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창 50:19-20)

   만일 사람이 그들 자신의 선택을 하는데 참으로 자유하다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되실 수 있는가?  필경 두 자유자는 부딪치고 말 것이요 이런 이론은 모순에 빠지고 말 것이다.
  본문은 하나님의 주권이 어떻게 사람의 자유와 책임과 서로 관계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죄를 미워하시며 끊임없이 혐오하신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해치려는 악에서 선이 나오도록 허용하시는 것이 그의 특권이시다. 실로 그의 아심이나 그의 거룩한 뜻을 대항함이 없이 범해질 수 있는 죄란 없다. 이런 의미에서 죄인들은 가끔 그의 성도만큼이나 그의 섭리 사역의 사역자들이 된다.
  이제 본문을 보자.  형들의 시기와 깊은 증오 때문에 요셉이 애굽에 팔렸을 때 하나님께서 그 자신의 신비하신 역사로 그를 애굽에 보내시므로 이방 나라만 아니라, 그를 판 바로 그 백성을 구원하셨다. 그렇게 함으로써 요셉은 그의 형들이 훼손시키려 했던 지위를 얻었으며 긍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셨다.
  따라서 요셉은 그의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되었으며 이같은 진리를 그의 형제들과 나누려 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섭리가 그들에 대한 그의 선하심이나 자비하심에서만 아니라 그들의 시련과 고난에서도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다. 그러므로 요셉이 애굽으로 가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었으며 요셉의 형들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자유롭게 동생 요셉을 애굽으로 팔아 버렸으나 사실은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데 협조한 것뿐이었다.  이렇게 볼 때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만이 주권적이시다.
  사람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지배는 지속적으로 생의 모든 영역과 사람의 마음의 계획들을 그의 목적을 섬기게 하시므로 사람의 악까지 포함해서 속속들이 퍼져 있다.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의 섭리와 지도 활동을 위한 중요한 영역인 것이다.  사람이 마음으로 계획을 해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잠 16:9)⑴.  본문에서 요셉은 그의 생애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잘 알았기 때문에 그의 형들을 보복할 수 없었다.  그는 감히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려고 계획한 자를 멸하거나 하나님이 용서하신 자를 벌할 수 없었던 것이다⑵.  특별히 여기 타캇이라는 히브리 말은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랴” 에서 볼 수 있듯이 “대신에” 라는 의미도 있으나 복종이나 종속한다는 의미도 있다.  그래서 칼빈은 “내가 하나님의 지배 아래 있기 때문에” 라고 번역하였다⑶.  인간의 악한 계획을 선하게 바꾸시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사는 성도는 결코 보복자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자유가 결국은 하나님의 계획안에서의 자유임을 배운다.  그러므로 그 자유는 제한 없는 자유는 아니다.  하나님이 정해 주신 테두리 안에서의 자유일 뿐이다.  더 나아가서 사람의 자유가 어떤 것임을 엿볼 수 있다.  여기 요셉의 형들은 그 누구의 꼬임으로나  설득으로 동생을 판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들 스스로 자유롭게 한 계획이요 결정이었다.  그런데 그 자유스런 행동은 선한 것이 아니라 악한 것이었다.
  인간의 시조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에 대한 선택을 보라.  저들은 자유를 원하였고 원하는 대로 그 자유를 행했으나 참 자유를 얻지는 못했다.  그 대신에 그들은 죄의 노예가 되고 말았다.
  오늘날의 모든 자유화 운동은 사실상 또 다른 형태의 죄의 노예화일 뿐이다. 스프롤(R.C. Sproul) 박사는 현대 자유는 교회와 국가의 일원으로서 하나님의 주권적 권위에 대한 반역과 우주적 반역의 상호 행위로 연합된 세력이라 하였다.  개인이 하나님을 반역할 때 그들은 자유를 성취하지 못한다.  그들은 노예로 전락하고 만다.  왜냐하면 반역은 죄이기 때문이다.  또 죄는 폭군이다.  반면에 사람이 하나님께 복종하여 그의 노예가 되면 참으로 자유하게 된다(⑷
  그러면 인간의 자유가 악한 것이어도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이루는 데 쓰여졌다면 그 악에 대한 책임을 사람이 져야 하는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므로 죄인을 구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다.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 준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막아 죽였다”(행 2:23).  그러나 저들은 메시아를 죽이는 악을 행했으며 그것은 누구의 지시나 꾐에 빠짐이 없이 저들 스스로 자유롭게 한 행동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행동에 대한 책임이 없으시다.  하나님은 그 일에서 주권적이시었다.  하나님은 하나님으로 계시나 그 일을 한 사람들은 책임과 비난과 심판을 받아야 한다⑸.  예수님을 판 가룟 유다는 이미 작정된 대로 그 일을 했을 뿐이다.  물론 그는 그것을 모르고 자유롭게 한 일이다.  그러나 그 일은 악했고 예수님은 당신을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하셨다(눅 22:22).

     주
    1. G. Von Rod, Genesis(Philadelphia: Westminster, 1972), p.438
    2. Matthew Poole, Commentary on the Holy Bible(London: Banner, 1969), p. 115
    3. John Calvin, Genesis(Grand Rapids: Baker, 1989), p.486
    4. J.M. Boice, Foundations of the Christian Faith(Downer Grove: IVP, 1986), pp.120-121
    5. W.C. Kaiser, Jr., Hard Sayings of the Old Testament(Downers Grove: IVP, 1988), pp.61-62