은 그들을 훈련시키시려는 계획이었 으며 가나안 거민들에 대한 그의 인내였다. 아직 아모리 족속의 죄가 관영하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은 침략전이 아니라 하나의 공의의 시행이었다⑵. 그 뿐만이 아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거주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가나안은 전장이었다. 북쪽의 강대국과 남쪽에 애굽이 가나안에서 발전한 적은 도시 국가들을 지배하기 위해 각축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애굽의 안전은 그 백성이 크게 번성할 수 있는 기회였다(1:7). 그리고 그 곳에서의 압제와 고역은 마침내 하나님께 부르짖음으로 해서 해방을 가져 올 수 있게 하였다⑶. 이 사건에서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진리를 배우게 된다.
1. 하나님은 일반 섭리로 세계 역사를 다스리신다. 2. 민족들은 불원간 그들의 역사 속에 내재하는 심판을 위해 무르익게 된다. 3. 하나님은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 세계의 역사 안에서 특별한 계획을 수행하신다 4. 아브라함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이런 신비스러운 역사적 견해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들은 역사를 수수께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진리이다⑷.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돌보시며 사랑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 세상에서 성별되게 하시기 위해 일시적으로 훈련의 기회를 허락하시기도 한다. 따라서 신자의 일시적인 고난과 시련은 결국 축복을 목적한 것이다. 고난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과 뜻이 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 분의 거룩한 성품에 일치한다. 그러므로 시련 때에도 신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어야 하며 그 시련의 선한 목적을 이룰 수 있도록 인내해야 한다.
주 1. H.C.Leupold, Exposition of Genesis, Vol.1(Grand Rapids: Baker, 1987), p.485 2. Derek Kidner, Genesis(Downers Grove: IVP, 1969),p.125 3. Larry Richards, Bible Difficulties Solved(Fleming H. REvell,1993),p.49 4. Gerhard Von Rad, Genesis(Philadelphia, Westminster, 1972),p.1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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