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람 자손 중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 땅 이방 여자를 취하여 아내를 삼았으나 이스라엘에게 오히려 소망이 있나니 곧 내 주의 교훈을 좇으며 우리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의논을 좇아 이 모든 아내와 그 소생을 다 내어 보내기로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 (에스라 10:2-3)
어느 형편에서나 이혼은 불행한 일이다. 신명기 24장에 아내를 내어 보낼 수 있는 예외적인 말씀이 있기는 하나 그것이 하나의 정해진 법으로서 시행 되었던 것은 아니다. 말라기 2:16대로 하나님께서는 이혼을 미워하신다. 그래서 어느 학자들은 오경의 법전에서는 외국인과의 결혼을 반대하는 강한 암시가 있었을지라도 특별히 그 결혼을 금지시킨 곳은 없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여기 율법대로 할 것이라(3절)고 한 말씀은 에스라가 발의한 규례를 가리킨다고 본다(1). 그러나 이방 가나안 족속을 여자까지 포함해서 모든 호흡이 있는 자는 다 죽이라고 하신(신 20:16) 그 말씀 속에 이방 여인과의 결혼을 금하신 교훈도 들어 있다고 하겠다. 여기 기록한 사건은 신명기 24장과는 다른 경우이다. 에스라와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은 참 하나님의 예배만을 원하였다. 저들은 그들이 포로되어 갔던 기억 속에서 하나님을 떠난 우상숭배의 죄가 얼마나 크고 중한 것임을 절감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우상숭배에 빠지게 된 원인 중에 하나가 이방의 이교적인 여인들을 아내로 맞이한 때문임도 잘 깨닫고 있었다. 그런데 주전 458년 아닥사스 7년에 에스라와 함께 제2차 유대인 포로들이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스룹바벨 아래서 발전한 그 공동체 안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보게 되었다. 예루살렘의 새 공동체의 지도자에 의해 영향을 받은 제사장과 레위인 그리고 다른 백성들이 그 땅에서 살던 이방 여인들과 혼합 결혼을 하고 있었다. 에스라는 그 광경을 목도하고 그의 옷을 찢고 머리털을 뽑으며 크게 슬퍼하였다. 에스라가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고민할 때 백성의 지도자 엘람 자손 중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가 일어나 모든 이방여인과 그 자녀들을 내어 보내기로 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기로 결심하였다. 에스라 10장에 나온 명부에 따르면 그들 중에 단지 113명만 이방인 아내를 취했는데 17명의 제사장들과 6명의 레위인들 그리고 1명의 노래하는 자와 3명의 문지기 그리고 86명의 평민이었다. 그 때 이스라엘 가족의 전체 인원이 290,000명가량이었으니 10,000명중에 4명꼴이요 대략 0.4퍼센트에 불과했다. 그러나 하나님과 그 백성과의 결혼 계약에서 그 백성은 계약밖의 사람들과 결혼이 금지되었다(2). 따라서 모든 외국인 아내와 그 자녀들을 다 쫓아내게 되었다. 그러면 그 일은 정당하였는가? 저들의 자녀들이야 무슨 죄가 있었겠는가? 이 문제에 대해 로저스(R.W. Rogers)는 그 처사는 아주 야만적이고 잔인하며 흉악한 행위였다. 종교의 이름으로 범해진 얼마나 큰 죄인가? 에스라가 울고 금식한 것은 가련한 여인들과 고통받을 그 자녀들을 위한 슬픔이 아니라 그 결혼 때문이었다. 그가 조금만 더 자비의 동정심이 있었더라도 그는 보다 더 인간처럼 보였으리라고 비난한다(3). 그러나 이런 비난은 본문의 맥락과 구약의 신앙과 당시의 상황을 무시한 채 오늘의 윤리에서만 그 사건을 보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그 결혼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 데이비스(Wilton Davies)는 잠언에서 결혼에 이방여자란 말이 따라오는 경우에 그런 여자는 매춘부를 기술하는데 쓰였으며 그런 의심스러운 연합은 진정한 결혼이 아니었다. 또 그들과 사는 여인들은 매춘부들이지 아내들이 아니었다고 하였다(4). 데이비스는 여기 여자를 취해 아내를 삼았다는 말 자체가 성경에서는 불법결혼에 쓰이는 용어였으므로 그 결혼이 합법적인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본문은 그리 심각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저들에게는 자녀까지 딸려 있었으니 이혼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러면 그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출애굽기 34:11-16이나 신명기 7:1-5에서는 혼합 결혼에 대해 경고하지 않았으며 룻과 라합 그리고 모세의 아내 구스 여인 등은 그들의 결혼에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경우에는 저들이 모두 개종하였을 것이다. 그렇지 못했을 경우에는 그 결혼이 지속되었더라면 온 나라는 여호와의 참 예배에서 떠나게 되었을 것이며 결과적으로 그들은 나라를 멸망시키고 말았을 것이다(5).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혼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면 자녀들을 내어 쫓은 문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여기서 어머니들의 그들의 자녀들에 대한 종교적인 영향이 걸림돌로 간주되었다(6). 또 고대 사회에서 이혼 때 여자는 그들의 자녀를 맡았다. 하갈은 이스마엘과 함께 아브라함의 집에서 나왔다(창 21:14). 바벨론에서는 이혼한 여인들에게 그들의 자녀가 주어졌으며 재혼 전에 그들이 자라기를 기다렸다(Codex Hammurabr 137). 그러나 헬라인들은 이혼때 아버지에게 자녀를 남겼다(7). 여하튼 어머니와 함께 자녀를 내보낸 것은 서로 분리시키는 것보다는 나았다. 어린 자녀는 그들을 돌보아 줄 어머니가 필요하며 또 장성한 자녀는 그들의 어머니를 공궤할 수 있었을 것이다(8). 또 신앙면에서 볼 때 이 사건은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친족을 기쁘게 하기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 낫다는 원리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9). 그러나 오늘날의 경우는 다르다. 이런 문제에 직면했던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바울사도는 전혀 다른 처방을 해 주고 있다. 불신자가 이혼을 원하지 않거든 이혼하지 말라 하였다. 또 저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을 개종시킬 수 있다는 소망에서 이혼하지 말 것을 권면하고 있다(고전 7:13-16). 따라서 우리는 이 문제를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여기 나오는 이방여인들은 단순히 개종이 쉬울 수도 있는 불신자이기보다 대대로 우상숭배에 빠져온 여인들이었다. 그러므로 남편의 신앙으로 개종되기보다 남편을 그들의 우상숭배로 빠지게 하기가 더 쉬웠다. 이 여인들 중에는 단순히 어떤 이방여인들이기보다는 하나님께서 명확하게 결혼해서는 안 된다고 못박은 족속에 속해 있었다(스 10:30; 참고; 느 13:23). 더구나 이들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첩들이었다(신 17:17)(10). 결국 이 사건은 불행하기는 했으나 암이 온 몸에 퍼져 치명적이 될 수 있음을 안 의사가 우리 몸속에서 그 암세포를 제거하기 위해 우리 지체 중에 한 부분을 절단시키는 수술을 한 것과도 같았다.
주 1. Jacob M. Myers, Ezra, Nehemiah(New York: Doubleday, 1965), p.83 2. Walter C.Kaiser, Jr., Hard Sayings of the Old Testament(Downer Grove: IVP, 1968), p.141 3. Beacon Bible Commentary, Vol, 2 (Kansas: Beacon, 1965), p.625 4. H.G.M. Williamson, Eza, Nehemiah(Waco: Word, 1985), p.150 5. The Bible knowledge Commentary, Old Testament(Victor Books, 1985), p.670 6. F. Charles Fensham, The Books of Ezra and Nehemiah(Grand Rapids: Eerdmans, 1982), p.135 7. Edwin Yamauch:, Ezra, Nehemiah(Grand Rapids: Zondervan, 1988), pp.668-669 8. John Peter Lange, Ezra (Grand Rapids: Zondervan), p.95 9. Jamieson, Fausset & Brown, Commentary on the Whole Bible (Grand Rapids:Zondervan, 1961), p.344 10. Cf. Norman Geisler and Thomas Howe, When Critics Ask(Victor Books, 1992), p.2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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