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2:3-35과 느혜미야 7:8-38에는 바로스의 자손(두 곳에서 모두 2172명이다)으로부터 시작된 서른 세 가족의 목록이 소개되어 있다. 그런데 그 서른 세 가족의 숫자 중에서 열 네 가족의 숫자가 서로 다르다. 아쳐(G.L. Archer)는 그 차이를 아래와 같이 소개해 준다. 4명이 차이가 나는 가족이 하나(로드 와 하딧과 오노의 자손, 725명과 721명으로 서로 다르다). 6명이 차이 나는 가족이 둘(바핫모압 자손 곧 예수아와 요압 자손이 2812명과 2818명으로 다르게 기록되었으며 빈누이의 자손이 642명과 648명으로 다르게 기록되었다) 베들레헴 사람 느도바 사람에 있어서는 그 합계가 느혜미야 7:19(2067)보다도 에스라 2:14(2056)이 11명 적다. 삿두 자손의 경우에 있어서는 에스라는 945명으로 보고하고 있는데 845명(느 7:13)보다 100명이 많은 숫자이다. 벧엘과 아이 사람(스 2;28의 233명과 느 7:32의 123명)의 경우도 유사하다. 아딘 자손의 경우에는 에스라 2:15(454)은 느혜미야 7:20(655)보다 201명이 적으며 하숨 자손에 있어서는 에스라의 기록이 105명이 적다(스 9:29은 223명이고 느 7:22은 328명이다). 스니아 자손에 대해서는 에스라 2:35이 느혜미야 7:38보다 300명이 적다(3,630명 대 3930명). 가장 큰 숫자상의 차이는 아스갓 자손의 수치에 대한 에스라 2:12에 1222명의 기록과 느혜미야 7:17에 2,322명의 기록이다. 다른 19번의 경우는 두 기록이 같다(1).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이 14번의 불일치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가? 이런 불일치는 에스라와 느혜미야만이 아니다. 예루살렘 귀환 자의 총수는 느혜미야 7:66과 에스드라 1서(I Esdras 5:4)에서는 42,360명인데 개인적 항목을 더한 세 다른 총수는 에스라가 29,818명이며 느혜미야가 31,089명이고 에스라 1서가 30,143명이다. 그러면 서로 차이가 나는 없어진 천여 명은 어디로 간 것인가? 또 서로 총수가 다른 이유가 무엇인가? 이런 차이에 대한 가장 쉬운 해답은 아무래도 필사자의 오류였겠다(2). 다른 해답은 여기 에스라서에서는 전체가 29,818명밖에 안된다. 따라서 42,360명의 전체 숫자에 비하면 12,542명이 적은 셈이다. 어떤 학자들은 그 수가 바로 여인과 아이들의 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다면 그 수는 전체의 수에 비해 너무 적다.
또 어떤 가족은 제외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회중은 종교적인 공동체를 가리켰다. 군중이 아니라 모든 유대인 종들과 같이 여인들 모두가 포함되었다(Galling)(3). 이 문제에 대한 가장 적절한 해석은 아마도 제미슨, 퍼셋, 브라운의 아래와 같은 설명일 것이다. 이 가족에 속하는 것으로 언급된 모든 사람들은 전체의 집결지로 모였거나 아니면 처음에 가겠다는 의사가 있을 때에 등록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행을 준비하는 기간 도중에 어떤 사람들은 죽었고 어떤 사람들은 병이나 극복할 수 없는 장애 때문에 떠날 수 없었을 것이다. 또 이 두 번의 등록이 실시된 환경이 다르다는 사실로부터 이 불일치는 충분히 설명된다. 에스라의 기록은 바벨론에서 실시되었지만 느헤미야의 기록은 예루살렘 성벽이 재건된 후에 유대에서 실시되었다. 이렇게 여러 해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질병 혹은 다른 어떤 원인으로 말미암아 이 목록에 그만한 차이가 생길 수 있으리라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4). 따라서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의 통계상의 차이는 어렵지 않게 설명이 가능하다.
주 1. 글리슨 아처, 성경 난제 백과사전, 황영철역(서울: 생명의 말씀사, 1990), p.310 2. Derek Kidner, Ezra & Nehemiah(Downers Grove: IVP, 1979), p.43 3. F. Charles Fensham, The Books of Ezra and Nehemiah(Grand Rapids: Eerdmans, 1983), p.57 4. 글리슨 아처, 상계서, p.3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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